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어에서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다음은 다시 독일어
시험을 봤다. 국어시험은 우리 말이니까 별 문제는 없는데, 수학은 성적이 잘 나오는데, 항상 문제는 외국어들이었다. 영어 점수가 기대만큼 나오질 않았지만, 더 문제는 제 2 외국어로 배우던 독일어였다. 독일어는 미~양 사이를 왔다 갔다 했다. 때는 1995년, 대입에 제 2 외국어 본고사가 있던 때였다. 독일어 본고사를 보고 나오면서 떨어졌다고 확신을 했다.
다행히 과락이 없었던 시절이라 대학을 무사히 들어갔는데, 웬걸 수업 교재에 영어 비중이 왜 이리 높은가? 일단 수업 전에 읽는 것부터 버거웠다. 그래도 제2외국어 '본고사'를 봤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에 신청한 독일어 2는 결국 F가 떴다. 왜 그런지 이해가 안 되는 문법들, 외어도 끝이 없는 단어들, 그리고 어릴 때 현지에서 배운 친구들과 비교하면 아무리 노력해도 따라 갈 수 없을 것 같은 절망감. 그래서 가능하면 외국어를 사용하지 않고 살아볼 방법을 강구해 보기로 했다.
외국어들에 치이면서 바벨탑 이야기가 정말 신의 저주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을 실감했다. 말이 안 통한다는 것은 서로의 마음이 다가갈 수 없다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다른 나라 사람들과 소통하지 않으면 살기 어려운 쪽으로 세상이 자꾸만 변해갔다.
더구나 어쩌다 보니 외국에 오래 떠돌아 다니는 직업을 갖게 되어 싫든 좋든 외국어를 할 수밖에 없었다. 직장을 잡고 나서 잠시 고민했다. 그래도 조금은 할 줄 아는 영어로 살아남아 볼 것인가, 아니면 다른 언어를 하나 더 배워 볼 것인가. 그런데 막연한 오기가 생겼다. 우리나라에서는 외국이라고 해도 미국, 일본 조금 더 나아가 중국만 생각하지 않나? 새로운 세상을 보고 싶었고, 그래서 새로운 언어를 하고 싶어 졌다. 프랑스어를 배웠다.
벌써 10년 전 일이다.
10년 동안-물론 공부하다 말다해서 실제로 프랑스어를 배우기 위해 노력한 기간은 훨씬 짧겠지만-프랑스어와 엎치락 거리며 살다 보니, 슬슬 언어에 정이 들기 시작한다. 어쩌다 보니, 프랑스에서 추억도 많아지고, 이제는 어떤 면에서는 프랑스가 한국보다 편하기도 하다. 처음은 이해가 안된다고 그래서 불평하던 프랑스도 말이 트이면서 조금씩 좋아지기 시작했다.
말은 서로 통하기 위해 배우는 것이란 것을 프랑스에서 지내면서 몸으로 조금씩 깨우치기 시작했다. 프랑스어가 조금씩 익숙해지자, 욕심이 난다. 프랑스어와 가깝다는 이탈리아어는 어떨까? 그래서 이탈리아어를 시작했다. 이탈리아라면 프랑스의 농축 심화 버전일 것 같다는 느낌에 이탈리아어를 자습하기 시작했다. 단기 목표는 6개월 내에 일상회화가 가능한 수준인 B2 따기, 중기 목표는 이탈리아어 수준을 여타 외국어 만큼 만들기.. 장기 목표는? 나에게 외국어에 대한 회의를 안겨준 독일어를 다시 해보는 것이다. 왜 유럽어만 배우냐고? 나에게 언어는 별 흥미거리가 아니다. 거기 사는 사람들에게 흥미가 있을 따름이다. 이 넓은 세상에서 현재까지 내가 경험해 본 지역 중 유럽은 상당히 구미에 맞는 동네였기 때문에, 그 동네 사람들과 이야기하기 위해 언어를 배울 뿐이다. 다른 곳을 갔는데 뭔가 흥미를 이끌만한 것이 있으면 그것을 또 배울 지도 모르겠다.
내 '브런치'에 대한 소개이다. 아니, 왜 이것을 시작했는지, 그리고 뭘 쓸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다.
뭔가 쓰고 싶다는 욕구를 느끼는 데, 어디에다가 무엇을 써야 할지 몰랐다. 글을 계속 쓰고, 이야기를 나눌 장소가 필요한데... 아마도 블로그가 가장 적합한 것 같은데, 사실 어떻게 시작해야 할 지 조금 막막했다. 복잡한 기능 없이, 글쓰기에 집중할 수 있는 예쁜 판이 있었으면 하던 차에 '브런치'를 발견했다.
여기에다가 외국에서 지내면서 느끼는 소회, 그리고 혹시 내가 있던 곳을 올 사람이 있다면 알려주고 싶은 팁을 적어두고 싶다. 의미? 안다고 믿는 것을 진짜 이해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점검하고 싶다는 것이 첫 번째 의미고, 두 번째로는 비슷한 관심을 가진 사람들과 이야기 하고 싶다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결론적으로는 프랑스 이야기를 많이 할 것 같다. A bien tô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