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해파랑길을 걷기 위해 떠난다. 어제 오후에 시내에서 업무를 본 후 집으로 돌아왔다. 아내와 딸이 오늘 하루 해파랑길 준비를 하라며 휴가를 허락해 주었다. 고맙다. 늘 함께 지내다 혼자 집에 머무는 한가로움도 좋지만 가족과 떨어져 홀로 지내니 가족과 멀어진 느낌도 든다. 걷기 위해 혼자 휴가를 보내는 마음이 마냥 편한 것은 아니다. 도움이 필요한 딸네 가족을 돌보지 못하는 미안한 마음도 있다. 어제저녁에 집에 돌아와 혼자 저녁 식사를 한 후 읽고 있던 소설 ‘뱅크’를 완독 했다. 정부의 중앙은행 건립을 막고 식민지화하려는 일본의 야욕, 그것을 이용하려는 장사꾼들의 욕심, 인간의 사랑과 배신 등을 적나라하게 그려낸 소설이다. 사랑, 권력, 부귀, 명예는 삶의 추동력이다. 하지만 이 네 가지를 부릴 수 있는 사람이 있고, 네 가지의 노예가 되는 사람이 있다. 네 가지를 통해 자신의 가치를 실현하는 사람이 있고, 네 가지가 자신을 갉아먹는 사람도 있다. 사람은 각자 그릇의 크기가 있다. 그 크기를 알고 자신의 위치에 만족할 수 있다면 행복할 수 있다. 행복의 반대는 불행이 아니고 욕심이다.
어제 그리고 그제 치과를 다녀왔다. 치아를 씌운 것을 제거하고 남아있는 치아 주변의 썩은 부분을 긁어낸 후 다시 임시로 씌운 상태다. 이 상태로 약 한 달 정도 지난 후 별일 없으면 다시 새로 씌워야 한다. 일단 음식을 먹을 수 있게 임시조치를 했지만, 어제는 치통이 계속되었다. 아침에 일어나 양치를 하고 물을 마시는데 여전히 치통이 느껴진다. 하지만 어제보다는 줄어들었다. 의사는 치통이 서서히 줄어들 수 있고, 그렇게 된다면 아무 문제 없이 새롭게 본을 뜬 후 씌우면 된다고 했다. 의사 말씀대로 치료가 잘 된 거 같아 마음이 놓인다. 해파랑길을 걸으며 치통에 대한 걱정을 하고 있었는데,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에 치통이 느껴지지 않으니 다행이다. 요즘 나의 모든 일상이 해파랑길에 맞춰져 있는 것 같다. 약간 이상하면서도 기분은 좋다. 걸을 길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길을 걷기 위해 주변 상황을 정리하고 있다. 여행은 떠나기 전 준비하는 과정의 설렘이 전부다. 그리고 걸으며 즐겁고 힘든 시간을 보낸다. 여행에서 복귀 후 장비 점검하고, 다시 떠날 준비를 하며 설렌다. 그리고 그 설렘은 등산화 신고 집을 나서는 순간에 최고치에 오르고, 그다음부터는 설렘은 배경으로 물러나고 약간의 긴장과 불안, 걱정이 전경에 드러난다. 이런 과정이 삶에 활력을 만들어준다. 일종의 담금질이다.
아침 7시경 일어나 아내가 미리 만들어 준 야채샐러드와 삶은 계란을 접시에 올리고, 빵을 토스터기에 굽고, 두유를 꺼내고, 딸기잼과 땅콩잼을 꺼낸 후 아침 식사를 한다. 아침 식사로 밥 대신 과일, 야채샐러드와 빵 등으로 먹기 시작한 지 2년 정도 지난 것 같다. 이런 아침 식사는 간편하게 차리기도 쉽고, 먹기도 편하다. 미리 아내가 준비해 준 식사를 식탁에 차리며 냉장고와 냉동실 문을 열었다 닫고, 빵을 굽고, 접시를 가져와 음식을 올리고, 잼 바르는 도구를 찾아 식탁에 올리고 등등 참 할 일도 많고 움직일 일도 많다. 아내가 없으니 평상시 아내가 얼마나 많이 움직이는지 알 수 있게 된다. 고맙다. 이 일은 40년 정도 아무런 군말 없이 하고 있으니 이미 아내는 보살이다.
