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바닥

안식처

by 휘리

이 불안은 무얼까. 시도 때도 없이 불현듯 찾아오는 불안에 내 마음은 오늘도 소란하다. 소란한 마음을 잠재우려 노력해 보지만 쉽사리 진정되지 않는다. 나의 불안은 어디서 오는 것이며 왜 존재하는 것일까. 불안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 불안의 이점을 찾으려 집요히 생각의 꼬리를 이어 나가지만 마음에 꼭 맞는 답을 찾기란 쉽지 않다. 불안의 근원을 찾기 위해 마음의 바닥을 살펴본다.


나는 친아버지가 없고 아저씨와 새 아버지가 있었다. 자질구레한 이야기다. 나는 친부모와 함께 살았다. 친아빠는 폭력을 익숙히 휘둘렀고 돈을 자신을 위해서만 썼다. 부모가 이혼을 했다. 그 후 친아빠와 함께 살았다. 나쁘지만은 않았다. 사실 꽤 괜찮았다. 의외였다. 짧은 시간 함께한 친아빠와 작별하고 친엄마와의 생활이 시작됐다. 동거인이 한 명 있었고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친엄마와 동거인의 다툼이 점차 잦아지고 과격해졌다. 그럴 때마다 나는 방문을 굳게 닫고 그 안에서 벌벌 떨었다. 심장이 콕콕 찔리듯 따끔하고 마음은 늘 술렁였다. 잠들어도, 깨어있어도, 좋아하는 일을 해도 떨쳐낼 수 없던 마음의 균열, 아물 새도 없이 계속해서 덧대어진 상처. 동거인이 떠났다. 시간이 가고, 엄마의 얼굴에서 평생 보지 못한 평온한 미소를 보게 된다. 새 아버지가 생겼다. 그리고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좋은 어른을 만나게 된다.


작은 사무실을 운영했던 그는, 검소하고 성실했다.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잘 보살필 줄 알았다. 새 아버지의 주변에는 늘 그를 따르며 좋아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는데, 새 아버지를 한 번이라도 만나본다면 왜 그런지 자연스레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늘 돈에 허덕이던 우리의 빚을 갚아주었고 가난과 폭력에서 벗어나 내 기억상 처음으로 안정된 생활을 경험했다. 새 아버지는 항상 우리를 배려했다. 바로 함께 사는 게 아니라 집을 분리해서 살았다. 같이 살진 않았지만 늘 함께 밥을 먹었다. 이에 대해 지금 생각해 보면 뭐라 해야 할지 모르겠을 정도로 먹먹하다. 새 아버지는 마음이 컸다. 마음이 너무 커서 많은 걸 기꺼이 짊어지는 사람이었다. 새 아버지 같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나와 그가 만난 시기가 좋지 않았다. 나는 마음의 병이 치유되지 못한 채 곪다 못해 터져 부패하여 악취가 진동하고 있었고 마음 안에 남아있는 토양이라곤 없었다. 난 그와 대화하길 거부하고 같이 밥을 먹는 것을 거부하고 그와 눈을 마주치길 거부하며 함께 있는 것을 거부했다. 나는 가끔 미소를 보이고 대부분 어두운 우울 속에 갇혀있었다.


나는 세상의 모든 것에 지쳐있었다. 세상으로부터 도망쳤다.


입시 공부만이 모든 것이었던 숨 막히는 학교는 언제나 나와 맞지 않았다. 늘 웃는 가면을 썼던 나는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가면에 금이 가기 시작했고 가면에 생긴 금이 늘어갈수록 그 속 안의 나 또한 나도 모르는 새 금이 가기 시작했다. 나와 맞지 않는 얼굴로 지내던 시간, 투명 인간처럼 지내던 시간, 나를 죽여가며 남과 지내던 시간. 수년간에 걸쳐 생긴 균열은 결국 나를 부쉈다.


초점 없는 눈동자로 간신히 숨만 내쉬며 버텼던 수많은 하루하루가 쌓여 고등학교 2학년 겨울방학, 버티고 버티던 나는 결국 무너져 살기 위해 자퇴했다.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학교를 더 다니다간 질식할 것만 같았다. 학교에 가 선생님을 만나 자퇴하고 나가는 길, 마지막으로 봤던 싸늘한 복도와 학교의 풍경. 나는 불안했고 자유로웠다.


그때 당시 자퇴는 꽤 큰 일이었고 엄마 역시 바로 나를 몰아세웠다.

“이제 어떡하니, 자퇴했는데 이제 뭐 하고 살래.”


겨우 트인 숨통이 막혀갔다. 집에서 내쫓겨 상가 계단에 앉아 졸며 하룻밤을 뜬눈으로 지새우고 갈 곳 없이 공중화장실에서 시간을 보내다 집으로 돌아가던 기억이 선명하다. 익숙했다. 어렸을 때부터 집에서 내쫓길 때마다 반복했던 일이다. 가족에 대한 신뢰가 바닥으로 치달아 점점 가족들과 마주하길 피했다. 사람에 대한 신뢰 또한 무너져 집 밖으로 나가는 것도 점점 꺼려졌다. 점차 집 밖으로 나가지 않게 되었고 시간이 흐르며 방 밖으로 나가지 않게 되었다. 가족들이 없을 때만 방 밖으로 나왔고 그 외엔 방안에만 있었다. 어두컴컴하고 길고 긴 동굴 속이었다.


매일 잠들 때마다 내일은 눈 뜨지 않기를 빌었고 깨어있을 때는 내가 만든 과거와 미래의 족쇄에 붙들려 나를 괴롭혔다. 살고 싶지 않았다. 내 마음을 대변하듯 방은 점점 난장판이 되어갔다. 쓰레기들이 쌓였다. 방에 날파리가 생겨났다. 새 아버지와 엄마가 이별했다.


초등학생 때부터 키우던 강아지가 있었다. 나조차 버린 나를, 나조차 나를 믿지 않고 스스로를 싫어하는 나를 믿고 따르고 좋아했다. 강아지를 보기 위해 점점 동굴에서 나오게 되었다. 강아지에게 나쁜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서 몸과 마음을 정돈했다. 강아지를 위해 하는 일이었던 게 나를 점차 나아지게 했다.


강아지는 내 삶의 태도를 돌아보게 했다. 강아지는 지나간 것에 대해 생각하기보단 현재에 대해 생각했다. 과거에 못 했더라도 지금 노력한다면 시간이 흐른 후에는 용서했다. 강아지로부터 용서를 배웠다.


강아지는 어두컴컴한 밤 속에서 헤매고 다니던 나에게 밤하늘에서 밝게 빛나 가야 할 길을 비춰주던 달과 같은 존재가 되어주었다. 나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고 새로운 삶을 살게 했다. 내가 있던 곳이 동굴이 아니라 터널이었음을 그제야 알게 되었다. 나의 길고 긴 첫 번째 터널이 끝이 났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 엄마에게 듣기를, 우리가 함께 살았을 때 새 아버지는 암 투병을 하고 계셨다고 했다. 그리고 또다시 시간이 지나고 나서 엄마에게 듣기로, 새 아버지는 돌아가셨다고 한다.


오랜 시간 나는 너무 병들고 지쳐있었다. 과거처럼 매분 매초 찾아오던 불안은 이제 자취를 감춘 듯하지만, 불안이 남긴 상흔이 내 안에 남아있다. 그 흔적은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와 날 흔든다. 그들은 하늘로 돌아갔지만, 그들이 알려준 삶의 방식은 내 안에 영원히 남아 나를 지켜 줄 것 같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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