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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훌리 Dec 07. 2020

언제나 꽃밭

종례시간 읽어주는 담임의 편지 

선생님 글에서 알 수 있듯이 나는 상처투성이의 사람이야. 가정은 화목하지 못했고, 경제적으로는 늘 어려웠어. 주위에는 나를 미워하는 사람들이 가득했고, 그래서 언제나 혼자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어. 어릴 때는 이런 상처투성이의 나를 이해받고 싶었고 위로받고 싶었어. 그래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다짜고짜 마음을 열고 '내 상처를 봐줘.' 외쳤던 것 같아. 당연히 사람들은 당황스러워했고, 나는 내가 이해받지 못하는 기분이 들어 상심했어. 그렇게 또 상처가 쌓여갔어. 


상처에 지쳐 모든 기억을 지우고 싶었어. 


어른이 된 후 나는 상처 없이 자란 맑은 아이들과 어울리게 됐어. 그 후에 생각했어. 나도 저들처럼 밝고 맑고 싶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아. 상처 없는 척, 행복하게 자란 척 나를 숨기게 된 것이. 그런데 나를 감추고 숨기는 일이 나와는 맞지 않았어. 난 솔직한 사람이었고 생각이나 감정을 표현하는 것에도 거침이 없었어. 행동의 앞뒤가 맞지 않았지. 그래서 점점 그때의 친구들과 멀어지게 된 것 같아. 


10년을 동고동락한 친구들에게 손절당한 일은 꽤나 충격이었어. 그 세월이면 내 마음을 알아줄 법도 한데 나를 오해하다니 서운함을 감출 수 없었어. 그리곤 마음이 꽤 오래 아팠어. 친구들을 미워하는 일도 힘들었고, 지나간 세월의 허무함도 힘들었어. 인생의 절반을 함께한 사람들에게 말도 안 되는 오해를 받게 된 상황이 억울하기도 했고, 그래도 관계를 개선할 수 있다면 용서를 구하겠다는 마음도 들었어. 그렇게 갈퀴고 할퀸 마음에 상처가 아물기까지 다시 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어. 


모든 시간은 다 의미를 갖는다. 


지금 와서 보면 그 시간이 나에게 꼭 필요했다는 생각이 들어. 난 나를 미워하고 있었고, 내가 상처 받는 상황에 익숙해져 있었어. 그러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길 원하고 있었던 거야. 내 상처를 내가 감싸줄 수 있을 때 진정한 의미의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것과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사랑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  그 사실을 깨달은 이후 선생님의 머릿속은 언제나 꽃밭이야. 그리고 마음도 꽃밭이 되어가고 있어. 


과거의 상처 받은 나는 어떻게 된 거냐고? ' 너 많이 힘들었구나. 어려운 시간 잘 견뎌왔어. 기특해.' 이런 말들로 나를 위로해 줄줄 알게 되었어. 그 뒤로는 아프지 않아. 조금 오글거리지? 맞아. 선생님도 오글거려서 못해줬던 말들인데 한 번 해주고 나니 쉽더라. 사실 요즘은 필요 없어. 그만큼 상처가 치유 됐거든. 진짜 꽃밭에서 뛰노는 중이야. 


선생님은 언제나 꽃밭에 있어.


너희도 오늘만큼은 치열하게 산 너희를 칭찬해주고 위로해줘 봐. 조금 오글거려도 어깨를 토닥토닥해주며 '야, 너 오늘 온라인 수업 듣느라 고생 많았어.' 이렇게 무심한 듯 외쳐봐. 자기 위안도 습관이란다. 스스로 격려해주지 못하는 너희를 위해 선생님이 늘 대신 이야기해주지. '얘들아. 오늘도 수고했어.' 


얘들아 정말 고생 많았어. 3일 후면 학교에서 볼 수 있겠구나. 그때까지 건강 조심하고 밝은 얼굴로 만나자. 안녕. 


2020.12.07. 꽃밭에서 뛰노는 선생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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