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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바라본 나의 일상

by 걷고

얼마 전부터 음악이 듣고 싶어졌다. 집에 있는 오디오는 오래되어 음질도 좋지 않고 게다가 자주 CD를 교체해야만 해서 불편하다. 책상에서 작업을 하다 이동해서 CD를 찾아 오디오에 삽입한 후 버튼을 눌러야 음악을 들을 수 있다. 이제는 그런 사소한 일조차도 번거롭고 귀찮게 느껴진다. 나이 들어갈수록 몸을 자주 많이 움직여야 한다는데 자꾸 꺼리게 된다. 그래서 친구들 모임에서 오디오가 필요하다고 얘기하며 적당한 오디오 추천을 부탁했다. 한 친구의 자제분이 음악을 한다. 자제분이 썼던 오디오인데 좀 더 나은 것으로 교체한 후 천덕꾸러기가 되어버린 오디오가 있다고 하며 전해주겠다고 한다. 그리고 며칠 뒤인 어제 연락이 왔다. 그 친구 집 근처로 갈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친절하게도 그 친구가 우리 집 근처에 올 일이 있다며 직접 전해주겠다고 한다. 고맙다.


저녁 식사를 하며 오디오 설치 방법에 대한 친절한 설명을 들었다. 유튜브 내 ‘청음샵’이라는 곳을 검색하면 음질 좋은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조언도 해 주었다. 집에 돌아온 후 선물 받은 오디오 세트를 바로 설치하지 않고 그냥 바닥에 두었다. 오랜만에 낮 시간에 업무를 보고 그 친구와 저녁 식사를 겸한 한 잔을 마신 후라 조금 피곤해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쉬고 싶었다. 뉴스도 보고 TV 채널을 돌리며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밤 12시가 다 되어간다. 갑자기 그 오디오를 설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너무 무료한 그 시간을 견디기가 어려웠는지, 아니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명하니 앉아 있는 자신이 한심했는지, 아니면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는 죄책감인지 확실하지 않다. 아내는 책상 옆 소파에서 자고 있다. 아내가 깰까 봐 조심스럽게 오디오를 설치했다. 워낙 기계치라 잘 설치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친구가 워낙 자세하게 설명을 해 준 덕분에 걱정과는 다르게 무사히 설치할 수 있었다. 노트북에 연결해서 음악을 들었다. 음악이 주는 즐거움보다 오디오를 직접 설치했다는 대견함이 더욱 컸다.

아침에 책상 위에 설치된 오디오 세트를 아내에게 자랑스럽게 보여주며 음악을 들려주었다. 아내는 손태진 노래를 듣고 싶다고 하며 혹시 태블릿 PC와도 연결해서 음악을 들을 수 있느냐고 묻는다. 잭을 연결해 보니 가능하다. 태블릿과 연결해서 음악을 틀었다. 부엌에서 일하며 들을 수 있게 소리를 좀 더 크게 틀어달라고 한다. 신이 나서 소리를 높인다. 딸이 사준 태블릿과 광고 없이 들을 수 있게 조치를 해 주어서 유튜브 내 업로드된 음악을 편하게 들을 수 있어서 고맙고 좋다. 음악을 듣는 중간에 광고를 들어야만 하는 것도 보통 성가신 일이 아니다. 지금 음악을 들으며 이 글을 쓰고 있다. 일상 속 작은 행복이 가장 큰 행복이다.


요즘 젊은 친구들은 쓰던 물건을 당근에서 재판매를 하기에 선물해 준 친구에게 돈 얘기를 꺼냈다가 무안만 당했다. 요즘 젊은이들이 살아가는 기준과 다르면 꼰대 소리를 듣고, 그 기준을 친구들에게 적용하면 이상한 놈 취급을 받는다.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좋은지 혼란스럽다. 선물해 준 친구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었다. 이번에는 우리 세대에 맞는 방식으로 감사 인사를 전하기로 했다. 책상에 설치된 오디오 세트를 사진 찍어 보내며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이런 방식이 우리 세대에 맞는 인사 방식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런저런 말보다 사진 한 장으로 감사함을 전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그리고 ‘음악 소리 좋아요’라는 감사 인사를 덧붙였다. 친구는 ‘즐거운 시간 되세요.’라고 답을 보내왔다. 친구가 직접 전해 준 따뜻한 배려와 고마움이 크다. 나 같으면 직접 전달하기 위해 무겁게 들고 나오지는 않았을 것 같다. 오히려 우리 집 근처에 와서 받아가라고 했을 것 같다.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많이 부족하고 매우 이기적이다. 친구의 행동을 통해서 또 배운다. 그리고 그 친구가 나와 지내면서 많은 불편함을 감수하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얼굴이 달아오른다. 가까운 친구 사이일수록 더욱 예의를 지키고 존중하며 서로에 대한 배려를 잊지 말아야 한다. 친구의 말 없는 행동을 통해 큰 가르침을 받았다.


