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서의 위아래는 말이 아니라, 구조가 정한다
관계의 역전은 이렇게 시작됐다.
회사 복도에서 마주칠 때마다, 그 사람은 나를 못 본 척 지나갔다.
눈이 마주쳐도 인사는커녕 표정 하나 바뀌지 않았다.
그래서 나도, 어느 순간부터 인사를 하지 않았다.
내게 호의적이지 않은 사람에게
애써 말을 걸거나 다정한 태도를 유지하는 건
에너지 낭비처럼 느껴졌으니까.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복도에서 마주친 순간,
그 사람이 고개를 '까딱' 인사를 했다.
어색하지도, 억지 같지도 않은 아주 자연스러운 인사였다.
잠깐 멈칫했다.
‘이제 와서 왜?’
‘무슨 의도지?’
‘혹시 나를 상급자로 인식하기 시작한 건가?’
이런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지만,
그보다는 그 사람의 작은 변화가 더 인상 깊었다.
아무 말도, 설명도 없이,
관계의 위아래는 그렇게 조용히 뒤집혔다.
직급은 위일 수 있어도,
실제로 누가 '위'처럼 느껴지는가는
상대가 누구에게 허락을 구하고, 눈치를 보며, 기댈지를 보면 보인다.
오늘 전화 한 통이 왔다.
외부 기관에서 날아온 고지서 처리건.
내가 상무에게 보고해 ‘안 내기로’ 정리해 둔 건인데,
그 동료가 그 사실을 알고 나더니,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이 전화, 대리님이 받아주실 수 있나요?"
그리고 옆에 와서 통화 내용도 조용히 듣고 있었다.
눈빛이 조금 달랐다.
'이건 내가 아닌, 당신이 결정하는 일'이라는 인식이 느껴졌다.
나는 사람은 쉽게 안 바뀐다고 믿는 편이다.
특히 회사라는 곳에서,
위아래가 명확하고, 감정보다 역할이 우선시 되는 곳에서는 더더욱.
하지만 관계의 변화는
상대가 나를 ‘다르게 봐야 할 이유’를 느꼈을 때 시작된다.
그게 ‘위로부터의 승인’이든,
‘일을 맡겨도 되는 신뢰’든,
‘내가 더 이상 만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암묵적 합의’든.
그 사람도 어느 순간 느꼈을 것이다.
내가 상무와 직접 소통하고 있다는 점,
내가 결정한 것이 조직 내에서 유효하다는 점,
그리고 내가 이전과는 다르게 움직인다는 걸.
그 사람의 인사 하나에 내가 이렇게까지 의미를 부여하는 게 웃기기도 하다.
하지만 회사는 그런 작은 눈짓 하나, 말투 하나로
‘서열’이 만들어지고, '관계'가 갱신되는 곳이기도 하다.
이 변화가 내게 꼭 반가운 것만은 아니다.
진심에서 비롯된 존중이 아닐 수 있기 때문에.
구조와 역할이 그렇게 움직이게 만들었을 뿐.
그래도 괜찮다.
내가 바뀌었고,
상대는 그 변화를 감지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직장에서의 관계는
말이 아니라 행동과 구조가 먼저 바꿔놓는다.
관계의 역전은
선언 없이, 해석 없이,
아주 작고 조용하게 일어난다.
그걸 감지할 수 있는 민감함이,
내가 회사에서 살아남는 방법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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