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기간 알고 지낸 한 선배가 전화를 했다. 비 오는 날 홀로 행주산성을 걷고 있고, 마친 후 월드컵경기장 근처로 와서 같이 걷자고 한다. 비 오는 날 걷는 것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마다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 그 선배를 만난 지 벌써 두 달 이상 지난 것 같다. 언제 만났는지 기억이 잘 나지도 않고, 어쩌다 만나면 6개월이 훌쩍 지나기도 한다. 세월이 점점 빨리 흘러간다는 말을 실감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그 선배가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던 차에 연락이 오니 반갑다. 자주 많이 걷지도 않은 분이 홀로 행주산성까지 가서 걷는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가끔 서울 둘레길을 걷고 있다고 인증 사진을 보내주곤 했지만, 최근에 그런 소식이 없어서 홀로 걷는 것이 괜히 걱정되기도 한다. 행주산성을 걷고 내려와서 교통편을 찾느라 우왕좌왕하고 있다는 연락을 받으니 더욱 걱정이 된다. 버스를 타고 난지 캠핑장에 내렸다고 해서 월드컵공원 내 호숫가에서 만나기로 하고 집을 나섰다. 벤치에 앉아 젖은 신발을 벗고 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내려오다 넘어져 팔에 조금 찰과상을 입었고, 어깨가 조금 불편하다고 한다. 진작 연락을 했다면 같이 걸을 수 있었는데, 같이 걷지 못한 것이 괜히 미안하다.
더 이상 걷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되어 망원 시장 쪽으로 가서 막걸리를 한잔 마시기로 하고 함께 걸었다. 하던 모든 일을 7월 말로 정리하고 편안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IT 기업 CEO로 지금까지 버티며 살아온 것이 대단할 따름이다. 모 생보사와의 프로젝트를 마무리하며 일을 모두 끝냈다고 한다. 물론 이 분야의 전문가로서 가끔 강의와 자문 역할을 계속해 나갈 거라고 한다. 멋진 퇴장이다. 힘들었던 얘기를 들으며 도울 수 없는 안타까움으로 속만 타들어갔던 적도 있다. 외국 정부와의 계약 건으로 문제가 될 때도 선배들과 함께 모여 방법을 같이 찾으려 애썼던 기억도 있다. 그 당시 선배의 모습은 많이 힘들어 보였다. 다른 선배와 함께 술도 많이 마셨던 기억도 난다. 모두 과거의 얘기다. 어제 만난 선배의 얼굴은 편해 보였다. 채 한 달도 되지 않은 시간에 건강도 챙기고 쉬고 싶어서 거의 매일 걷는다고 한다. 그 소식이 반갑고 고맙다. 무리하지 않고 천천히 걷는 시간과 거리를 늘려나가고 있는 지혜로운 선배다. 경기 둘레길을 같이 걷자고 하니 민폐가 될 것 같다며 체력을 쌓은 후에 동참하겠다고 한다.
앞으로 무엇을 하며 지낼지 궁금해서 물었다. 우선 쉬고 싶다고 한다. 요즘 걸으며 그간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인다고 한다. 꽃들도 눈에 들어오고, 바쁘게 살았던 모습에서 여유를 찾고 편안하게 지내고 있다고 한다. 그 모습이 보기 좋다. 부처님 인연이 깊은 선배이기에 참선 공부 얘기를 꺼냈다. 그간 잊고 있었는데 상기시켜줘서 고맙다고 한다. 모든 사회생활을 정리한 후에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건강과 마음공부, 이 두 가지 외에 다른 일이 있을까? 물론 봉사활동도 할 수 있고, 그간의 전문성을 살리며 할 일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60대 후반의 사람들로서는 어떤 생산적이고 창의적인 일을 하는 것보다는 건강과 마음공부를 하는 것이 최우선이 되어야 된다는 생각을 한다. 후배들이나 회사의 요청으로 필요한 도움을 주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일부러 일을 찾으러 나설 필요는 없다. 나이 들어서 돈벌이 때문에 분주하게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모습도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는다. 여유롭게 자신과 가족들과의 시간을 갖고 삶을 마무리할 시간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 역할과 책임과 의무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는 것도 중요하다.
