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해파랑길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걷고 Jun 09. 2024

해파랑길 4회 차 후기

울산의 심장

새벽 2시 반경 걷기 출발지점인 염포산 입구에 내려 장비를 점검한 후 스트레칭을 한다. 각자 자신마다 신체의 루틴이 있다. 하지만 이렇게 이른 시간부터 활동하는 루틴을 갖고 있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스트레칭을 하며 몸을 깨운다. 하지만 짧은 스트레칭으로 몸이 쉽게 깨어나지는 않는다. 습관에 익은 몸은 쉽게 그 패턴을 바꿀 수 없다. 익은 것에서 벗어나는 일은 그만큼 쉽지 않다. 서둘러 몸을 깨우려 하거나 익숙한 패턴을 깨려는 노력은 자칫하면 자신에게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다줄 수도 있다. 스트레칭을 하며 몸의 감각을 느끼는 것은 몸이 활동하고 있다는 것을 자신에게 알리는 중요한 사인이다. 몸의 감각을 느끼며 자신의 몸을 깨우고 동시에 마음을 깨운다. 몸과 마음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염포산은 비록 높은 산은 아니지만 새벽에 몸이 덜 깬 상태에서 계속해서 이어지는 산길을 오르는 일은 쉽지 않다. 깊은 어둠 속 산길을 랜턴으로 밝히며 앞으로 나아간다. 비록 오르막길이지만 길은 매우 잘 정비되어 있다. 저 멀리 아랫마을은 온천지가 불야성이다. 쿵쾅거리는 소리는 멀리 떨어진 깊은 산에도 그 울림이 전해진다. 저 마을에는 무슨 일이 진행되고 있는 것일까? 다시 어둠 속에서 집중하며 길을 걷는다. 이번에는 나방들이 총 출격한다. 마치 비행기가 공습하듯 불빛을 향해 달려든다. 그들에게 사람은 보이지 않고 다만 불빛만 보일 뿐이다. 그 불빛이 경우에 따라서는 미끼가 되어 자신의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겠지만, 이들은 그런 생각조차 하지 않고 그냥 달려든다. 몸에 익은 습관 때문이고, 오래된 유전자가 만들어낸 본능이다. 불빛 때문에 살고 죽는다. 마치 우리가 욕망 때문에 살고 죽듯이.      


나방의 공격에 신경을 빼앗기면 위험에 처할 수도 있다. 그들이 공격하든 아니든 나는 나의 길을 가야 한다. 그들이 나의 신경을 분산시키면 분산시킬수록 나는 더욱더 발걸음에 집중하며 한발 한발 앞으로 내딛는다. 처음 가는 길이기에 길 방향 표시인 ‘해파랑길’ 리본이 가이드가 된다. 리본을 찾는데 온 신경을 집중하며 걷는다. 나방은 그들의 할 일을 하고 나는 나의 할 일을 할 뿐이다. 그들의 활동에 정신을 빼앗기면 그들에게 원망하는 마음이 올라올 수도 있을 것이고, 나의 길을 찾지 못해 당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오히려 모든 생명들이 깊은 잠에 빠져 있는 시각에 갑자기 나타난 우리들이 그들을 공격하고 있는 것이다. 미안한 마음을 갖고 조용히 걷는 것이 뭇 생명들에 대한 예의다. “미안하다. 잠을 깨워서. 그냥 조용히 지나갈 게. 이해해 줘.” 마음속으로 미안한 마음을 전한다.       

마을을 향해 ‘미포조선소’라는 표식이 보인다. 아랫마을의 불야성을 이룬 곳이 바로 미포조선소다. 자료를 찾아보니 1975년 4월에 현대 미포조선소가 설립되었다. 약 50년간 사업을 운영하며 울산과 나라와 운명을 함께 해 온 기업이다. 밤에도 불야성을 이룬 것으로 보아 24시간 작업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울산 전망대에 올라 미포조선소를 바라본다. 불빛이 아름답다. 그 안에서 활동하고 있는 작업자의 모습을 잠시 그려본다. 그들의 건강한 노동이 아름답다. 그 노동 덕분에 가족이 먹고살고, 나라도 먹고살 수 있다. 우리가 잠든 시간에도, 계절의 변화에도, 기후의 변화에도, 또 어떤 정치적 상황이나 국내외 상황의 변화 속에서도 작업은 24시간 진행되고 있다. 그 불빛이 그리고 그 쿵쾅거리는 작업 소리가 울산의 심장 박동 소리다. 울산의 심장은 24시간 1년 365일 50년간 잠시도 쉰 적이 없다. 심장이 활동하지 않으면 모든 생명은 죽는다. 사람도 기업도 마찬가지다.      


울산의 심장 박동 소리를 들으며 잠시 경건해진다. 그리고 고마움을 느낀다. 이 고마운 마음은 확장된다. 야심한 시각에 갑자기 염포산을 찾은 우리를 맞이하는 나방은 우리를 공격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를 반기고 있다. 나방에게 고맙다. 생각은 이렇게 바뀐다. 처음에는 다소 귀찮았던 나방의 출현이 나중에는 고맙다는 생각으로 변한다. 생각은 믿을 게 못 된다. 생각은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만들어 낸 허상에 불과할 뿐이다. 우리들 삶 속에서도 이 이치는 그대로 적용된다. 어떤 생각, 감정, 마음도 나의 것이 아니고, 내가 아니다. 그들은 그냥 허상이고 망상이다. 마치 홀로그램과 같다. 그 홀로그램은 우리의 관념과 과거의 기억과 경험이 만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생각과 감정을 ‘나’라고 생각하고 그것에 빠져 울고 웃고 한다. 참 어리석다. 생각 한 번 바뀌면 세상이 변한다. 세상이 변한 것이 아니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뀐 것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었다는 것은 세상이 변했다는 의미와 동일하다. 우리의 세계는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현상적 세계만 존재할 뿐이다.      


