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자신을 용서해야 한다.
조울증이 있는 나는 조증을 겪는다. 그리고 조증 때 한 말과 행동은 나의 죄가 되었다. 조증 때 나는 가족에게는 과거의 부스러기 하나하나까지 끈질기게 찾아내 지적하며 거대한 분노를 터트려 나무랐고 조금이라도 안면이 있는 내 주변의 모든 사람과 스쳐 지나가는 사람을 한 사람도 빠트리지 않고 지적하고 탓했다. 그리고 조증이 가라앉은 지금, 그것은 죄가 되어 나로 하여금 무한한 수치심을 느끼게 하였다.
시작은 어디서부터일까. 빛바랜 기억이지만 나에게 지금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어린 시절의 기억 때문일까? 내가 태어나면서부터 시작된 걸까? 시작은 알 수 없지만 조증이 발생하기 전후의 기억은 이렇다.
몇 년간 우울증약을 먹고 있었다. 차도가 좋아져 약을 끊어보기로 했다. 그리고 약 없이 달마다 한 번씩 진료를 보기로 했다. 혹여나 상태가 악화할 수 있고, 약이 필요할 때 바로 처방받을 수 있도록 그렇게 하기로 했다. 그리고 몇 개월간은 잘 되고 있었다. 잘되고 있는 것만 같았다.
키우던 강아지가 떠났다. 하나뿐인 동생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나는 그걸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 같다. 슬퍼하지 않으려 했던 것 같다. 처음으로 조증이 나타났다. 주변 사람들을 지나치게 신경 썼다. 주변 사람들의 평가, 생각, 말, 숨소리 하나까지 신경 쓰며 의미 부여를 했다. 계속 누군가와 싸웠다. 실제로 싸우기도 하고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나 자신만의 싸움도 많았다. 가족들과의 트러블이 점점 생기고 악화되었고 직장에서 트러블이 생기고 악화되었다. 흔히 조울병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나 또한 내가 매력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실제로 그랬을 수도 있다. 이때까지는 경조증이었던 것 같다. 경조증은 때로 사람을 쾌활하게 한다. 또한, 조증은 나 자신을 매력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특징이 있다. 직장에서 퇴사했다.
그 후 단기 알바를 하며 생활비를 벌었다. 그때 나는 조증으로 인한 에너지로 가득했고 그로 인해 꽤 일을 잘하는 사람이었다. 자신감이 팽창했다. 나는 모든 면에서 능력 있고 건강하고 성숙하며 ‘옳은’ 사람이었다.
그런 상태로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주변 사람에게 강요했다. 가족에게 강요했다. 가족과 트러블이 악화된 상태로 일본으로 여행을 갔다. 조증이 폭발해 미친 사람처럼 가족에게 화를 냈다. 사람들과 싸우고 다녔다. 점원이 인종차별을 했다며 말로 난동을 부렸다. 내 생각은 항상 옳은 것이었다. 내가 인종차별을 했다고 한다면 인종차별을 한 것이었다. 가족에게 여행 내내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명령했다. 넌 옳지 못한 거라고 했다.
일본 여행을 다녀온 직후 나는 나에게 도취하여(강아지가 떠난 이후로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나에게 도취되어 갔다.) 가족은 나에게 장애물이 되니 거리를 둬야겠다고 생각했다. 온갖 영화, 드라마, 책 속의 주인공에게 이입하였다. 가족에게 조언을 해주겠다며 엄청난 양의 편지를 주기도 했다. 편지를 읽은 가족은 본인에게 무언가를 쏟아내는 것 같다고 했다. 한 회사에 면접을 보고 압도적인 에너지를 좋게 봐준 회사가 합격 연락을 줬다. 제주도에 갔다. 숙소가 제공되었고 룸메이트가 생겼는데 입사 초반에 룸메이트와 트러블이 생겼다. 룸메이트도 아픈 사람이었다. 나에게 큰 실수를 했다. 조증이 악화되었다. 실재하지 않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실재하지 않는 소리가 들렸다. 또다시 싸우고 다녔다. 과격한 행동을 했다. 병원에서 의자를 걷어차고 셔틀버스에서 조용히 하라며 직장동료가 앉은 의자의 등판을 세게 찼다. 위험한 행동을 했다. 상담 선생님의 도움으로 집에 돌아왔다.
집에 돌아와 병원을 예약했다. 그리고 방에 틀어박혔다. 내 상태가 이상해서 동굴 속에 들어가야 할 것 같았다. 가족들과의 사이는 여전히 좋지 않았다. 나는 방안에서 계속 글을 썼다. 하루에 5만 자 이상을 쓰기도 했다. 에너지가 미치도록 넘쳐났다. 가족들이 말을 걸면 화를 냈다. 그러다 생각을 정리한다며 자전거 여행을 떠났다. 나에게 도취하며 여행했다. 비가 오던 날 택시가 차선을 이탈해 내 쪽으로 와 물벼락을 맞았다. 별것 아닌데도 큰 공격처럼 느껴졌다. 난 세상과 맞서 싸우는 용사였다. 여행 마지막 날 무릎을 다쳤다. 집에 돌아와 다시 방에 틀어박혔다. 치료받을 때만 밖에 나왔고 가족들과 마주치면 불같이 화를 냈다. 그러다 한 회사에 취직해 출근하게 되었다. 다리가 다친 상황에서 오랜 시간 서 있는 일이었다. 조증의 에너지가 점점 꺼져가고 있었다. 상사가 나를 좋게 보지 않았다. 결국 상처를 입고 그만두게 되었다.
