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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페네로 Nov 27. 2020

엄마는 나를 잊었어요

그게 무슨 대수라고요

아픈 가족을 다룬 이야기는 읽지 않아요. 간병하는 가족의 어려움을 그린 이야기가 부담스럽기 때문이에요. 얼핏 담담한 듯 엄마를 간병하는 우리 가족의 이야기는 아니지요. 아빠에게 물었던 적이 있어요. 힘들지 않냐고. 아빠가 그러셨어요. "그냥 받아들이는 것뿐이야." 이 말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는지요. 아빠의 용기와 노력으로 (불편한 진실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용기와 노력이 필요하죠) 우리는 조금씩, 천천히 받아들일  있었어요.


엄마가 기억을 잃기 시작하며 아빠는 엄마와 여행을 다니셨어요. 엄마가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순간순간 행복했으면 좋겠다 하시며. 매 순간 여기가 어디냐 묻고, 매일 밤 집에 돌아가자는 엄마를 데리고 많이도 다니셨죠. 캐나다, 영국, 독일, 프랑스, 제가 있는 미국까지 모두 엄마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할 때 다닌 곳이에요. 비행기 안에서 엄마를 잃어버렸던 경험만도 수 차례지만, 아빠는 좋은 추억이 있던 곳에 다니는 거라며 멈추지 않으셨어요. 이젠 그마저도 힘들어졌지만.


평범한 일상을 만들려 노력하는 것, 조금씩 천천히 받아들이려 노력하는 것 모두 내게 쉬운 일은 아니었어요. 내가 알던 엄마의 모습을 잃어가는 엄마를 속수무책 바라만 보고 있는 일이란... 그런데 10년이 다 된 이제서야, 나는 나만을 추스르느라 한 번도 생각하지 못한 게 있다는 걸 기억해 냈네요.


우리를 바라보는 엄마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엄마가 기억을 잃어간다고 생각마저 잃는 건 아니었을 텐데요. 매일을 기억을 잃어가는 자신을 마주하고, 사랑하는 가족을 바라보는 엄마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얼마나 두렵고 슬펐을지 나는 엄마의 마음을 한 번도 제대로 생각해 본 적이 없네요.




조금씩, 천천히 안녕 (나카지마 쿄코, 2015)에서 이런 이야기를 해요.


남편이 나를 잊었냐고요? 네, 네 잊었고 말고요. 내가 누군지 따위 제일 먼저 잊어버렸어요.


그런데 '잊는다'는 단어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을까? 남편은 아내의 이름을 잊었다. 결혼기념일도, 세 딸을 함께 키웠다는 사실도 아마 잊었을 거다. 20여 년 전에 둘이 처음 사서 그 후로 쭉 살고 있는 우리 집의 주소도, 그곳이 자기 집이라는 사실도 잊었다. 아내라는 단어도, 가족이라는 단어도 잊어버렸다. 그래도 남편은 아내가 가까이 없으면 불안한 듯 찾는다. 불쾌한 일이 있으면 눈으로 호소한다. 무엇이 변했다는 것인가. 언어는 잃었다. 기억도, 지성도 대부분 잃었다. 하지만 긴 결혼 생활을 함께하는 둘 사이에 항상 존재했던, 어떤 때는 강하게, 어떤 때는 그리 강하지 않았는지도 모르지만 틀림없이 존재했던 무언가를 통해 남편은 아내와 커뮤니케이션을 유지하고 있다.


네, 남편은 나를 잊었어요. 그게 무슨 대수라고요.


조금씩, 천천히 안녕 (297-298쪽)




마지막 문장을 읽자마자 가슴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와 목구멍이 메었어요. 눈물이 왈칵 쏟아질뻔한걸 꾹 참았어요. "엄마는 를 잊었어요. 그런데 그게 무슨 대수라고요."


엄마의 마음은 한 번도 들여다보지 못했다는 미안함과 자책감에.


그리고 기억이 났어요. 이서방 앞에서 실수하면 어쩌나 걱정하던 엄마의 모습, 예전 일본 우리 집에 놀러 왔던 엄마가 한국으로 돌아가던 공항버스 안에서 비행기 타는 법을 적어 놓은 메모를 그렇게 보고, 또 보고, 계속 보고 있던 모습. 이런 엄마의 모습이 내 기억 속에 있는데 엄마가 나를 잊은 거 따위 뭐가 대수인지요.


그런 마음을 나는 이제껏 엄마에게 갖지도, 보여 주지도 못했네요. 엄마가 나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만 힘들고 슬펐네요. 엄마가 나를 사랑했었고, 여전히 사랑하고 있다는 기억을 잊었다는 게 무슨 대수라고요. 이젠 엄마가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거 하나도 슬프지 않아요.


당신이 우리를 잊어도 함께여서 행복한 시간만 보낼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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