노트북을 켜고 음악을 튼다. 후배가 선물해 준 오디오로 연결해서 음악을 들으니 훨씬 더 풍요로운 소리를 들을 수 있다. “Martha Argerich & Mischa Maisky”의 피아노와 첼로 협연곡이다. 강형진 단장님이 보내주신 음악과 친구가 선물한 모차르트 교향곡을 꾸준히 듣고 있다. 첼로 소리를 좋아하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이 음악을 들으면 마치 피아노와 첼로가 서로 경쟁하듯 연주한 후 나중에는 서로 화합하며 멋지게 배려하는 느낌이 들어 기분이 좋다. 음악을 들으며 커피 한잔을 타서 마신다. 아메리카노를 찾을 수 없어 카페라테를 마신다. 주방은 아직도 어수선하다. 지난 주말에 싱크대 교체 후 아직 정리가 다 끝나지 않았다. 급히 정리한다고 서둘다 아내가 병이 날까 걱정인데 그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니 다행이다. 아직도 커피 맛을 잘 모른다. 가끔 지인들은 어디 커피가 맛있고, 어디 커피는 맛이 없다고 한다. 아직 어떤 맛이 맛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그러면서도 습관적으로 커피를 하루에 두세 잔 정도 마신다. 예전 같으면 식사 후 숭늉을 마셨을 텐데 요즘은 커피로 대체되었다. 맛은 모르지만 그럼에도 마시지 않으면 뭔가 허전하다.
커피를 마시며 신문을 읽는다. 뉴욕의 이스트빌리지에 있는 한식 맛 집 ‘수길’과 임수길 세프를 소개하고 있다. 칼럼 내용 중 “시간이 만드는 맛과 가치”라는 표현이 나온다. 세프는 맛을 내기 위해 장을 숙성시킨다고 한다. 숙성은 인내의 시간이다. 맛을 제대로 내기 위해 수많은 인고과 시행착오의 시간을 통해 얻은 그만의 레시피가 그의 가치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 정성스럽게 음식을 만들어 제공하는 것만큼 이타적인 행위는 많지 않다.”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세프는 음식이라는 이타적 행위를 통해 자신의 가치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타적 행위’라는 말이 와닿는다. 그러면서 자신에게 질문을 해 본다. 과연 ‘걷고의 걷기 학교’는 이타적 행위인가 아니면 이기적 행위인가? 아직 이타적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전적으로 자신만을 위한 이기적인 행위도 아니다. 이 둘의 중간 어디쯤에서 양쪽으로 왔다 갔다 하고 있는 것 같다. 오히려 그냥 좋아서 하는 일이라는 표현이 훨씬 더 정확하다. 이 일이 언젠가는 이타와 이기를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자리이타(自利利他)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조식, 커피, 신문, 음악을 아침 시간에 여유롭게 누릴 수 있는 것은 매우 귀한 행복이다. 시간적인 여유도 있고, 먹고 마시고 읽고 들을 수 있고, 의무적으로 해야만 하는 일도 없고,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은 매우 큰 축복이다. 고맙다. 아내에게 카톡으로 아침 인사를 보내며 명상을 시작해서 휴대전화를 무음으로 한다고 알렸다. 혹시나 아내가 전화를 할 때 받지 않는다면 공연히 걱정할 수도 있어서이다. 나 역시 아내가 전화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라고 생각해서 전화를 했는데 받지 않으면 괜히 걱정이 앞선다. 서로를 위한 배려다. 부부는 배우자를 위해 늘 신경 써야 한다. 특히 자신의 건강을 잘 챙겨야 한다. 단순히 자신을 위해 건강을 지키는 것을 넘어서 배우자를 위해 자신의 건강을 지키고 챙기고 관리해야 한다. 부부 관계는 ‘나와 너’의 경계가 사라진 관계다. ‘너’가 ‘나’이고, ‘나’가 ‘너’인 관계가 부부 관계다. 두 자연인이 한 몸이 되는 관계다. 나의 행복과 건강이 바로 배우자의 건강과 행복이 다.
거실에 좌복을 깔고 앉아 호흡에 집중한다. 호흡은 느껴지지 않고 해파랑길 걸을 생각만 떠오른다. 다시 호흡에 집중해 본다. 마음은 해파랑길을 걷고 있다. 다시 집중해 본다. 앞으로 해파랑길을 어떻게 편안하게 걸을 수 있고 잘 끝낼 수 있을까라는 생각만 오롯이 남는다. 호흡 대신 해파랑길만 남는다. 한 시간 동안 해파랑길을 좌복에 앉아서 걸었다. 이것도 나쁘지 않다. 그만큼 좋아하는 일에 집중하고 있으니. 좌복에 앉아 해파랑길만 생각하다 보니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아내와 통화해서 안부 인사를 한 후 책상에 앉아 이 글을 쓰고 있다. 아내와 딸 덕분에 받은 휴가를 알차게 보내고 있다. 오후에는 점심 식사 후 불광천 주변을 천천히 여유롭게 걷고 싶다. 배낭은 모두 꾸려서 출발 준비는 마쳤다. 걸으며 몸을 한번 점검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그리고 다시 좌복에 앉아 해파랑길을 걷고 싶다. 참 고마운 휴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