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석과 유희열, 그리고 전환의 신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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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은 참 특이한 시공이다. 객관적으로도 그러한지, 그저 주관적으로 내 나이가 한국사회에서 서른이 되었기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그럼에도 이 시공을 기억하고 싶은 것은, 동시대를 함께하고 있다고 여겨졌던 마음속 친구들이 갑자기, 지나가버린 유행처럼 하나씩 옅어져갔기 때문이다. 분명 작년, 제작년까지는 곁에 있는 동시대였거나 혹은 동경의 대상이었는데, 왜 갑자기 올해들어 유난히 그들이 철지난듯 느껴지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이러한 이상한 기류의 표면적 방점을 찍은 것은 어느날 갑자기 급작스럽게 찾아온 무한도전의 종영이었다. 이 사실이 다소 놀라웠던 것은 다른 영역에서 비슷한 흐름이 감지되긴 했지만, 그래도 무한도전까지 휩쓸려 사라질 거라곤 생각하진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이 프로가 힘이 빠진지는 오래되었지만 그래도 과거로 저물기엔 아직 좀 이르다고, 좀 지쳤지만 그래도 함께 시공을 걸어가는 친구라고 생각했었다. 이제 나에게 주병진이나 이홍렬 같은 존재로 지금의 10대들에게 유재석이 자리하겠구나, 이렇게 나는 시대에 대한 인식을 조금이라도 새롭게 교정하려고 뒤늦게 애를 쓰기 시작했다.
이 흐름은 나의 시대를 내주어야 한다는 느낌으로도 나에게 다가왔다. 왜냐하면 유재석이라는 인물의 성장과 성공, 그리고 그 바탕과 주변에 깔린 맥락과 분위기들은 바로 내가 공감하고 열광했던 그 지점의 연장선이기 때문이었다. 00년대 중반을 조금 넘어서는 지점으로 기억되는 그 때는 버라이어티 방송 컨텐츠의 포맷이 '자연스러움'이라는 방향으로 크게 전환되는 시기였다. 당시엔 버라이어티 진행영역에서 강호동과 유재석 양강체제가 이슈였었다. 거기서 나를 포함안 당시의 많은 사람들은 강호동은 다소 올드하고, 유재석이 차지하는 맥락이 좀 더 시대에 어울린다고 생각했었는데,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1인자 등극은 현실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그가 강호동을 제치고 시대의 상징중 하나로 우뚝 섰을 때, 나와 생각이 같은 시대가 열린 기분을 느꼈다.
'나와 생각이 같은 시대가 열린 기분'은 이 외에도 다른 시그널들이 있었다. 그 중 큰 줄기를 차지하는 사건중 다른 하나는 유희열의 전면적 등장과 대세 등극이다. 90년대 후반부터 00년대 중반까지 자신을 다소 '감성적'이라고 생각하는 특정 계층은 라디오와 특정 잡지 등의 메이저하지 않은 경로로 대중문화를 소비하고 열광해왔으며 그 중심에는 유희열, 이적, 김동률 같은 '당시엔 다소 신비했던' 90년대 출신 싱어송라이터 우상들이 있었다. 00년대 중반에 들어 소몰이 창법으로 뒤덮인 '소위 음악방송에서 소비되는 대중음악'들이 식상함을 더해가는 만큼, 반대급부에 대한 수요는 커졌지만 채워주는 컨텐츠나 미디어는 너무나 적었고, 이에따라 이러한 소위-실력파 싱어송라이터에 대한 동경과 열망은 더욱 커져갔던 것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드디어 2008년, 너도나도 소몰이에 대한 자정작용이 생겨나 그들이 뒤로 물러가고 어설픈 보이-걸그룹에서 제대로된 기획 아이돌 시스템 체계가 회전하기 시작할 때즘, 그간 쌓여온 강력한 언더 지지층을 등에 엎고 유희열이 공중바 심야 음악프로그램의 진행자로 전면에 등장했다. 그리고 세월이 조금 흘러 무한도전은 유희열과 이적 (그리고 정재형) 등을 대중앞으로 더 가까이 끌어내주었고, 그들도 기꺼이 예전과 달리 더 겸손해진 모습으로 대중앞에 전면적으로 나서게 되었다. 그렇게 끝이 예정된 본격적인 이미지 소비가 시작되었다. 이제 그들이 모두 50을 가까이 바라보고있기 때문일까, 이적의 신보가 더 많은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는 만큼 매력도가 현저히 떨어졌고, 유재석과 함께 과거를 추억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유희열은 그 어느날부터 갑자기 올드해보이기 시작했다. 그러고보니 유희열이 스케치북을 진행한지도 어느새 10년이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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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대 초중반에 나는 70년대 초반생에 대한 어마어마한 환상이 있었다. 왜냐하면 대중문화계에서 그들의 아성은 무너지지 않는 거대하고 무한한 산과 같았기 때문이다. 이 세대는 인물을 바꿔가며 20년간 대중문화를 이끌었고 그들의 그늘에 후배들은 자라지 않았다. 90년대 대중음악의 포문을 열었던 서태지도 해당 세대이고, 유재석 유희열도 그렇고, 최근 몇년동안 예능계를 접수하다시피했던 신동엽도 같은 세대다. 정우성, 이정재, 이병헌 등의 90년대 하이틴 스타들의 영향력은 영화계에서 더욱더 커져있다. 이 모든 것들을 거대했던 90년대의 그늘이라고 볼 수 있을까. 그리고 이 모든 스타들을 올려다봤던 나 또한 90년대 문화권의 맨 뒷칸에 올라탄 세대라고 봐야하지 않을까.
이다음에 무엇이 등장할 지는 모르겠지만, 이 그늘이 걷어지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고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 것이 어쩌면 내가 느낀 이상한 기류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걷어지는 것은 있는데 새롭게 나타나는 것은 없다는 것이다. 내가 너무나 깊게 하나가 되었던 시대가 사라지는 터라, 여기저기 새로운 시그널들이 있지만 나만 못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것들이 보려고 한다고 볼 수 있는 것은 당연히 아니겠지만, 내 마음이 끌리는 곳도 마땅히 없는지라 그래서 더욱 안개속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사실 이러한 흐름이 대중문화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대중문화에는 90년대의 그늘의 사라짐이 있다면 정치에는 무너질거라 생각하지도 못했던 10년 극우정부의 극적인 몰락이 있었고, 이에따른 87년 체제의 일단락이 예고되어 있다. 독재자 혹은 독재에 준하는 욕망돌이들이 날뛰는 요상한 국제정세는 말할 것 도 없다. 이 외에도 내가 속한 건축-공간 디자인 분야에서도 전환의 기운이 감지되고 있다. 도대체 2020년대 즈음에는 어떠한 시공이 펼쳐질 예정이길래 2010년대의 후반이 이토록 요지경인걸까. 정말 모르겠고 또 궁금하고 한편으로는 불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