친구에게 보낸 사진을 다시 한번 차분히 들여다본다. 나의 일상이 사진에 모두 들어있다. 거실 한쪽 면인 베란다를 향한 창가에 책상이 설치되어 있다. 시간 날 때마다 이 책상에 앉아 책을 읽고 글도 쓰며 시간을 보낸다. 나무로 만든 선반 위에 노트북이 놓여있다. 화면과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노트북을 선반 위에 올려놓고 사용하고 있다. 눈의 피로도와 목의 긴장감을 줄이기 위한 나름의 방편이다. 선반 위에는 책을 읽을 때 자주 쓰는 포스트잇이 지저분하게 붙어있다. 선반 좌측에는 요즘 읽고 있는 책이 있다. 도덕경,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상식에서 유식으로, 글쓰기는 주제다, 문장 강화, 종교를 넘어, 걷는 존재, 심리도식치료. 한 구석에는 경기둘레길과 코리아 둘레길 지도가 있다. 사진 한 장이 인문학과 마음공부 그리고 걷기와 글쓰기에 관심을 갖고 있는 나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요즘 경기 둘레길을 걷고 있는데, 그간 쓴 후기를 정리하며 책 출간을 준비하고 있다. 우측에는 모닝 페이퍼를 쓰는 노트와 이것저것 생각나는 것을 적는 노트가 있다. 책상 위에는 산티아고 길을 걷고 있는 사진이 한 장 놓여있다.


사진 한 장으로 나의 삶이 그대로 드러난다. 가끔 외신 카메라 기자들이 찍은 사진을 보며 그 한 장의 사진에 함축된 많은 내용을 스스로 추측해 본다. 사진작가도 아닌 자신이 직접 찍은 사진 한 장이 나의 삶을 표현하고 있으니 전문 사진작가들이 표현한 한 장의 사진에 담긴 무언의 메시지는 그 여파가 당연히 클 수밖에 없다. 우연히 찍은 사진 한 장으로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자신의 모습은 감출 수 없다는 생각을 한다. 겉으로 보이는 것과 실제가 차이가 있다고는 하나, 사진 한 장이 표현한 자신의 모습을 보며 겉과 속은 결코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송곳은 주머니에 넣어도 티가 난다고 한다. 자신의 모습은 결코 감출 수 없다. 감추려 하면 할수록 더욱 그 감추려는 모습까지도 드러날 뿐이다. 보여주고 싶은 모습이 있다면 그 모습이 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할 뿐이다. 아니면 그냥 자신의 모습대로 살면 된다. 어떤 모습을 연출한다고 해도 연출된 모습은 자신의 모습도 아니고 쉽게 들통 날 수밖에 없다. '집에서 새는 바가지는 들에 가도 샌다.'라는 말은 진리다.


친구가 전달해 준 오디오를 통해 친구의 고마운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친구의 일상적 모습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그 고마운 마음을 통해 나 자신의 이기심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사진을 통해 지금 나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났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걸으며 자신의 이기심이 주변 사람들을 위한 배려와 친절함으로 변화되길 기대해 본다. 산중에 홀로 주리를 틀고 앉아 있는 것이 수행이 아니다. 일상 속 자신의 모습을 보고 변화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수행이다. 사진 찍히듯 나의 참모습은 이미 다른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고, 온 세상이 알고 있다. 다만 나만 나의 모습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고 나만 몰랐던 나의 이기심을 자각하게 만들어 준 친구의 고마운 배려와 사진 한 장에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변화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 친구에게 또는 가까운 사람들에게 조그만 친절과 따뜻한 배려를 하기 위한 노력은 할 수는 있을 것이다. 나를 낮추고 주변 사람들과 모든 존재들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것이 삶이고 수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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