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을 모아서

언젠가의 그날이 오면

by 휘리


어디에서나 당당한 내가 되고 싶지만 쉽지만은 않다. 의기소침한 모습의 나에게 변화를 주고 싶고, 마음속에 품고 있는 목표를 향해 가면서 짧게라도 실제로 경험하는 게 필요한 것 같다고 느꼈다. 떠나고 싶었다. 그래서 가게 된 호주 여행. 호주는 내가 정말 가고 싶었던 나라 중 한 곳이었다.


누구에게나 장거리 비행은 쉽지 않겠지만, 나에게는 특히나 더 어려웠던 것 같다. 10시간 동안 갇힌 공간 안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은 나를 불안하게 했다. 나는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대중교통을 못 탔다. 늘 방 안에서 혼자 있던 나는 타인과 함께 있는 상황과 공간을 극도로 무서워했다. 타인과 함께 있을 때, 특히 대중교통 안에서는 극도로 긴장해서 아주 작은 소리조차 내지 못했고, 타인과 함께 있는 것, 특히 대중교통 타기 굉장히 두렵고 어려워했다. 대중교통으로 한 정거장에 가는 것도 나에게는 큰 도전이었고, 타인 앞에서 큰 긴장을 하는 난 타인과 함께 있을 때 물 한 잔을 마시는 것도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심리 상담을 받기 시작한 이후 나는 많이 변화했는데, 심리 상담은 내 내면의 상처를 어루만져주며 크게 안정되게 도와주었다. 심리 상담은 스스로 생각지도 못한, 하고 싶지만 절대 하지 못할 것으로 여기던 크고 작은 다양한 도전을 시도해 보게 해주었고 어느 순간 대중교통으로 2시간쯤 가는 일은 아무렇지도 않아졌다. 하지만 대중교통에서처럼 중간에 내릴 수도 없는 비행기에서의 10시간은 나에게 큰 도전이었고, 한 손에는 멀미약, 한 손에는 진정제를 쥐고 비행기를 탔다. 하지만 의외로 비행기 안에서의 시간은 고통스럽지 않았다. 옆자리에 내가 이런 공간을 무서워한다는 걸 아는 가족이 앉아 훨씬 덜 긴장이 되었고, 자고, 일어나면 기내식을 먹고, 또 자니 호주에 도착해있었다.




처음엔 호주에 온 게 실감이 안 났다. 내가 호주에 온 게 맞나? 늘 생각만 하던, 꿈꾸던 곳에 정말 온 게 맞나? 해외에서의 삶을 꿈꾸는 나에게, 세계 여행을 꿈꾸는 나에게, 두려움을 딛고 호주에 짧게나마 여행 왔다는 사실은 매우 큰 의미였다. 오고 싶었지만 내가 할 수 있을까? 라고 생각하며 망설인 시간이 자그마치 10년이 넘은 것 같은데, 나도 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나도 세계로 나아갈 수 있다고 느낄 수 있었다. 이걸 알 수 있게 되기까지 10년이 걸렸다. 나는 내가 아픈 게 조금이라도 나아진다면 하고 싶은 일들을 상상한 적이 수도 없이 많다. 하고 싶은 일들은 아주 사소한 일부터 큰 용기가 필요한 일까지 다양했는데, 이를테면 도서관 가기, 타인과 같이 밥 먹기, 아주 먼 나라로 떠나기 같은 것들이다. 내가 아픈 게 조금이라도 나아진다면 정말 뭐든지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막상 나아지고 나니 쉽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하고 싶은 것들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하고 싶은 것들이 생기면 그 감정을 놓치지 않게 노력하는 것 같다. 이젠 생각만 하고 상상만 하는 게 아니라 그 상상을 실행할 용기를 얻었고, 어렸던 내가 꿈꾸기만 했던 일들을 많이 실행하게 되었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던, 삶을 포기하길 바랐던 어렸던 내가 지금의 나를 보면 어떤 생각을 할까? 생각했던 것보다 오래 살아보니 살아가는 게 꽤 즐거운 일이라는 걸 점점 알게 되는 것 같다.





일상적인 모든 행위가 낯설어지는 낯선 곳에서의 경험. 우측통행이 아닌 좌측통행, 버튼을 눌러야 바뀌는 신호등, 지하철을 타는 것, 마트에서 계산하는 것… 두려웠지만 누군가의 도움을 받으며 마치 처음 배우는 것처럼 하나하나 차근차근히 해나가다 보면 할 수 있었다.