방에 다시 들어갔다. 계속해서 동굴에 들어갔다. 내 상태가 너무 이상한데 병원 예약날짜는 아직도 멀었다. 화내고 화내던 나날들. 병원 예약일이 왔다. 내 이야기를 하니 점점 굳어가던 의사 선생님의 표정, 결국 모든 이야기를 끝마치지 못했고 교수님을 뵈었다. 입원 치료가 필요하다고 했다. 나는 경제적인 이유로 입원하지 못할 것 같다고, 입원비를 번 후에 입원하겠다고 했고 입원비를 벌기 전까지는 외래진료를 보면 안 되는지 여쭤봤다. 입원을 권고하셨다.
집에 돌아와 조울병에 대해 찾아봤다. 의문이 풀려 안정된 마음과 더불어 의사 선생님이 내 이야기를 후반부로 갈수록 성의 없이 들었던 모습에 정말 입원이 필요할까에 대한 의문도 조금 생겼고(의문이 생길 수 있는 태도였으나 성의 없이 들었던 이유 또한 타당하다.) 다음 진료 때 다시 말해보자고 생각했다. 두 번째 진료일까지 정신병동 입원과 조울병에 대해 각종 매체에 나온 것들을 찾아봤다. 나는 마치 의학 전공 서적에 나와 있을 법한 환자 표본에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문란한 성적 행위를 하지 않은 것을 제외하곤 나와 너무나 비슷한 행적들을 살펴보며 내 행동에 대해 이해하게 된다. 더불어 입원도 원하게 된다.
두 번째 진료 때 각종 매체에 있는 것들을 찾아봤다고 했다. 병식이 어느 정도 생긴 모습을 보여 교수님께서 엄지를 치켜들어 주셨지만, 여전히 입원을 권고하셨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입원을 경제적인 이유로 거부했다. 사실이었다. 조증 때 나는 책과 음식으로 너무 많은 돈을 낭비했다.
조증이 가니 이번엔 울증이 찾아왔고 나는 진료마다 울었다. 입원비를 벌기 위해 여러 일에 지원하고 면접 보고 출근했으나 일을 지속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된다. 나는 입원비를 벌지 못했다. 나는 내 입원에 대해 이번엔 가족에게 이해를 구했다. (돈을 빌려야 했으니 당연하다. 나의 현재 상태와 돈을 갚을 계획을 말해야 했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상태였지만 해야 했다.) 가족에게 입원비를 빌려줄 수 있을지 물어봤고 입원의 필요성에 대해 설득했다. 가족을 설득한 후 병원에 전화해 진료 날짜를 당겼다. 교수님께 입원하겠다고 했다. 입원비를 벌고 입원하겠다는 말 자체가 말이 안 된다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교수님이 큰 걸 깨달았다고 하시며 우선 입원하지 말고 통원 치료를 하자고 하셨다. 나는 입원하는 게 더 좋은 것 같은데 입원하지 못해 약간의 불안과 약간의 기쁨을 느꼈다.
그 후로도 지속적인 근무에 어려움을 겪다가 현재는 마음이 편한 일을 찾아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제 더는 내가 매력적이라는 생각을 병리적인 사고로 하지 않는다. 누군가와 싸우려 하지 않는다. 분노가 사그라들었다.
조증 때의 기억은 나를 벼랑 끝으로 내몬다. 끝없는 수치심과 자괴감, 후회. 그래서 다시 글을 쓰게 되었다. 내가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줬다는 죄책감, 정신병이 있는 이상한 사람으로 보였을 것이란 불안감과 수치심(이상한 건 이 세상 사람 모두가 이상한 거고 내가 정신병이 있는 사람인 건 맞다. 맞는 걸 맞다고 볼까 봐 불안했고 창피했다.) 그리고 그런 과정 속에서 생각난 것들을 글로 풀어내기 시작했다. 쓴 글 중 <사람은 남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라는 글도 있고, 이러한 맥락에서 쓰게 된 것인데, 피해가 범죄행위거나 남에게 큰 상처를 주는 행위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죽음을 생각하던, 끝없이 이어진 기나긴 나날 끝에 나는 터널을 빠져나와 다짐했다. 과거를 뒤로하고 앞으로 나아갈 것. 미래에 저당 잡힌 삶을 살지 않을 것. 내 마음이 가는 대로 걸어갈 것. 또 다른 터널에 있는 지금, 과거의 다짐을 잊지 않겠다. 늘 자신을 용서해야 한다. 내가 나를 용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