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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새 Aug 17. 2016

생각하지 마라

공황이 있는 사람들은 대체로 생각이 많다. 그 사람들은 내게 이런 말을 한다. “비행기를 오래 타면 얼마나 불안할까요? 만약 비행기가 심하게 흔들리기라도 한다면 정말 무서울 것 같아요. 제가 뱀을 무서워하는데 길을 지나가다가 뱀을 만나면 진짜 미칠 것 같아요. 이런 걱정 때문에 밤에 잠도 잘 못자요.” 이런 생각하느라 자신의 온 힘을 다 쏟기도 한다.


이런 생각을 오래 하니깐 공황이 오는 것이다. 내게 처음 공황이 왔을 때도 ‘망망대해 위에 사람이 혼자 배를 타고 있으면 얼마나 무서울까?’를 10분 넘게 생각하다가 공황이 왔다. 이런 걱정들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것들이며 실제로 이런 일이 일어난다손 치더라도 사람들이 예상했던 것만큼 공포스럽지도 않다.


나는 평소에 갇히는 것에 대한 걱정을 많이 하지만 실제로 내가 엘리베이터에 갇혔을 때는 의외로 침착했다. 고속도로 한 복판에서 폭설 때문에 차가 정체되어 순간 당황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마음이 진정이 되었다. 공황이 있는 사람들이 평소에 걱정하는 일이 현실이 되어도 생각보다 무섭지 않다.


우리가 산에서 호랑이를 실제로 만났다고 치자. 그러면 진짜 우리가 무서움을 느낄까? 나는 아니라고 장담한다. 살기위해 있는 힘껏 도망을 치든지, 어떤 방식으로든 싸우는데 온 신경을 다 쓸 것이기에 호랑이를 무서워하고 있을 여유가 없다. 우리가 하는 걱정들이 도대체 실전에서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우리를 괴롭히는 것은 두려운 어떤 일이 아니라 그 일에 대한 우리의 생각 그 자체이다. 만약 우리가 이런 걱정들만 하지 않으면 공황은 절대 오지 않을 것이다.



붓다가 어릴 적 벌레가 새에게 잡아먹히는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붓다는 벌레가 꿈틀거리는 것이 엄청난 고통 속에 몸부림치는 것이라 여겼을 것이다. 그런데 그건 신의 영역이고 우리는 정확한 것은 잘 모르지 않을까? 그건 그냥 벌레가 고통 없이 조건 반사적으로 반응한 것일 수도 있다. ‘벌레가 참 아프겠구나!’ 하는 것은 우리의 생각에 불과하다. 우리는 세상의 모든 고통을 정확하게 경험하지도 못하면서 그저 생각만으로 계속 고통을 만들고 있다. 붓다가 성인이 되고 나서 깨달은 사실도 아마 ‘생각은 다 쓸데없다’ 일 것이다.



부정적 생각이 들 때는 2가지 대처 방법이 있다. 첫째가 부정적 생각을 반박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다른 관심사를 찾아 행동하는 것이다. 부정적 생각을 반박하는 것은 물론 도움이 된다. 하지만 그 방법도 한계가 있었다. 생각이란 것이 중독성이 있어서 안 좋을 땐 안 좋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진다. 웬만한 의지가 아니면 이 모든 부정적 생각을 잡아내서 일일이 비판하는 것도 힘들다.


우리가 흔히 ‘사람은 생각한 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대로 생각한다’ 라는 말을 하는데 인지행동치료를 받다보면 이 말을 실감하게 된다. 내 사는 것(상황)이 좋으면 좋은 생각을 하게 되고, 내 사는 것이 나쁘면 안 좋은 생각을 하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생각을 바꾸려고 노력하는 것보다 내 상황을 바꾸려고 노력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다. 그래서 우리는 생각보다 행동을 먼저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사랑하는 이로부터 실연을 당했다고 치자. 이때 우리는 일기장에서 이렇게 적을 수 있다. ‘여자가 어디 걔 한명 뿐이냐? 내가 그녀에게 차인 경험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그런데 연인에게 차인 경험이 있는 사람은 알 것이다. 당장 내 마음이 찢어질 것 같은데 이런 글만으로는 큰 위로가 되지 않는다. 이런 말은 시간이 더 지나고 나서야 내 귀에 들어온다. 차라리 이런 경우에는 친구에게 전화를 해서 소개팅 건수를 하나라도 더 잡는 편이 낫다. 우리가 우울에 휩싸였을 때도 그 우울을 이겨내려고 ‘난 슬프지 않아. 난 이 슬픔을 이겨낼 수 있어’ 이렇게 주문을 외우는 것보다 신나는 영화를 보거나 여행 약속 잡는 편이 더 낫다.


우리가 불안하거나 우울한 상태에서 ‘지금 내 상태는 왜 더 이상 나아지지 않는 거지? 이건 뭔가 내가 영영 고장이 난 건 아니야?’ 이렇게 걱정하는 것도 다 쓸데없다. 지금 현재의 분별력으로 미래의 일을 걱정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없다.


우리는 화장실 갈 때 마음과 나올 때 마음이 다르며, 소개팅을 하기 전의 마음과 하고 난 후의 마음이 다르며, 여행을 가기 전의 마음과 간 후의 마음이 다르다. 따라서 우리가 어떻 행동을 하기 전에 앞으로의 상황까지 미리 예측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모든 생각을 멈추고 아무 행동이라도 해야 한다.


나는 ‘윌리엄 글래서’라는 심리학자를 알고부터 인생이 달라졌는데, 이 심리학자는 ‘행동’에 초점을 맞추어 클라이언트를 상담하였다. 우울증으로 찾아온 내담자에게 마라톤이나 등산을 권하기도 하였다. 아무튼 계속 뭔가를 하라는 것이었다.


그 당시 내 미니홈피에는 ‘생각하지 말자’고 적혀져 있었다. 생각은 아무 힘이 없으니 일단 내 몸을 움직이고 보자는 의지였다. 나는 지금도 내 삶에 어떤 위기가 생기면 ‘나는 지금 생각하고 있는가? 행동하고 있는가?’ 이렇게 되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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