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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훌리 Oct 23. 2020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날

10월 진료2

저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날들을 보냈습니다. 이건 저에게 매우 큰 의미입니다.  버티고 버티던 날들에서 평온을 찾았습니다. 어디서부터 인지는 모르겠으나 주변의 많은 분들이 해주신 좋은 말이 저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신 것 같습니다.


전 보다 웃는 날이 더 많아졌습니다. 

최근에는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끔찍하게 싫던 운동이 조금씩 재미있어집니다. 새로운 삶에 활력을 주는 것 같습니다. 목표는 염두에 두지 않고 매일 운동을 하는 것에 집중하려 합니다.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저를 힐난하며 괴롭히고 싶지 않습니다. 내가 규칙적으로 생활한다는 것 그 자체에 만족을 느끼고 싶습니다. 


학교 일은 힘이 듭니다. 아이들과 감정 소모하지 않으려 최대한 애쓰지만 하루도 신경 쓸 일 없이 지나가는 날이 없는 것 같습니다. 아이들의 생각과 말을 곡해 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하지만 이 자체가 힘이 드는 날이 있습니다. 때로는 가짜 연기를 하며 화를 내는 날도 있습니다. 좋은 마음으로 베푼 호의를 아이들은 왜 받을 줄 모르는 걸까요. 서로 최소한의 약속만 지킨다면 이렇게 언성을 높일 일도 없을 텐데 너무 안타깝습니다. 화를 내는 것은 싫지만 깨끗해진 교실과 가득 차 있는 휴대폰 가방을 보면 마음이 진정됩니다. 제대로 학급이 운영되고 있는 것 같아서요. 몇 번의 진심과 몇 번의 가짜 연기를 하며 저는 아이들을 지도하는 법을 익히고 있습니다. 이건 제가 더 선생스러워진 것 같아 마음에 듭니다.


저는 이제야 제 삶을 받아들이게 된 것 같습니다. 


2020년이 얼마나 남았는지 세어보며 매일을 보냅니다. 2020년을 빨리 보내고 싶기도 하고 21년에는 새로운 시작을 하고 싶기도 해서입니다. 작년에 비하며 올해는 큰 어려움 없이 한 해를 보냈고 한 해를 시작할 때부터 쉬어가는 해라 생각하자 마음을 다독였지만 영 지루해 견디기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이건 제 마음이 다시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는 거겠지요? 


약을 먹지 않은 날도 자주 있었습니다. 약 없이 잠든 다음 날이면 약을 안 먹은 것이 불안해서 더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막상 한 번 거른 끼니처럼 생각하니 약 없이도 꽤 살만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 달에는 혹시 약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합니다. 저는 어느 정도 스트레스받는 상황에 익숙해졌고 스트레스를 조절하는 법도 꽤 익혔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진료에서는 선생님과 더 유의미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제 상태에 대해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기 위해 많은 고민을 합니다. 그런데 지루한 듯 아닌 듯 아무것도 아닌 날을 보내고 있는 저는 또 드릴 말씀이 없을 것 같습니다. 이 것마저도 제가 좋아진 것 같아 한결 가벼운 하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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