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산티아고를 꿈꾸며

by 걷고

지금 경기 둘레길을 걷기 동호회 회원들과 함께 걷고 있다. 길을 걸으며 길에 대한 생각을 하고 길에 대한 얘기를 나눈다. 히딩크 감독의 말, “I'm still hungry."가 떠오른다. 길을 걸으면 걸을수록 길에 대한 열정은 더 커지고, 가고 싶은 길은 더 많아지고, 더 걷고 싶다. 경기 둘레길이 끝나면 어느 길을 걸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걷는다. 흔히 하는 얘기로 걷는다고 밥이 나오거나 떡이 나오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걷기에 대한 또 길에 대한 열정은 식지 않고 오히려 더 커진다. 길을 걸으면 늘 행복할까? 기분이 좋고, 날아갈 듯 기쁘고, 몸과 마음이 가벼워질까? 결코 그렇지 않다. 걸을수록 몸은 지쳐가고, 언덕길을 오르며 속으로 왜 이 힘든 길을 걷고 있는가에 대한 회의감에 빠져들기도 하고, 호우나 무더위 속을 걸으며 빨리 길이 끝나기를 간절히 바라기도 한다. 길을 끝나고 집에 돌아와서는 굳이 힘든 길을 걷지 말고 집 근처 편안한 길을 산책하듯 즐겁게 걷자는 생각을 하지만, 한숨 푹 자고 일어나면 전날 밤의 생각은 자취를 감추고 다시 다음 길 걸을 기대를 갖고 길에 대한 검색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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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둘레길 60구간의 전 코스를 마치는 시점이 내년 상반기쯤일 것이다. 그다음에는 어느 길을 걸을까? 얼마 전에 한 친구가 책 선물을 했다. ‘아주 친절한 푸르투갈 순례길 안내서’라는 책이다. 최근에 나온 여행 전문가가 쓴 책인데 책 표지 디자인부터 마음에 든다. 이 선물이 다음에 걸을 길을 알려주고 있다. 그렇다! 경기 둘레길을 마친 후에 다시 산티아고로 떠나자!! 산티아고 다녀온지 벌써 5년이 지났다. 그 당시에는 프랑스 루트로 다녀왔다. 같은 길을 가고 싶은 생각은 별로 없지만, 9개 산티아고 루트 중 다른 곳을 가고 싶다는 생각은 갖고 있었다. 이 책이 그중 한 곳을 지정한 것이다. 포르투갈 루트는 프랑스 루트 다음으로 순례자들이 가장 많이 걷는 길이다. 선물한 친구가 내게 이 길을 걸으라고 무언의 압박을 가한 것인지, 아니면 길을 정하지 못한 나를 위해 친절하게 길을 안내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자연스럽게 다음 길을 알려주고 있다.


경기 둘레길을 걸으며 김포평야의 농로를 걸었다. 양쪽에는 푸른 벼가 자라고 있고, 논과 논 사이 쭉 뻗어있는 길은 산티아고 메세타 평원을 걸을 때 길 양쪽에 밀밭과 포도밭이 펼쳐져 있는 길과 같은 모습이다. 노을공원 주변 길을 걸을 때도 끝이 보일 듯 말 듯 펼쳐진 흙길은 산티아고 길을 소환시킨다. 햇볕이 강하게 내리쬐는 날에 일부러 이 길을 걷기도 했다. 오히려 나무 그늘 쪽을 피해서 온 몸으로 햇빛을 맞으며 걷기도 한다. 왜 이 길이 좋은지 그 이유를 모르고 있었다. 이제야 그 의문이 풀린다. 마음속에 남아있는 산티아고 길에 대한 기억과 추억이 그리워서였다. ‘산티아고 블루’라는 말이 있다. 산티아고를 다녀온 사람들이 이 길에 대해 느끼는 향수병이다. ‘블루’는 우울을 뜻하는 단어이기는 하지만, ‘산티아고 블루’는 그 길에 대한 그리움, 향수, 열정을 표출하지 못하는 답답함, 옛 애인을 만나고 싶어 하는 간절함 등을 표현하는 단어이다.


