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Sailor

표류 혹은 항해

by 휘리

나는 나를 사랑한다. 나는 나를 사랑한다, 이 말을 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던가.


불쑥 찾아오는 끝나지 않은 우울은 여전히 나를 잠식시킨다. 혼자 깊고 어두운 물속에 잠겨 아무 소리도 아무런 빛도 보지 못한 채 표류한다. 우울은 나의 시야를 좁혀 내 안의 폐허를 바라보게 한다. 미움, 분노, 공허로 가득한 가난한 나의 마음이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있음을 깨닫게 한다. 내가 여전히 나를 미워하고 있음을 실감하게 한다. 소극적인 나, 여전히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나, 용기 없는 나, 나 자신의 목표와 너무 멀리 있는 나, 갑작스레 찾아온 우울함에 어쩔 줄을 모르는 나, 나는 이런 내가 싫다.


어딘가에 집중하지 못하고 붕 떠 있는 느낌. 나에게 상처를 준 이들을, 과거를, 용서했다고 믿었다. 하지만 이럴 때면 그 모든 걸 원망한다. 왜 과거에 세상은 나에게 친절하지 못했을까. 왜 나는 내가 수많은 상처를 참아내도록 나를 몰아붙일 수밖에 없었을까.


손톱은 늘 짧았고, 가끔은 피가 났다. 늘 웃었다. 난 인생에서 가장 힘들고 슬펐던 시기에 가장 많이 웃었다. 황폐한 내 마음을 꼭꼭 숨기고 싶었다. 행복한 사람처럼 보이길 바랐다. 속이 썩어들어갈수록 나는 더 환하게 웃었다. 결점이 많은 내가 싫었고, 완전무결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늘 웃는 사람을 본다면, 완전무결한 사람을 본다면 나는 울고 싶어질 것 같다.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난다. 살아가는 데 왜 이리 많은 용기가 필요한지. 돌아갈 곳이 이젠 사라졌음에도 어딘가로 계속 돌아가고 싶다. 지긋지긋하다, 이 우울이. 언제쯤 괜찮아질까. 나는 어디쯤 와있을까. 언제 도달할 수 있을까. 이럴 때면 늘 곁에 있어 주던 너의 상실이 뼈저리게 아프다.


지금처럼 나에 대한 미움으로 가득했던 과거에 방 안에만 있던 내가 처음으로 시도해 봤던 일터는 마트였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거라 여기던 시기에 도전했던 최초의 시도였다. 처음 해본 일은 어려웠지만, 나도 할 수 있다는 걸 깨닫게 했다. 마트에 오는 다양한 손님을 보고 대화하는 것도 재밌었고 걷는 걸 좋아해서 마트에 가는 길도 즐거웠다. 나는 마트가 좋았다. 그래서일까? 최초의 시도로 마트를 선택하게 된 건. 마트를 좋아했던 건 중학생 때부터였는데, 돈이 없던 나는 마트에서 놀았다. 알뜰 코너를 구경하고, 시식하고, 한두 시간 정도 되는 거리를 걸으며 버스비를 아껴 얻어낸 1,000원으로 과자, 노트 같은 걸 사서 집에 오곤 했다. 마트에 있는 빵집에서 근무하시던 제빵사분께서 내가 오면 빵을 통째로 주시곤 했다. 쭈뼛대다가 하나씩 시식하던 내가 눈에 들어오셨던 걸까? 그 감사한 기억이 오래도록, 지금까지도 마음에 남아있다. 그래서 엄마와 함께 마트에 가는 날이면 평소엔 못 사던 빵을 한 봉지씩 사 오곤 했다. 마트에서 물건을 사는 것도 좋아하지만 그것보단 마트를 구경하는 것이 더 좋았다. 돈이 없으니 살 수 있는 게 많지 않았다는 점도 있었지만, 마트를 거닐며 어떤 것들이 있는지 보는 것이 즐겁고 오늘은 어떤 게 할인하는지 보는 것도 즐거웠다.


마트에서의 경험은 나에게 원동력이 되어 그 후로 수많은 도전을 시도해 보게 해주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새롭게 하고 싶은 일이 생겼고, 크고 작은 성공과 실패로 쌓은 자신감과 용기로 더 이상 도전하는 게 두렵지 않아졌다.


나는 이런 내 삶을 사랑한다. 나를 이루는 모든 것들이 나를 만들어주기에 그 모든 것들을 사랑한다. 삶은 가끔은 힘겹기도 마트의 알뜰 코너에서 보물을 발견하는 것처럼 신나기도 한다. 나는 그런 내 삶을 사랑한다. 나를 이루는 모든 것을 사랑하고 내 가족을 사랑하고 지금은 별이 된 내 동생을 사랑하며 나무와 꽃, 하늘과 구름, 나에게 감사와 사랑과 용서를 알려준 그 모든 것을 사랑한다. 삶은 나에게 아픔을 알려주기도 했지만, 사랑과 감사를 알려주기도 했다. 난 그런 내 삶을 사랑한다.


미숙한 나를, 그로 인해 성장하는 나를 사랑한다. 어리석은, 현명한, 지혜로운, 서툰, 소심한, 대범한, 감각적인, 둔한, 예민한, 다정한, 냉정한, 부드러운, 친절한, 무지한, 도전하는, 입체적인 그 모든 나를 사랑한다. 나는 머물지 않고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계속 흘러가겠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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