최근에 외아들을 장가보낸 선배는 넓은 집에 홀로 지내고 있다. 그 집을 선방으로 만들어 마음공부 모임을 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선배나 나나 모두 송담 스님과 인연이 깊은 사람들이다. 참선 공부 모임을 만들어 올 겨울 동안거부터 시작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선배의 의사와 상관없이 해 본다. 매주 일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참선을 한다. 공부 시간 내내 침묵을 유지한다. 각자 도시락을 준비해서 집주인에게 불편함을 끼치지 않는다. 50분 입선, 10분 방선, 방선 시에는 천천히 선방 주변을 걸으며 행선을 한다. 나머지 필요한 규칙을 만들어 가면 된다. 참선과 행선, 그리고 침묵, 이 원칙만 지켜도 충분하다. 10월 초에 다른 선배와 함께 식사 모임을 하기로 약속이 되어 있다. 그때 ‘송담 스님 참선 공부 모임’에 대한 구체적인 제안을 해보려 한다.
막걸리 한 잔을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다. 사람들과 지내는 것보다 홀로 지내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라고 얘기하자 선배는 ‘선택’이라는 말로 응수한다. 선배는 삶의 매 순간 올바른 선택을 하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그리고 사람들과의 관계 역시 선택이라고 하며 가족, 친구, 지인들과의 관계에서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선택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강조한다. 처음에는 와닿지 않았지만, 하루라는 시간이 지나며 ‘선택’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곱씹게 된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불편하면 만나지 않는 편이고, 거리를 두려고 하는 편이다. 굳이 불편한 사람과 관계를 유지해가며 살아갈 이유도 없고, 그렇게 하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선택’이라는 단어를 생각하면 할수록 어쩌면 내가 먼저 멀리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투사’이다. 내 안의 감정을 마치 다른 사람이 내게 품고 있는 감정이라고 생각해서 불편함을 느끼고 있을 수도 있다. 먼저 마음을 열고 다가갈 필요가 있다. 불편한 사람은 없고, 다만 내가 불편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만 있을 뿐이다. 결국 문제는 나로부터 시작된다. 내 안에 불편함이 없다면, 시비를 따지는 마음이 없다면, 상대를 평가하고 분별하고 차별하는 마음이 없다면, 어떤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스스로 불편함을 느낄 이유가 전혀 없다. ‘선택’은 앞으로 많이 고민해야 할 단어이다.
주어진 삶은 우리가 선택할 수 없지만, 그 삶 속에서 어떤 선택을 할지는 자신이 결정할 수 있다. 주어진 삶은 지금까지 내려온 선택의 결과물이다. 선택은 자신의 의지와 생각과 욕심과 판단으로 결정한 것이니 업이다. 업은 반드시 업보를 받는다. 그 업보가 지금 우리의 삶이다. 따라서 지금 주어진 삶의 모습은 이미 우리 손을 떠났고 아무리 바꾸려고 해도 바꿀 수 없다. 받아들이는 것 밖에 없다. 그다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바로 ‘선택’이다. 잠을 더 잘 것인가? 일어나서 움직일 것인가?,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과 절연을 할 것인가? 아니면 나를 변화시켜 관계 개선을 하기 위한 노력을 할 것인가?, 술을 마실 것인가? 아니면 참선을 할 것인가?, 걸을 것인가? 아니면 소파에 누워 TV를 볼 것인가? 등등 매 순간에 선택과 결정이 필요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역시 선택의 결과이다. 지금까지 내린 선택의 결과물이 지금 주어진 삶이고, 지금부터 내리는 선택의 결과물이 앞으로 주어질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