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피없이 흔들리던 나약한 존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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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 같기도 하고 새벽녘 같기도 하고 어슴프레 밝지도 어둡지도 않고 뜨겁지도 시원하지도 않았다. 무언가 꿈틀거렸지만 지금까지 보아왔던 것들과는 달리 어딘지 모르게 나약했고, 그 나약함 속에는 이기적인 마음들이 힘겹게 자기 자신을 방어하고 있었다. 그 이후에 해가 뜬 것인지 아니면 해가 진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이젠 지나가버린 그런 시절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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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2008년도 무렵의 관악이었다. 마치 노을의 넘어가는 잔양처럼, 미약하게 남아있지만 전성기를 한참 지나가버린 운동권의 학생들은 부스스한 머리에 펑퍼짐한 청바지를 입고서 팩차기를 하고 있었는데 그들이 붙인 대자보나 선거 포스터들은 절박한 듯 격정적인 구호들을 토해냈지만 더 이상 갈 곳을 잃고 자기들끼리만 메아리치는 모양새였다. 캠퍼스 구석구석에서 김밥이나 만두 등을 말아내던 간이식당들은 언제나 그랬듯 가만히 자기 자리에서 묵묵히 음식을 팔고 있었지만, 그곳에서도 선거 포스터와 그리 다르지 않은 철 지난 투박함들이 서서히 새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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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서서히 신입생들은 더 이상 배고파서 밥을 먹지 않았다. 딱히 굶어본 적은 없었으니까. 그리고 세상을 바꾸고 싶은 마음이나 사명감도 옅어졌다. 민주주의도 오래전에 쟁취되었으니까. 그러나 무언가 해내야 할 것 같은 강박은 미약하게나마 있었다. 대한민국의 입시전쟁을 뚫고서 각자의 공동체의 명예를 걸고 이곳에 왔으니까. 하지만 혁명이 끝나버린 시대에서 그다지 도전할만한 것들은 없었다. 그리고 솔직히 나 하나 잘 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하지만 아직은 캠퍼스가 완전히 개인의 출세만 맹목적으로 드러낼 만큼 세속화가 진행된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별로 따라가고 싶은 것도 표출해내고 싶은 것도 없었다. 무기력은 그렇게 조용히 캠퍼스를 엄습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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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이 트지는 않았지만 그 틈 사이로 서서히 새로운 바람이 새어 들었다. 정문 앞 삼거리를 지나 왼쪽 길의 초입에는 김밥을 팔던 곳이 사라지면서 파스타와 수제버거를 파는 카페테리아가 들어왔고, 오른편 길의 초입에는 대기업이 운영하는 커피전문점 프랜차이즈가 들어선 것이다. 들끓는 비판 여론만큼이나 멋내기 좋아하던 신입생들과 많은 언니들로 새 가게들은 문전성시를 이뤘다. 그리고 비판하는 사람들보다 그곳을 애용하는 사람들이 더 겉이 세련된 것은 누가 봐도 객관적인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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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와중에 교내의 밴드들도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전자음악 앞에서 락이 저물었는데 특히 헤비메탈을 기반으로 뭉쳐진 카피밴드들의 속주와 고음에 아무도 감동하지 않으니 선배들은 가오를 잡을 무기를 잃고 동아리들은 관객을 잃고 말았다. 그 틈을 타 처음으로 관악의 축제에 걸그룹이 등장했다. 그 공연은 걸그룹을 보기 위해 너무 많은 인파가 무대 쪽으로 쏟아져 안전용 펜스가 무너져버려 9시 뉴스에 소개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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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새로운 바람과 동틀 녘 빛의 정체는 알 수 없었다. 단지 구호가 없을 뿐, 그저 재미있고 싶을 뿐. 담론도 사명감도 흐릿한 싱숭생숭한 마음들이 덫붙여져, 무기력한 만큼의 잉여로움을 쏟아낼 만한 무의미하고 자조적인 생산물들만 흘러나왔다. 그리고 전공도 동아리도 학생운동도 그 무엇도 멋지지 않은 그 공허함에서 여린 마음들은 연애를 통해 구원을 찾았다. 그리고 그 연애는 절대 박력 있거나 격정적이지도 않고 쟁취를 위해 투쟁적이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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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정체모를 자조적 잉여로움이나 위로를 찾아가던 연애들이 그 당시의 무기력함에 대한 우리들의 발버둥이 아니었나는 생각이 든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학교는 완전히 대기업 프랜차이즈로 도배되었고, 스마트폰의 등장 이후로 스타트업 열풍을 타고 개인의 자본적 성공을 드러내고 학교에서 쫓을 수 있게 되면서, 또한 더 극심해진 구직난으로 취업이 종교가 되어버림으로써 캠퍼스의 시간대와 온도는 완전히 뒤바뀌어 버렸다. 그때의 갈피를 못 잡고 흔들리던 나약한 마음들은 몇 년 사이에 세속에서의 생존이라는 파도에 자리를 내어주고 과거의 일부로만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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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꺼내 들었던 브로콜리 너마저의 1집은 그때 그 순간의 그 모호한 여린 마음의 줄기들을 떨리는 손으로 정확히 붙잡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