많은 고민의 소용돌이 속에 있을 때 떠나게 된 여행이라 마음이 좀 복잡했다. 정말 기쁘고 행복하면서도, 많은 생각이 들었다. 여러 상황을 겪고, 다양한 경험을 하며 매일매일 나의 부족함을 깨닫고, 관계 속에서 어려움을 느끼고, 나는 왜 이정도밖에 안 될까? 나의 목표보다 너무 먼 자신을 보면, 빨리 성장하고 싶어 마음이 조급해진다.



이제야 조금 ’정말 호주구나‘하고 실감이 났던 풍경. 나는 왜 늘 새로운 세상에 대한 갈망이 있었을까? 언제나 꿈꿨던 곳에 지금에서야 오게 되었구나. 벅차올랐다. 살아가는 걸 포기하지 않았음에 도착한 곳.


이번에 여행하며 사랑했던 존재들이 많이 생각났다. 여행하면서도, 여행을 다녀온 지금에도, 마음 한편에 만들어둔 방 안의 소중한 존재들이 떠오른다. 그들이 그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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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에 찾아온 보물 같은 존재인 뭉실이와 그분을 떠올리며, 언제나 그 두 존재처럼 되고 싶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하는데 참 어렵다. 현재를 살고 싶고, 마음이 큰 사람이 되고 싶다.


동물병원에서 일하며 ’감사합니다‘와 ‘죄송합니다’를 달고 사는 나에게 상사가 해줬던 말이 있는데, 너무 저자세로 굴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었다. 그 마음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존재하고 내가 그런 사람들에게 이용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친한 언니도 자주 말하는 것 같다. 너무 착하게만 살 필요 없다고. 지금은 다행히도 나의 이런 마음을 이용하기보다 좋아해 주는 사람들이 주변에 가득한 것 같아 감사하다. 하지만 심리 상담 선생님도 나에게 늘 하는 말이 불편한 감정도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나에게 아직 부족한 부분인 것 같다. 나 또한 좋은 사람이면서도 너무 바보 같진 않고 싶다. 모든 일에 괜찮다고만 하는 사람이 되긴 싫다. 하지만 나에겐 아직 어려운 과제다.



바람을 맞으며 가슴이 뻥 뚫릴 듯한 바다를 보며 걸었다. 나는 바다와 숲, 자연을 좋아한다. 자연을 보거나 그 속에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어렸을 때는 돈이 없어서, 성인이 되고 나서는 무서워서 대중교통을 잘 못 탔고, 그래서 걸어 다니다 보니 걷는 게 좋아졌다. 걸으며 보게 되는 풍경과 평소엔 놓치게 되는 작은 것들을 볼 수 있어 좋다.



처음 겪어보는 한 여름의 크리스마스.





바람이 나의 고민을 실어 저 바다 너머로 보내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여행하며 생각보다 나는 괜찮은 점이 있는 사람이라는 걸 느꼈다. 이를테면 어렸을 때부터 단련된 다리 근육으로 조금 더 많이 걸어도 쉽게 지치지 않는 체력. 여행할 때 굉장히 유용했다.



호주에는 다양한 새가 길거리에 많아서 신기했다.




나의 버킷리스트였던 퍼핑 빌리 기차를 타러 시드니에 있는 가족을 뒤로하고 멜버른에 갔다. 나는 기차표에 있는 기차 칸을 잘못 보고 다른 칸에 타게 되었는데, 거기에 나처럼 혼자 여행 온 분이 계셔서 대화를 나누고 서로 사진을 찍어줬다. 그분은 미국에서 오셨다고 했는데, 내가 영어가 익숙하지 않으니 굉장히 쉬운 단어를 고르고 골라 아주 천천히 말씀해 주셨는데 굉장히 감사했다. 기대하지 않았던 만남과 친절은 여행의 즐거움이 배가 되게 해주었다.









꿈만 같았던 퍼핑 빌리. 비 오는 날씨였음에도 내가 기차를 탈 때는 비가 그쳤던, 행운이 함께 했던 날.





생각에도 길이 생기고 길이 닫힌다. 생각에도 길이 있다. 쉽진 않지만, 부정적 사고가 나오려 할 때 계속해서 ‘그것의 가능성은?’, ‘근거는?’, ‘다른 가능성은 뭐가 있을까?’ 하며 다른 쪽으로 길이 생기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러면 새로운 길이 생기고 내가 원하는 편안한 내 모습으로 점차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매일매일 포기하고 싶어지지만 호주 여행을 계기로, 언제나 몇 번이라도 일어나서 살아보기로 했다.


안녕, 행복했던 호주.


다음에 또 볼 수 있기를.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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