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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들과 바람 Jul 24. 2019

무료급식소에서

   먼 이탈리아에서 오신 한 신부님이 시작한 무료급식소에 매일 사오백 명의 노숙인들이 와서 식사를 하고 갑니다. 아득하게 긴 거리만큼이나 우리나라와 이탈리아의 언어는 그리고 문화들은 서로 이질적인 것이 많았을 텐데, 어느새 신부님께서는 한국말로 말씀하는 것도 자연스럽고 '김하종'이라는 이름도 얻게 되었습니다. 성남에 위치한 노숙인 무료급식소 안나의 집을 방문한 것은 이번이 두 번째였습니다. 어쩌다 어릴 적부터 노숙인 봉사와 작은 인연이 생겨 작지는 않은 기간 동안 해왔었는데, 이곳 안나의 집에 오게 된 것도 우연이었습니다.


   지난번처럼 오늘도 단체로 봉사를 오신 다른 분들과 - 학교의 동창회 모임이었습니다 - 일을 나누어 맡았습니다. 우선 오후 2시경 주방을 닦았습니다. 바닥부터 세제를 뿌리고 솔로 꼼꼼히 닦는데, 이것을 매일 하시는지까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주방은 언제나 정말 깨끗합니다. 주방을 닦은 뒤에는 신부님의 요청으로 계단도 닦았습니다. 계단 틈에 있는 이물질을 칼로 긁어내 달라 말씀하시는 것을 보고 신부님의 깔끔함에 조금 놀라기도 했습니다.


   청소들을 마친 뒤, 류현진 선수의 11승 소식을 TV로 보며 잠시 숨을 돌리는 동안 조리사분들께서 요리를 준비해주셨습니다. 서너 분께서 주방의 조리 일을 도맡아 해 주시는 것 같았습니다. 오늘의 메뉴가 무엇일지보다는 어렵사리 달성한 류현진 선수의 경기 장면들이 더 궁금해 만들어주신 요리는 급식소를 개방하기 전 봉사자들이 미리 식사하는 때에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보리가 조금씩 들어간 흰쌀밥과 네모난 두부가 많이 있던 된장국, 생선 코다리찜과 김치 그리고 무채였습니다. 저번처럼 식사는 따듯하고 정갈했습니다.


   간단히 식사를 마친 후 본격적으로 밥퍼 봉사를 시작했습니다. 들어오는 노숙인 분들에게 배식하는 파트, 홀을 담당하는 파트, 요리를 나르는 파트, 식기를 닦는 파트, 그리고 설거지를 하는 파트로 나누어 일을 했습니다. 나는 설거지 조로 닦여진 그릇들을 정리하고 옮기는 일을 했습니다.


   처음엔 별 것 아니었던 모든 동작과 과정들이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자 모두 꽤나 몸을 무겁게 만들었습니다. 대형 식기세척기 속의 80도가 넘는 물의 증기 역시 안경을 덮고 몸을 눅눅히 덮었습니다. 그릇들은 마치 계절 장사처럼 잠시 잠잠했다 어느새 우르르 밀려 들어오길 반복했습니다. 식사를 하는 노숙인 분들이 함께 앉아 먹다 보니 무의식적으로 어떤 집단 리듬 같은 걸 형성한 것이 아닐까 의아할 정도였습니다.


   가장 바쁜 고비를 넘기고, 비로소 그날 찾아온 사람들의 모습들을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오늘도 역시 사오백 명의 노숙인들이 방문을 했고, 역시 사오백 명의 사람들 안에는 정말 다양한 모습들이 있었습니다.


   머리를 짧게 자른 - 그렇다고 거칠기보단 깔끔한 느낌으로 -  젊은 청년도 있었습니다. 나와 나이가 비슷한 것으로 짐작되는 그는 넷플릭스의 로고가 새겨진 부채를 들고 매우 점잖고 부드러운 몸짓으로 조용히 식사를 했습니다. 입을 닫은 채 씹는 모양 역시 마찬가지어서 아무리 가까이 다가가도 이빨을 부딪히는 소리 혹은 음식물을 씹는 소리를 들을 수 없을 것만 같았습니다.