허상이고 실체가 없는 생각, 감정, 기억에 빠져 가상의 세계를 만들고 그 가상의 세계에 빠져 살며 즐거워하고 고통스러워한다. 이 사실만 알아차릴 수 있다면 금방 고락에서 벗어날 수 있다. 삶의 사소한 경험이 사소한 깨달음으로 이어지고, 이 사소한 깨달음이 쌓이면 흔히 얘기하는 큰 깨달음이 된다. 따라서 사소한 일상을 매우 소중하게 여기며 그 일상 속에서 알아차림을 통한 깨달음을 얻으려는 노력을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반복된 일상의 상황과 만나는 사람과의 관계 속에 깨달음이 숨겨져 있다. 반복에서 깨어나는 것이 깨달음이고, 습관에서 벗어나는 것이 깨달음이고 깨달음의 결과다. 깨달음은 실은 별 것 아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평온을 유지하며 무심하게 살아가는 것이 깨달음이고 깨달음의 결과다. 결국 편안한 삶이 바로 깨달은 삶이다. 그 삶의 기술을 배우고 깨닫는 일이 수행이고 마음공부다.      

8코스를 마치고 잠시 커피숍에 들어가 휴식을 취한다. 즐거운 수다와 맛난 다과를 먹고 마시며 활력을 충전한다. 비가 오시려는지 습한 바람이 분다. 조금 서둘러 걷는다. 원래 도착 예정지인 주전몽돌해변까지 가려면 10km 이상을 걸어야 한다. 봉대산에 오르기 전 장비를 점검하며 배낭에 레인커버를 씌우고 우비를 쉽게 입을 수 있게 준비한다. 조금 오르니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우비를 입거나 우산을 쓰고 걷는다. 시원하다. 일반적으로 비를 맞으며 걷는 것은 그다지 유쾌한 경험이 아닐 수도 있지만, 지금 걸으며 맞고 있는 비는 시원하고 달콤한 비다. 비를 맞고 웃으며 걷는다. 산길 끝 지점에서 독경소리가 들린다. 아마 천도재나 49제 막제를 지내고 있는 것 같다. 일상적인  염불소리와는 다르다. 사찰 주변길이 빗질로 정갈하게 쓸어져 있다. 오랜만에 만난 빗질이 만든 절 마당의 풍경이 정겹다. 도착 지점을 주전패밀리 캠핑장으로 변경해서 길을 마쳤다. 총 거리 16.9km, 소요시간 7시간 10분, 운동 시간 5시간 39분, 평균속도 2.9m/h. 우리의 운동 기록 정보다.      


근처 식당에 들어갔다. 음식 주문부터 음식 나오기까지, 정확히 얘기하면 우리가 음식을 가져다 먹기 전까지 약간의 혼란이 있었다. 그 식당 주인의 태도가 신경에 거슬린다. 손님을 대하는 태도도 그다지 친절하지도 않고, 음식 주문에 대한 자세한 설명도 없이, 식당의 규칙만 강조한다. 하지만 다행스럽게 음식은 맛있고 정성이 들어있고 정갈했다. 식당주인의 태도와 식당의 운영방식에 관한 불만은 금방 사라지고 음식이 맛있다는 생각에 배불리 먹고 나왔다. 또 한 번 속았다. 주인의 태도와 방식으로 인해 나의 감정이 올라왔고, 그 불편함을 주인에게 돌리고 있었다. 바로 이때 불편한 나의 마음만 바라보고 있으면 되는데 또 한 번 ‘나’라는 가상인물의 감정과 생각, 그리고 습관에게 속았다. 홀로그램과 싸우는 바보 같은 짓을 하고 있었다. 분하다!!     

  

나의 행동, 생각, 감정, 기억, 느낌을 불러일으킨 대상이나 상황과 싸우지 말고, 그때 일어난 나의 반응을 비판단적으로 바라보는 연습이 필요하다. 바라보면 사라진다. 내가 상대할 놈은 생각과 감정을 불러일으킨 대상이 아니다. 그때 나에게 일어난 생각과 감정이 바로 내가 상대할 놈이다. 굳이 상대할 필요도 없다. 그냥 그 생각과 감정을 비판단적으로 바라만 보고 있으면 그놈들은 저절로 사라진다. 내 앞에 나타난 감정과 생각이 홀로그램이라면, 그 홀로그램 없애기 위해 영상을 만든 기계의 전원 스위치를 끄면 된다. 그 행위가 바로 그저 일어난 자신의 감정과 느낌과 감각을 비판단적으로 바라보는 일이다. 전원을 끄면 홀로그램 영상은 저절로 사라지고 따라서 싸우고 있는 어리석고 미친 짓을 멈추게 된다. 참 쉬운 일인데 쉽지 않다. 길벗과 길을 걸으며, 또 일상 속에서 우리는 홀로그램의 전원 스위치를 끄는 마음공부를 24시간 해 나갈 수 있다. 미포조선소의 늘 깨어있고 활동하는 심장 박동이 울산을 살리듯, 우리는 깨어있는 알아차림으로 우리를 살릴 수 있다. 희로애락에서 벗어날 수 있고 평안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파도가 일어도 바다 심연은 늘 고요하다.

https://youtu.be/IdyH0xMbL2w?si=FQSyK6BT85s4gsj_


매거진의 이전글 해파랑길 3회 차 후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