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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걷고 May 13. 2024

틈과 광명

모든 것에는 갈라진 틈이 있기 마련이다.

그 틈새를 통하여 반드시 빛이 들어오리니.

There is a crack, a crack in everything.

That's how the light gets in     


일반적으로 틈의 의미는 긍정적인 느낌보다는 부정적인 느낌을 많이 포함하고 있다. 사람들과의 관계의 틈, 바위와 바위 사이의 틈, 목숨을 앗아갈 수 있는 설산의 틈, 새로 구입한 가구의 이음새에 만들어진 틈, 지진 발생으로 인해 만들어진 지표면의 틈 등이 있다. 틈의 사전적 의미는 ‘벌어져 사이가 난 자리’다. 틈은 이미 존재하고 있는 무엇인가에 나타나는 균열현상이다. 균열의 원인은 다양하다. 날씨의 변화로 인한 균열이 만들어 낸 틈, 인간관계에서 이해관계라는 균열이 만들어 낸 틈, 애초 제작 과정을 충실하게 이행하지 못해 만들어진 제작 가구의 틈 등 여러 이유가 있지만, 결과적으로 틈은 대부분 우리의 실수나 이기심으로 인해 만들어진다.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자신과 경험 사이에 균열이 발생해서 틈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이 틈은 자신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리게 만들고 나아가 한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시킬 가능성도 높다.    

  

발생한 틈에서 빛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즉 틈은 우리에게 자신의 과거를 돌아볼 수 있는 빛을 만들어준다. 거리감과 틈은 비슷한 단어이지만 다른 의미다. 거리감은 객관적 관찰을 위한 자발적 방편이고, 틈은 자신의 의지나 기대와 다르게 만들어지는 결과다. 제대로 관찰하기 위해서는 거리를 두어야 한다. 너무 가깝게 사람이나 물체에 다가가면 제대로 볼 수가 없다. 적당한 거리 두기는 대인관계에서 또는 자신을 바라보는 방편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된다. 자신의 객관화를 통해 자신의 이기심과 실수를 볼 수 있게 되고, 이런 상황을 통해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는 광명이 찾아온다. 틈은 우리가 만들어 낼 수도 있고,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만들어지기도 한다. 우리가 만든 틈은 스스로 그 틈을 메우는 작업을 통해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다. 통제 불가능한 틈을 통해 인간이 얼마나 미미함 존재인지를 깨달으며 겸손을 배울 수 있다.     

 

자신에 대한 실망, 주어진 환경의 변화, 사람들 간의 관계가 만들어 낸 틈은 일시적으로 우리를 힘들게 만들기도 하지만, 이런 틈을 잘 활용하면 긍정적인 모습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된다. 변화를 위해서는 틈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이해할 필요가 있다. 남들의 눈에는 확실하게 보이는 틈이 오직 자신은 눈에만 보이지 않는 사람도 있다. 상황의 변화로 인한 틈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신의 경험과 주관만을 고집하는 사람들도 있다. 과거의 틈에 매몰되어 현실을 망각할 수도 있고, 오지도 않는 미래에 대한 무의미한 상상과 기대를 하며 현실과의 괴리감, 즉 틈을 더 크게 만들어 낼 수도 있다. Cohen은 틈을 통해 빛을 맞이할 수 있다고 하면서 동시에 삶의 지혜를 한 마디 던져준다.    

  

지나간 그 무엇과 아직 있지도 않은

그 무엇에도 신경을 쓰지 말기를

Don't dwell on what has passed away,

or what is yet to be     


틈은 과거의 결과물이다. 과거의 수많은 경험과 생각과 느낌과 감정으로 인해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틈을 메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틈에 매몰되지 않고 시간을 기다리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틈도 변한다. 더 벌어질 수도 있지만, 상황의 변화 덕분에 저절로 메워질 수도 있다. 기다림은 현재의 상태다. 가만히 맥 놓고 기다리는 것이 아니고, 주어진 주변 상황을 받아들이며 그 상황 속에서 할 수 있는 일을 꾸준히 하면서 기다리면 된다. 나머지는 시간이 해결해 준다. 현재에 충실하며 시간을 기다리면 언젠가는 시절인연이 도래해서 저절로 틈이 매워진다. 또 한 가지 오지도 않은 미래에 대한 헛된 꿈이나 망상은 현재를 사라지게 만들고, 그 사라진 현재는 과거가 되어 다시 틈을 만들어 낸다. 삼세(三世), 즉 과거, 현재, 미래는 같은 지점에 있다. 시간이 지나가며 현재나 미래가 과거가 된다. 따라서 과거의 틈을 메울 수 있는 유일한 시점을 바로 현재 밖에 없다.    

