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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휘남 Apr 11. 2018

믿음이 가지는 힘

이안 감독의 <라이프 오브 파이>

스포일러: 강함



 수많은 이스터 에그를 차치하고서라도 <라이프 오브 파이>는 믿음에 관하여 이야기하는 영화다. 모두가 불가능할 거라 여겼던 [파이 이야기]의 영화화 프로젝트가 4년이라는 긴 세월의 끝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그것이 가능할 것이라는 믿음 덕분이었다. 그 누구도 성공에 대한 믿음 없이 거대 파도 수조와 천만 개의 털을 가진 CG 호랑이를 만들지는 않으므로. 종교와 과학, 인간이 만들어낸 체계와 학문의 사이에서 영화는 매 순간 믿음을 말한다. 그 이야기의 중심에 피신 몰리토 파텔이 있음은 물론이다.


 과학을 믿는 아버지와 종교를 믿는 어머니 밑에서 자랐지만, 영화 초반부 어린 피신 몰리토 파텔에게 그것은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순수한 이 소년에게 가장 결정적인 것은 다만 수영장에서 따온 이름이 아이들 사이에서 놀림감이 된다는 것. 피신은 더 이상 친구들에게 놀림받지 않기 위해 자신의 이름을 ‘파이’로 바꾸고 그것을 자신의 진짜 이름으로 믿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친구들에게도 자신의 이름을 파이로 소개한다. 어린 소년의 노력은 그를 전설로 만들고, 피신 몰리토 파텔은 믿음 그대로 파이가 된다. 믿음의 힘을 알게 된 소년에게는 종교가 찾아오고, 그것은 곧바로 소년의 전부가 된다.


<라이프 오브 파이> 스틸 컷

 이때부터 종교에 대한 파이의 믿음은 맹목적이 된다. 파이는 이성을 믿으라는 아버지 앞에서 세례를 받고 싶다고 말한다. 파이가 위험에 처하는 순간 아버지는 감성에 기인하는 종교가 끝끝내 파이를 위험에 빠뜨렸다고 단정한다. 과학을 주창하는 아버지 앞에서 파이는 큰 상처를 입고 결국 믿음을 잃는다. 믿음이 전부였던 파이의 삶은 당연하게도 암담해졌지만, 파이의 아버지는 여전히 이론을 믿었다. 그에 의하면 동물의 눈에 비치는 것은 다름 아닌 그 눈을 바라보는 자의 반사된 모습이었다.  


 그러나 파이는 요시나가 크리슈나의 입에서 우주를 보듯 리차드 파커의 눈에서 또다시 영혼을 본다. 일본 선박이 침몰하고 리차드 파커와 한 배에 오르고부터 파이의 성장드라마는 시작된다. 감성적인 인간 파이는 본능에 충실한 리차드 파커와 바다 위를 표류하는 동안 아버지의 영역이었던 이성과 어머니의 영역이었던 감성의 균형에 대해 배운다. 이들이 타고 있는 구명보트는 바로 그 균형에 따라 안정되고 역동 친다.


본능에 충실한 리차드 파커와 감성적인 인간 파이

 이 영화에서 생존 본능은 이성으로 치환된다. 종교적인 믿음(감성)으로 채식을 하던 파이는 오로지 생존을 위해 육식을 자처한다. 본능과 감성의 대립 구도가 보다 명료해지는 순간이다. 본능에 충실하던 리차드 파커는 파이의 동료이자 친구가 되고, 신에게 의지하던 파이는 구호물자의 생존 지침서를 읽기 시작한다. -그럼에도 파이는 끝끝내 믿음을 잃지 않는다. 의식을 잃어가는 순간 자신의 믿음의 기원과도 같았던 원주율의 소수점 자리를 읊조리는 파이의 모습은 의미심장하다.- 이성과 감성, 과학과 종교라는 두 가지 모두에 대한 믿음은 이들을 끝내 육지로 인도한다.


 결말에 다다르면 믿음에 대한 영화의 이야기는 일순간 힘을 잃는다. 친구라고 여겼던 리차드 파커는 홀연히 떠나가고, 파이가 들려준 두 이야기는 아무런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며, 일본 선박 직원들은 진위 여부를 떠나 자신들이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믿고 떠난다. 다시 말해 <라이프 오브 파이>의 엔딩에서 믿음은 우리를 배신하고 문제를 방치하고 오류를 그대로 수용하게 한다. 믿음의 중요성을 시종일관 강조하던 영화의 이중적인 결말에 관객은 당황한다. 이 영화가 말하는 믿음이란 과연 무엇인가?


인생에 대한 거대한 메타포, <라이프 오브 파이>

 <라이프 오브 파이>는 절대적인 무언가를 믿으라고 말하는 영화가 아니다. 이 영화에서 믿음이 가지는 가장 큰 힘은 바로 우리를 목표하는 곳으로 인도해준다는 데에 있다. 그것이 파이의 227일간의 긴 여정이 의미하는 바이다. 배신당했지만 파이는 결국 생존했고, 아무것도 해결되지 못했지만 파이는 결국 극복했다. 진위 여부를 떠나 일본 선박 직원들은 자신들의 나라로 돌아갔다. 주저하고 망설이는 자들에게 믿음은 능동적인 힘을 부여한다. 절대적이거나 완벽하지 않을지언정 믿음은 인간을 전진하게 만든다.


 인생이란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거대한 망망대해와 같다. 무엇이 옳은지 알 수 없는 선택의 기로 앞에서 인간은 수도 없이 흔들리고 방황하고 또 좌절한다. 후회만을 낳는 선택일지라도 우리는 어느 한쪽을 택해야만 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 선택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이 바로 믿음이다. <라이프 오브 파이>가 보여주는 긴 여정은 인생에 대한 거대한 메타포처럼 느껴진다. 마음먹기에 달려있는 삶. 우리의 이야기를 해피앤딩으로 만드는 것은 결국 우리 자신이다.




이미지 출처: Daum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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