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진료
날씨가 추워진 탓일까요. 제가 처음 병원을 찾은 계절이 이 맘 때여서였을까요. 마음이 너무 불안하고 슬퍼집니다. 떨쳐버린 줄 알았던 잊은 줄 알았던 기억들이 떠오릅니다. 떠나간 사람이 자꾸 떠오르고 사소한 일들이 저를 슬프게 합니다. 자격지심이 생깁니다. 피해의식이 생깁니다. 자꾸 제가 작아지고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습니다. 저는 어떻게든 살아 낼 겁니다. 살아갈 거라면 이런 아픈 감정 없이 평온하게 살고 싶습니다.
그런데 전 아프기 전에도 이런 복잡한 감정들 때문에 힘들어했었습니다.
저의 힘든 마음을 두서없이 쏟아내고 나니 이제 좀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제가 힘든 건 오로지 호르몬의 탓일까요. 어떤 날을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며 눈물이 나더니 어떤 날은 또 대수롭지 않은 듯 넘겨버립니다. 이건 누구나 그런 건가요. 아니면 '너는 뭘 이런 걸로 울고 그래' 하며 아직도 모든 화살을 저에게로 돌리고 있는 걸까요. 평범한 사람이라면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넘기는 건 가요.
직장에서 제 병력을 이야기해야 하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저는 10시간가량의 고사 감독을 치를 자신이 없었고 저의 병을 언급하며 휴식을 원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러자 돌아오는 말은 '1년을 쉬었는데 아직도 안 좋아졌냐'는 말이었습니다. '그러게요 저도 이게 눈이 보여 얼마나 치료되고 있는 건지 알 수 있으면 참 좋겠습니다.' 이 말은 하지 못하고 나왔습니다. 우울증은 저를 우울증 환자라는 틀에 가둬버립니다. 세상이 저를 우울증 환자로 분류합니다. 우울증 환자는 마음이 나약해서 병이 오는 거라는 잘못된 생각이 오늘도 저를 화나게 합니다.
저는 나약하지 않습니다. 누구보다도 지난 시간을 치열하게 살아왔고 지금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는 결코 나약하지 않습니다.
단지 지금은 조금 지쳐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지친 나를 회복하는 방법을 배우는 중입니다. 느린 사람이라 병을 받아들이는 것도, 병을 위해 치료가 필요하다는 것도 모두 느리게 이해했습니다. 이제는 느리게 스스로 병을 이겨내는 법을 찾고 있는 중입니다. 저 이 정도면 아주 잘하고 있지 않은가요?
오늘은 조금 칭찬을 듣고 싶은 날입니다. 선생님을 마주한다면 너는 또 아주 짧고 간결하게 이야기할 겁니다.
'저의 한 달은 그냥 평범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