[걷고의 걷기 일기 0340]

소설 ‘토지’

by 걷고


날짜와 거리: 20220305

코스: n/a

평균 속도: 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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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시작일: 2019년 11월 20일


박경리 선생님의 장편 소설 ‘토지’를 완독 하는 데 수개월이 걸렸다. 아주 오래전에 한번 읽었는데, 그 당시에는 수박 겉핥기로 읽었던 것 같다. 최근에 다시 읽으며 감정 이입이 많이 되어 힘든 순간도 있었다. 선생님께서는 이 책을 탈고하는 데 25년의 세월을 보내셨다. 당신의 인생을 이 소설과 바꾼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선생님께서 책 발간 후 어느 발간 기념회에 나가셔서 말씀을 하시는데, 말 대신에 설움이 복받쳐 올라와서 울음을 터뜨렸다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있다. 등장인물들을 만들고, 그들의 생각과 행동을 표현하면서 그들의 설움을 느끼신 것은 아닐까라는 조심스러운 추측을 해 본다. 이 책을 읽으며 떠오른 단어는 한 마디로 ‘서러움’이다. 인간이라는 모습으로 태어난 동물들의 삶이 원초적으로 지니고 있는 숙명과 그에 따라 살아야만 하는 불쌍한 인간들. 어느 누구도 인간으로 태어난 그 숙명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다.

태어남은 축복이지만, 동시에 슬픔이기도 하다. 인간이 한평생 살아가야만 하는 여정을 생각하면 저절로 연민과 슬픔, 그리고 서러움이 떠오른다. 반면에 죽음은 슬픔으로 다가올 수도 있지만, 망자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행복과 자유로움이 될 수도 있다. 지지고 볶으며 살아가는 것으로부터의 자유와 그 자유가 가져다주는 편안함이 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에는 약 600여 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구한말 시대의 사회 상황은 양반과 상민의 구별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고, 지주와 종의 엄격한 상하관계도 존재하고 있었다. 뺏기지 않으려는 자와 뺏으려는 자가 늘 존재하며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또한 일제 치하의 상황에서 생존하기 위해 일본에 충성하며 살아가는 사람들과, 일본과 그들에 저항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양분되어 갈등을 야기하고 있다. 매국노도 살기 위한 방편으로 삶의 방식을 선택한 것이고,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그들과 대립각을 세우는 사람들도 자신만의 삶의 방식을 선택한 것이다. 동족을 짓밟으며 살아가는 불쌍한 중생들과, 살기 위해 그들에게 억지웃음을 지으며 살아가는 불쌍한 중생들도 상존한다. 결국 모두 생존하기 위해 발버둥 치며 살아가고 있다. 그 점은 지금 우리의 상황과도 전혀 다르지 않다.


인텔리 계층은 자신의 꿈을 실현하지 못한다는 괴로움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발버둥 치고 있고, 대부분 사람들은 하루 밥벌이하기 위해 몸부림치며 살아가고 있다. 자신의 신분이나 상황, 지니고 있는 재물이나 학식, 나라가 처한 상황 등 수많은 갈등 속에서 할 수 있는 일도 없고, 하고 싶은 의지조차 꺾인 사람들의 도피처는 술과 자기 비난, 그리고 생존하기 위한 투쟁이 전부가 아니었을까? 오직 살아야 된다는 강한 생존 의식 속에서 죽지 못해 살아가는 삶의 모습은 처량하고 안쓰럽다는 표현으로는 그 모습을 도저히 표현할 수조차 없다. 그럼에도 600여 명의 등장인물들 중에 자살을 한 사람은 한 두 사람에 불과하고 살기 위해 모든 어려움을 감수하며 버티고 살아가고 있다.


이 책의 등장인물들에 대한 자세한 묘사는 우리 인간의 이기적이고 원초적인 인간 심리를 여지없이 드러내 보여준다. 그 속에는 나의 모습도 많이 있고, 우리 대부분의 모습도 함께 있다. 소설의 등장인물은 우리들의 모습을 그린 것이고, 우리들의 거울이 될 수도 있다. 인간의 내면 가장 깊숙한 곳에 숨어있는 것은 욕심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양한 욕심이 있다. 가장 원초적인 생존에 대한 욕심이 있다. 모든 살아있는 존재들이 지니고 있는 기본적인 욕심이다. 어떤 면에서 이것을 욕심이라고 부르는 것이 맞는 단어인지 잘 모르겠다. 그다음 단계는 더 많이 소유하고 싶고, 더 좋은 것을 갖고 싶다는 욕심이다. 이 욕심을 위해서 남을 짓밟기도 하고, 남의 것을 빼앗기도 한다. 자기 외의 모든 사람들은 자신을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아마 요즘 정치인들의 모습이 그렇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해 본다. 물질적 욕심에는 한계가 없지만, 그럼에도 어느 정도 채워지면 그다음 더 많은 것을 소유하기 위해 권력을 추구한다. 그런 권력은 오직 자신만을 위한 권력이지 대중을 위한 힘이 되지 않는다.

욕심은 세상을 올바른 시각으로 보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욕심의 눈으로 보기 때문에 시야는 좁아지고 모든 사람들을 욕심의 안경을 쓰고 불신의 눈초리로 대한다. 결국 외롭게 살아갈 수밖에 없지만 외로움조차 느끼지 못하고 더 많은 것을 얻고 더 높은 지위를 구하고자 애쓰지만 자멸을 초래한다. 그들에게 남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공허감, 외로움 그리고 죽음 밖에는 없다. 어떠한 명성, 재물, 사회적 지위, 개인적 위치를 지녔던 세상살이는 삶의 족쇄를 스스로 채우게 만들어 준다. 굳이 족쇄를 채우지 않아도 되는데, 주변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스스로 족쇄를 채우며 살아가고 있다. 비교로 인한 상대적 빈곤감이 사람을 더욱 빈곤하고 비참하게 만들어준다. 그 마음은 결코 어떤 보상으로도 완벽하게 채워질 수 없다.

책을 읽으며 인간들의 삶이 서러울 수밖에 없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서러움은 스스로 만들어 낸 것이다. 물론 사회적 환경과 개인적 환경이 주요인이 될 수도 있지만, 그 요인을 해석하고 판단하고, 그 판단에 따른 언행을 하며 더욱 큰 서러움을 마주하게 된다. 삶이 고통의 바다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고통의 바다를 즐겁게 건널 수도 있고, 힘들게 건널 수도 있다. 각자 어떤 마음으로 주어진 삶을 받아들이느냐에 달려있다. 즉 주어진 삶에 대한 해석을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있다. 해석의 근거는 자신의 경험이다. 그 경험으로 인한 판단과 결정은 경험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 경험으로부터 벗어나야만 현명한 판단을 할 수 있다. 자신을 비우는 작업이 필요하다. 토지와 같은 책을 읽으며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통해 자신을 비워나갈 수 있다. 소설 속의 등장인물은 바로 우리의 모습이다. 소설을 통해 우리의 모습을 좀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된다. 간접경험이라는 독서가 중요한 이유이다. 간접경험은 상황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끔 만들어주며 자신의 직접 경험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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