   한켠엔 정체를 알 수 없는 황금의 메달을 목에 건채 검은 양복과 선글라스를 착용한 남성이 있었습니다. 그의 몸짓은 청년과 대조적이어서 허겁지겁 식사를 마친 뒤 서둘러 밖으로 나갔습니다. 무엇에 쫓기는 듯 급하면서 벼처럼 약간 고개를 숙인 채 저벅저벅 걷는 모습이 그의 의상과 합쳐져 흡사 중국 느와르 영화 속의 인물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그 외에도 젊었을 적 한 미모 하셨을 것 같은 아주머니, 허리가 완전히 굽으신 할아버지, 지난번 봉사 때도 오셨던 것이 확실히 기억나는 사교성 좋은 여사님 등 다양한 분이 계셨습니다. 또 적지 않은 수는 나이가 정말 많은 할머니들이셨는데 분명 한국전쟁을 겪은 분들일 것 같았습니다. 전쟁의 굉음과 혼란 속에서 가족과 드셨을 밥, 그리고 반세기 이상이 지나 이곳 급식소에서 드시고 계시는 밥 같은 것들이 교차되며 무언가 아련함이 느껴졌습니다. 그분들의 배를 채우고 있는 그 밥들이 머릿속에 차곡차곡 쌓여만 갔습니다.


   고개를 다시 들어 식당을 돌아보니 정말 많은 이들이 이곳에 모여 준비된 따듯한 식사를 하고 있다는 풍경이 갑자기 구체적으로 나에게 번뜩 다가왔습니다. 오늘 여길 다녀간 수백 명의 배를 든든히 채운다는 이 일의 무게가 실감이 났다 해야 할까요. 몇 시간 전부터 십 수 명의 인원이 모여 주방을 성실히 닦고, 요리하고 준비하여 저들을 대접하고, 다시 그 뒷자리를 모두 청소하고 정리하는 이 작업이 요하는 에너지의 총량 같은 게 피부로 느껴졌습니다. 매일 반복되는 어쩌면 작다고 볼 수도 있는 시설의 풍경이지만 이 냉정하고 녹록지 않은 세상에 어떤 풍성함을 분명히 남기는 일 같았습니다. 처음 노숙인 봉사를 시작한 지 십 년이 넘은 지금에서야 처음 느껴본 감각이었습니다.


   기독교에서 예수의 생애 중 죽은 이를 살린 기적을 - 본인의 부활 사건을 제외한다면 - 가장 커다란 사건으로 자주 뽑곤 하는데, 오늘의 이 체험은 그의 오병이어(五餠二魚)의 기적을 다시 돌아보게 합니다. 다섯 개의 떡과 두 마리의 물고리로 수천의 사람들을 배불리 먹였다는 이 기적을 한 철학과 교수께서는 그를 따르는 이들과 작은 것이라도 나누려 한 예수의 사랑과 희생의 자세에 사람들이 감화한 사건이라고 이야기한 것을 기억합니다. '마음으로 충분했다', 그런 뜻이었겠지요.


   예수가 정말 신의 힘으로 먹을 것을 증식시켰는지 나는 확실히 단언할 수 없지만, 만약 그 교수의 말처럼 예수가 그 부족한 음식만으로 그 무수한 사람들에게서 포만감의 체험을 이끌어냈다면 이는 아마 물리적으로 음식을 늘린 기적보다 더 대단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한 무리의 사람들을 배불리 다는 것은 그만큼 엄청난 온기와, 성실과, 에너지의 집합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오늘 이 자리에서 그것을 확실히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경제학자 프리드먼의 말("There is no such thing as a free lunch.")은 정말로 진실입니다. 그가 강조하고자 했던 바와 내가 오늘 체험한 의미는 조금 다르지만, 분명 '무료 식사' 따위는 쉬이 저절로 일어나는 것이 아닌 여러 사람이 모여 일구어낸 커다란 일이었습니다.


[ 이미지 출처 : Vincent van Gogh, <Still life with Bottle, Two Glasses, Cheese and Brea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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