  

시간은 하나의 개념에 불과하다. 인간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 놓은 하나의 틀이다. 한 때는 시간 약속을 어기는 사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비난했던 적도 있다. 요즘은 나도 가끔 약속시간보다 늦게 도착하기도 하고, 지인들이 늦게 도착해도 그러려니 하며 반갑게 인사를 한다. 편의를 위해 만들어 놓은 시간 개념을 통해 사람에 대한 평가를 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물론 기본적인 사회적 약속은 지켜져야 하지만, 그렇다고 시간에 온 신경을 쓰며 시간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상황이다. 개념이나 틀은 사라져야 변화가 만들어진다. 알을 깨고 나와야 병아리가 되듯이. 비록 그 과정이 순탄하지도 않고 괴로운 상황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과정을 통해 자신과 타인의 관계에서 발생한 틈을 메울 수도 있고, 자신과 자신의 경험 사이의 틈을 메울 수도 있다. 때로는 스릴감 넘치는 변화를 통해 삶의 활력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      


틈은 일상에서 늘 발생한다. 이미 일어난 틈에 매몰되지 말고, ‘지금-여기’에서 틈을 만들지 않도록 노력하면 된다. 틈에 매몰되는 이유는 그 틈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은 바로 과거에 매달려 있거나, 아니면 미래에 대한 헛된 망상 속에 살고 있다는 의미다. 즉 지금-여기에 머물러 있지 않기 때문에 틈은 늘 발생한다. 길을 걸으며 수많은 잡념과 망상 속에 걸을 수도 있고, 길벗과의 보이지 않는 갈등이 발생할 수도 있고, 신체의 고통을 느끼며 고통에 빠져 자신이 하고 있는 걷는 것과 틈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이 순간이 광명을 통해 틈을 메우는 작업을 하는 매우 귀한 순간이다. 자신과 경험의 틈을 메우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감각에 집중하는 것이다. 청각, 시각, 후각, 미각, 촉각을 통해 느껴지는 감각에 집중하면 된다. 그 감각에 생각이나 마음을 붙이지 않으면 된다. 좋다고 머물지 말고, 싫다고 밀어내지 않으면 된다. 그냥 느끼고 바라보면 저절로 감각에 변화가 생기거나 감각의 위치가 변한다. 변화를 수용하고 감각에 매몰되지 않으면 된다.      


감각은 변한다. 이미 지나간 과거의 감각을 다시 찾으려 애쓸 필요도 없고, 변하는 감각을 잡으려 할 필요도 없다. 그냥 흘려보내면 된다. 감각을 느끼는 순간에 생각이나 감정, 마음이 올라오면 바로 다시 감각에 집중하면 된다. 자신과 자신의 경험, 즉 감각의 합일이 자신과 경험의 틈을 메우는 작업이고 결과물이다. 감각 집중이 채 1초도 되지 않고 다른 망상이 올라온다고 실망할 필요도 없다. 망상은 틈을 메우는 빛이다. 단 한 가지 조건이 있다. 바로 망상을 빨리 알아차리는 것. 망상은 틈이고 알아차림은 빛이다. 틈이 있어야 빛이 들어오듯, 망상이 있어야 깨어있음이 이루어진다. 틈은 고마운 존재다. 어리석음에 빠진 자신을 일깨워주는 발판이 된다. 번뇌가 깨달음의 발판이고 동시에 번뇌는 깨달음이다. 동전의 양면이다. 한 면은 틈이고, 다른 한 면은 틈을 메운다. 한 면은 어리석음과 번뇌고, 다른 한 면은 광명과 깨달음이다. 신문에 실린 캐나다의 음유시인인 Leonard Cohen이 지은 송가를 읽으며 이 글을 쓴다. 코엔의 통찰에 감사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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