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다도 사랑했던 너에게
”진정한 상실감이 어떤 건지 넌 몰라. 타인을 너 자신보다 더 사랑할 때 느끼는 거니까.“ -<굿 윌 헌팅>
나 스스로보다 더 사랑했던 존재가 있다. 내가 세상에 지쳐 어둠 속에 나를 숨겨 웅크리고 있을 때 언제나 나를 찾아내 내 곁에 있어 주었던 존재가 있다.
과거에 나는 한가지 망상에 빠져있었는데, 나에게서 악취가 난다는 상상이었다. 나에게 씻을 수 없는 악취가 24시간 내내 따라다닌다고 생각했다. 고등학교 1학년쯤에 시작되어 오래도록 나를 괴롭혔던 사고였다. 나의 존재 자체가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 같았다. 가족과도 같은 자리에 있지 못했다. 가족과 함께 있는 시간을 필사적으로 피했고, 점점 방 안에서 혼자 보내는 시간이 길어졌다. 가족과 식사하지도, 어딘가에 가지도 못했다. 가족에게도 이 정도인데 남들 앞에서는 당연히 더더욱 심했다. 학교에서 내 주변에 앉은 친구들에게 미안했고, 길거리를 걷는 것만으로도 지나다니는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고등학교에 다니는 내내 ‘키다리 책상’에 서서 수업을 들었고 결국에는 고등학교를 자퇴했다. 밖에 나가지 않았고, 방 안에 숨죽여있었다. 매일매일 나의 죽음을 바라고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었냐며 세상을 원망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는 것만 같았다. 세상을 살아가려면 다른 존재와의 상호작용이 필수적인데, 나는 그럴 수가 없었다. 나는 민폐 덩어리였고 내가 한 선택은 모두 다 잘못된 선택이었으며 내가 한 노력은 부질없는 일이었다. 방 안은 점점 쓰레기로 가득 찼다. 꼭 내 마음처럼.
처음엔 기대했고 노력했고 발버둥 쳤고 나을 수 있다고 믿었다. 직접 알아보고 여러 병원을 찾아갔고 많은 검사를 했고 다양한 종류의 약을 먹었다. 소용이 없었다. 가족은 나에게 언제까지 그럴 거냐며 그만하라고 했다. 세상이 무너져 내린 것만 같았다. 어린 나이에 가까운 이에게 받은 상처는 사람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모든 사람을 믿을 수 없었다. 나부터 나를 포기했다. 철저히 지키던 식습관도, 항상 집중하던 수업도, 작은 것이라도 시도하고 도전해 보려 했던 마음이 꺾였다. 마치 투명 인간처럼 죽은 듯 보내던 시간.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가족들과 수없이 많이 싸우던 나날을 거쳐 나는 완전히 마음의 문을 닫아버렸다. 침대에 누워 가만히 있었다. 울고, 울고, 울고, 또 울었다. 밥을 먹고 싶지도 않았다. 계속 자고만 싶었다. 영원히 잠들고 싶었다.
그런데 너는 내가 어떤 상태이든, 어떤 사람이든, 지금까지 어떤 행동을 했고 어떤 잘못을 저질렀든, 나에게 악취가 나든 그런 것쯤은 상관없다는 듯 항상 나를 찾아왔다. 내가 나의 악취가 새어나갈까 두려워 늘 방문을 닫고 있으면, 너는 늘 문을 두드리고 긁었다. 내가 네게 피해를 주는 게 무서워 그 소리를 외면해도 매일매일 넌 나를 찾아왔다. 마음의 문을 굳게 닫은 내가 결국 문을 열어주게 된 날, 너는 꼬리를 치며 나를 반겼다. 왜 나를 찾아왔니. 왜 나에게 그렇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줄 수 있는 거니. 나는 너에게 피해만 줄 텐데 넌 왜 그런 건 상관없는 것처럼 나를 찾는 거니. 내가 너에게 수많은 잘못을 저질렀는데, 왜 나를 용서하고 좋아할 수가 있는 거니.
너를 안 좋은 환경에서 지내게 할 순 없으니, 방을 치우기 시작했다. 아예 소독하고 싶어 청소업체를 부르고 18리터짜리 에탄올을 4통 사서 천장, 벽지, 바닥 하나하나를 청소했다. 스스로 그 모든 것을 청소하는 과정이 꼭 먼지 낀 나의 마음을 스스로 정리하고 청소하는 것 같았다. 고장 난 채로 2년간 바꾸지 않았던 전등을 바꿨다. 너에게 건강하고 맛있는 음식을 주고 싶어서 요리를 시작했다. 너에게 더 좋은 것들을 주고 싶어서 동물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개는 산책을 해야 하니 사람이 없는 새벽에라도 너와 산책하러 나가게 되었다. 새벽에만 나가던 게 네가 햇볕을 쐬어야 할 것 같아 사람이 적은 오전에도 나가게 되었고 점차 사람이 많은 낮, 저녁 시간에도 나가게 되었다. 네가 조금이라도 나가고 싶은 것 같으면 새벽이든 아침이든 낮이든 저녁이든 밤이든 나갔다. 매일 하루에 3번 이상 밖으로 산책을 나가게 되었다. 너를 위해 했던 일들은 나를 성장시켰다. 나를 살게 했다. 너를 지키고 싶어서 했던 일들이 나 또한 지키고 있었다.
가족과 화해했다. 방 안에 있을 때면 나는 두려움에 떨었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 미디어에서 보이던 늙은 부모님은 열심히 일을 하고 자식은 집 안에서만 있는 모습이 꼭 내 미래인 것만 같아서, 내가 가족에게 기생하듯 살게 될 것 같아서 너무 두려웠다. 너는 내 안에 있던 분노와 두려움을 잠재우고 마음속에 사랑과 신뢰의 씨앗을 뿌렸다. 그리고 네 덕에 가족과 다시 사랑을 할 수 있게 되었고, 가족을 신뢰할 수 있게 됐다.
그런 네가 떠났다. 나는 그 슬픔을 감당할 수 없었다. 나는 너를 떠나보낼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너에게 배운 것들, 받은 것들이 너무 많아 먹먹하다. 이젠 갚을 수도 없는데 너에게 갚아야 할 게 너무나도 많은데 이젠 네가 없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봄이면 눈이 안 보이던 네가 정말 오랜만에, 마지막으로 달리던 자유로운 뒷모습이 떠오른다. 여름이면 너와 거실에서 뒹굴뒹굴하던 평화로운 시간이 떠오른다. 가을이면 놀자고 장난치던 바보 같은 너의 모습이 떠오른다. 겨울이면 너와 바다로 캠핑에 가서 너의 뒤를 따라 걸으며 너의 뒷모습을 보았던 게 떠오른다. 모든 계절 속에 네가 있다. 나의 기억 속에 네가 있다. 너와의 소중한 추억은 지금까지도 나에게 큰 용기와 힘을 준다. 너는 떠났지만 내 마음속에 영원히 존재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더 선해지기, 더 다정해지기, 용서하기, 세상을 더 사랑하기. 사랑을 잃지 않기. 네게 배운 것들을 실천하는 것, 그게 바로 내가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