“고기도 먹어 본 사람이 먹을 줄 안다.”라는 말이 있다. 음식도 어릴 적부터 먹어본 어머니 손맛이 밴 음식을 좋아하듯이, 길도 걸어 본 사람만이 느끼는 익숙함과 즐거움이 있다. 걸어 본 사람들은 걷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언제든 걸을 준비가 되어 있다. 어느 길을 가든, 어떤 날씨에 걷든, 어떤 상황에서 걷든, 그냥 걷는다. 마치 익숙한 음식을 편안하게 먹듯, 익숙한 걷기를 편안하게 한다. 어떤 사람들은 ‘삼보 이상 자가용이나 택시’라는 원칙을 갖고 있지만, 걷는 사람들은 한 두 정거장은 무조건 걷는다. 걷다 보니 걷는 것이 더욱 좋아진다. 그래서 또 걷는다. 익숙해진 만큼 즐기며 걷는다. 물론 걸으며 힘든 것도 느끼지만, 그래도 걷는다. 길동무가 한 말이 기억난다. “오르막을 걸으며 숨이 찬 것은 그냥 몸의 반응일 뿐이다. 숨이 차다고 힘든 것이 아니고, 숨이 찬 것을 힘들다고 생각하는 것이 힘들게 만든다.” 명언이다. 누구나 오르막을 오르거나 힘든 길을 걸으면 몸이 괴롭고 힘들다. 지극히 당연한 몸의 반응일 뿐이다. 단순한 몸의 반응인 것을 자각하게 되면 그냥 발을 옮기면 된다. 오른발, 왼발, 그리고 다시 반복해서. 그 길이 오르막이든, 내리막이든, 또는 평지길이든, 몸의 반응을 느끼며 그냥 걸으면 된다. 그런 면에서 걷기는 인생과 같다. 인생의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듯이, 길도 그렇다.


친구가 선물한 책을 어제 완독 했다. 약 일주일간 야금야금 읽었다. 한 번에 빨리 읽는 것이 아까워서 일부러 천천히 읽었다. 그냥 저자의 느낌과 경험을 쓴 책일 뿐인데도 그렇게 읽었다. 그리고 언젠가는 이 길을 걸을 것이라는 다짐을 했다. 리스본에서 출발해서 포르토를 거쳐 산티아고까지 가는 이 길은 약 660km 정도의 거리다. 또마르에서 가톨릭 성지인 파티마까지 대안 루트로 걷고, 다시 또마르로 올 때는 버스를 이용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산티아고에 도착 후 포르토까지 버스를 이용하고, 포르토에서 리스본까지 기차를 타고 이동 후 리스본에서 인천으로 귀국하는 일정으로 약 32일 정도 예상하면 다녀올 수 있다. 구글 지도를 이용하면 길 찾는데 큰 어려움은 없을 것 같다. 순례자 오피스 근처에서 길 안내를 위한 간단한 지도와 알베르게 안내 책자를 구입할 수도 있으니 길을 걷는데 큰 걱정은 없다. 그냥 걷고, 알베르게 나오면 쉬고, 카페 나오면 먹고 마시고 다시 걸으면 된다. 달랑 지도 한 장 들고 다녀오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어차피 여행은 또 여정은 완벽한 준비를 해서도 안 되고, 완벽한 여행이 되어서도 안 된다. 불안감과 불편함, 긴장감 속에서 걸으며 자신을 변화시키는 담금질이 여행이고 여정이고 순례이다. 익숙한 환경에서 벗어나 설익은 환경 속에 자신을 던지며 자신을 변화시키는 일이다. 아직도 내게 이런 열정과 야성이 살아있다는 것이 다행이고 좋다. 아니면 열정이 사라지는 것이 두려워 스스로 자신을 낯선 환경으로 던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떻든 이런 시도 자체는 삶의 활력이 된다. 여러 가지 개인적인 상황을 고려할 때 2024년 봄 정도를 예상하고 있다. 이참에 포르투갈어를 조금 공부하는 것도 여행을 즐기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5년 전 산티아고 길은 혼자 뭔가에 쫓기듯 걸었다. 이번 길은 길동무 몇 분과 함께 여유롭게 걷고 싶다. 맛있는 음식도 먹어보고, 외국 순례자들과 즐거운 대화도 나누고, 함께 간 길동무들과 좋은 추억도 쌓으며 걷고 싶다. 순례나 트래킹이 아닌 여행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다녀오고 싶다. 조금 편안한 숙소에서 쉬며, 그 지방 특유의 맛있는 음식도 먹으며 걷고 싶다. 친구가 선물한 책이 가야 할 길을 알려주었다. 책 선물과 시절 인연에 고마움을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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