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생일이 언제인지 잘 모르겠다. 양력 생일도 있고, 음력 생일도 있다. 집에서는 음력 생일을 챙기려 하는데 굳이 그럴 필요 없으니 그냥 양력으로 통일하자고 얘기했다. 가끔 양력 생일을 챙겨주는 친구들이 있다. 가끔은 음력 생일을 물어보는 친구들도 있다. 이제 생일을 기억하고 누군가가 챙겨주는 것이 그다지 달갑지만은 않다. 그냥 평상시와 같은 하루 일 뿐이다. 나이도 정확히 몇 살인지 따지지도 않는다. 이제는 만 나이를 사용한다고 하니 만 나이를 계산해야만 한다. 스스로 몇 살인가 생각하기 귀찮아 그냥 잊고 산다. 어쩌면 나이 생각하는 것을 싫어할 수도 있다. 선후배 관계에서도 그냥 선배, 후배 정도로 부르지 몇 살 차이인지 따지지도 않는다. 그리고 가끔은 농담으로 먼저 간 사람이 형님이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학교 시절의 1년은 큰 차이지만, 이제 10여 년의 세월조차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세월이 만들어 준 변화다. 나이를 따지는 것보다 얼마나 하루 잘 보내고 사람들과 즐겁게 지내고, 약간의 도전 정신과 뭔가를 시도하려는 열정을 갖고 있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하지만, 이번 생일은 느낌이 조금 다르다. 음력으로 따지면 생일이 며칠 남아있다. 딸네 며칠 머무는데 생일 파티를 한다며 딸이 케이크를 준비해 왔다. 다음 주는 사위가 출장을 가니 파티를 할 날이 어제가 제일 적당하다고 한다. 생일에 맞춰 생일잔치를 하는 것이 아니고, 각자 일정을 확인 후 서로 편한 날에 맞춰 생일잔치를 한다. 이번 생일의 주인공은 두 손주들이다. 큰손녀는 자기가 아끼는 캐러멜 한 개와 빵 하나를 주면서 생일선물이라고 한다. 둘째 손자는 두 살 배기로 아직 아무것도 모르고 케이크 먹는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다. 케이크에 불을 붙이고 손주들 손을 잡고 같이 불면서 껐다. 두 아이는 케이크 먹고 싶어 안달이다. 손주들에게 엎드려 절 받기 식으로 뽀뽀선물을 받았다. 케이크를 나눠 먹으며 함께 웃는다. 아직도 어린애 같은 딸애가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있다. 소년 같은 사위는 어느새 30대 후반으로 회사에서 중간 간부 역할을 하고 있다. 그들의 모습에서 삶의 무게가 느껴질 때 괜히 마음이 먹먹해진다. 하지만 생일을 맞이하여 케이크의 불을 끄고 노래 부르고 손주들이 먹는 모습을 보는 순간 모든 시름은 잠시 잊게 된다.
큰손녀가 달력 뒤에 크게 ‘할아버지 생신 축하드려요. 박보윤’이라는 글을 써서 생일 축하 카드라고 전해준다. 순간 뭉클해진다. 아직 한글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아이가, 비록 엄마의 강요에 의한 것이겠지만, 쓴 그 글을 보는 순간 아이들은 세월이 키운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기쁘면서 동시에 쓸쓸해진다. 이 아이가 커서 언젠가 글을 잘 쓴 멋진 생일 축하 카드를 들고 오는 날은 나에게 그만큼 삶을 마감할 시간이 가까이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세월 속에 모든 것은 변한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가끔은 이런 심술이 올라온다. 그 아이가 태어나 처음 써 본 생일축하 카드다. 나 역시 손녀에게서 최초의 생일 카드를 받았다. 아이가 태어났을 때 아이의 모든 경험은 최초의 경험이 되고, 내가 경험하는 것은 삶의 마지막 경험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아이들이 성장하고 있고, 딸과 사위도 열심히 살고 있고, 아내는 아직도 미역국을 끓이고 음식을 장만해서 내놓는다. 정성이 고맙긴 하지만, 음식보다는 아내의 건강을 챙기는 것이 나를 위한 생일 선물 되다면 훨씬 더 기쁠 것 같다.
생일 선물을 받아 본 기억이 거의 없다. 이번 생일 선물로 딸과 사위는 트레킹화를 준비했다. 매년 생일 때 선물대신 돈을 받았던 것 같다. 선물과 돈은 큰 차이가 있다. 돈은 온라인상에서 숫자로 주고받는 것으로 끝난다. 하지만 선물은 정성이 들어간다. 취향도 고려하고,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고민도 해야 하고, 직접 나가서 구입도 해야 하는 등 신경 쓸 일이 많다. 그래서 돈 보다 선물이 훨씬 더 기억에 많이 남는 것 같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내가 무엇에 관심을 갖고 있는지 알고 있다는 사실이 주는 감동이 크다. 아내도 장기 트레킹을 가는 것은 싫어하지만 어딘가 힘들게 걷고 오는 것을 은근히 주변에 자랑하고 있는 것 같다. 혼자 가거나 너무 오랜 기간 집을 비우는 것을 싫어하는 것이지 나의 취미활동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가족 모두 내가 하는 일에 관심을 갖고 지지와 응원을 보내고 있다는 것을 선물을 통해 느낄 수 있다. 남자는 나이 들어서 아내가 인정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맞는 말이다. 무엇을 하든 아내가 응원해 주면 괜히 힘이 난다. 게다가 딸과 사위, 손주들까지 지지해 준다니 더욱 힘이 난다. 매우 기쁜 일이다.
올해 생일은 매우 기쁘다. 이런 생일잔치는 가끔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좋다. 손주가 쓴 기념 카드, 함께 케이크에 불을 붙이고 끄는 가족의 모습, 손주들이 좋아하고 가족이 웃는 모습, 아내의 정성 어린 음식, 딸과 사위가 준비해 준 응원의 선물. 생일을 기념하며 온 가족이 가족애를 느끼고 함께 웃을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기쁘다. 가장으로서 역할을 어느 정도 해냈다는 뿌듯함도 있는 것 같다. 이제는 우리 부부가 건강하게 살고, 각자 하고 싶은 일을 하며 건강하게 살아가면 된다. 아이들에게 도움 주는 일 중 가장 큰 일은 아이들에게 짐이 되지 않는 일이다. 그렇지 않게 되기 위해 무엇보다 우리 부부의 건강이 중요하다. 아내가 싫어하는 일을 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아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아내의 심신 건강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다. 그리고 아내가 하고 싶다는 일은 무조건 지지해 주고 응원할 것이다. 지금까지 그렇게 해 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이다.
이 글을 쓰는데 눈가가 뜨거워진다. 가슴에는 뭔가가 올라오는 느낌이다. 먹먹함일까? 감동일까? 뭔지는 모르겠지만 뭔가가 끓어오르고 있는 것은 맞다. 손으로 자판을 두드리면서도 손가락 감각보다는 가슴에서 일어나는 감각을 더 크게 느끼고 있다. 글은 글대로 그냥 쓰고 있다. 가슴이 쓰고 있는 것을 아닐까? 아내는 딸네서 내일 돌아오고 나는 하루 먼저 집에 돌아왔다. 돌아오면서 내내 이 글을 쓸 생각을 많이 했다. 빨리 쓰고 싶었다.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쓰고 싶었다. 좋은 추억은 나이 들어가면서 삶의 활력이 된다. 언젠가 이 글을 읽으며 웃을 날이 올 것이다. 아내, 딸과 사위, 손주인 보윤이와 보현아,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