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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새 Jul 05. 2017

민지이야기

공시생 시절에 사귀던 사람이 있었다. 이름은 민지(가명). 하연수를 닮았었다. 대학 때 처음 만나 내가 30대 초반까지 인연이 이어졌다. 낮에는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고 저녁에 가끔 그녀와 데이트를 하였다. 대학 때는 아무 문제없었는데, 졸업 후 그녀가 취직하면서 점점 거리감을 느끼게 되었다. 그럴수록 나는 더 초조했다.


밤에 전화를 하면 자주 회식을 한다고 하였다. 화장을 예쁘게 하고, 치마를 입는 날이 많아졌다. 대학 때는 관심도 없었던 향수도 뿌리기 시작하였다. 연락이 안 되는 날도 있었다. 솔직히 누구를 만나 뭐하고 다니는지 알 길이 없었다. 난 그녀에게 더 좋은 것을 사주기 위해서 마트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거의 매일 아침 그녀의 직장까지 차로 데려다주었다. 그녀에게 시간과 돈을 많이 뺏겼다. 그녀는 갈수록 더 빛났고 나는 초라해졌다.


이제 민지에게 내가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가진 장점이 하나도 없어 보였다. 대학생 때는 밥이라도 많이 사줬지만, 이젠 그녀도 직장인이고 비싼 밥도 잘 먹고 다닐 것이다. 그녀와 만나기 1시간 전부터 오늘은 무엇을 그녀에게 자랑해야할지 고민했지만 답이 잘 나오지 않았다. 나는 무기력하게 도서관에서 공부를 할 뿐이다. 공무원에 합격만 한다면 이 모든 상황이 바뀔 것이다. 그래서 내겐 오로지 그 희망밖에는 없었다.


민지는 이기적이었다. 처음부터 그랬다. 대학생 때에도 그녀의 레포트를 내가 대신 써주었고, 내 차로 그녀를 등하교 시켜주었다. 그녀는 공시생인 나를 전혀 배려하지 않았다. 대학생 때부터 이어진 관성 때문인지, 그녀는 나에게 전혀 돈을 쓰지 않았다. 그녀를 만나면 매번 내가 저녁을 사주고 선물을 했다. 항상 돈 걱정을 했지만, 돈이 없다는 말은 차마 하지 못했다. 민지는 내가 쓸모 있을 때까지는 나를 이용한 것 같다.


저녁에 매일 갔던 장소를 드라이브하며 참 많은 시간을 보냈었다. 그때 봤던 예쁜 풍경들이 지금 내게 어떤 의미였을까? 멋진 야경이 낯설었고 편안하지 않았다. 그때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했을까? 영화? 음악? 나와 그녀의 친구 이야기? 그런 대화가 다 무슨 소용이 있었을까? 내 인생에서 가장 중독적이고, 나른하고, 허무한 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서 보면 과거의 모든 장면들이 다 의미가 있었다고 믿는다. 틈 날 때마다 과거를 여행하며 그때의 의미들을 퍼즐 맞추듯 찾곤 한다. 하지만 세월이 아무리 지나도 민지와 함께했던 그 허무했던 조각들의 자리를 완전히 찾지 못했다. 내 인생의 공백처럼 기록되지 않은 시간이었다. 만약 그 시간에 공부를 열심히 했다면 공무원 시험도 합격하지 않았을까? 그 시간에 책을 읽었다면, 그 시간에 그녀 이외의 다른 곳에 몰두했더라면 인생의 한 획을 그을 수 있었을 것이다.


경쟁자들의 모든 관심이 공무원 시험 공부였는데 내 관심의 70이 민지였다. 내가 만약 천재였더라도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것은 사실관계의 문제가 아니다. 이 세상이 아무리 무질서하다고 하더라도 이 정도의 인과응보는 누구라도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삶에 질서가 없다는 것은 우리의 착각이다. 삶의 지혜라는 것은 결국 이 세상이 사필귀정임을 깨닫는 것이다.


나는 왜 그녀를 좋아하게 되었을까? 민지는 도로에 쓰레기를 아무렇게나 버렸다. 나는 깜짝 놀라 왜 그러냐고 이유를 물었다. 그녀는 “도대체 이 나라가 나를 위해 해준 게 뭐 있는데?” 라고 냉소적으로 말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불만에 찬 그 모습이 멋있어 보였다. 그녀에겐 지켜야할 도덕적 관념이 없어 보였다.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고 주변 눈치를 보지 않았다. 시끄러운 락을 좋아했다. 외국문물에 관심이 많았다. 내 눈엔 그녀가 세련되고 우월해보였다.


그녀는 지금까지도 자신에게 잘못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그녀가 내게 잘못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녀는 그냥 본능대로 행동했을 뿐이다. 사귈 동안 나는 한 번도 그녀에게 내 호구짓에 대한 불만을 이야기한 적이 없었다. 그녀는 나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나에 대한 관심이 없었던 것일 수도 있다. 나는 한 번의 마찰 없이 그녀가 원하는 것을 주기만 했다. 내가 만약 화를 내거나, 약간의 밀당이라도 했다면 그녀는 내가 신경쓰였을 것이고, 어쩌면 나를 좋아했을 수도 있다. 감정이라는 것은 필요성이 있어야 생긴다. 게임에서 레벨 업하듯 도전의식이 있어야 사랑도 생긴다. 심지어 부모라도 아이들에게 모든 걸 다 해주기만 한다면 그 아이는 공감의식을 갖지 못할 것이다. 모든 것은 난이도 설정을 하지 않은 내 잘못이다.


그녀를 만날 때마다 뇌하수체에서 나오는 도파민이나 세르토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내게 그런 느낌을 전혀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대신 그녀는 물리적, 물질적인 이득이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내가 더 유리한 딜이었을 수도 있다. 이 비정상적인 계약 관계는 결국 끝이 났다. 그녀의 의심스러운 행동을 내가 계속 추궁하자, 귀찮다는 듯 그녀는 다른 남자가 있다고 말하였다. 그 후 나는 그녀에게 진심을 다해 결혼하자고 하였다. 우리 부모님 잘 사니깐 아파트도 사줄 거고, 나도 무슨 일이든지 하겠다고 하였다. 그녀와 같이 있을 수만 있다면 내 인생은 어찌되든 상관없을 것 같았다. 민지는 내 제안을 거절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그녀는 나와 계속 연락하고 싶어 했으나 그 선에서 내가 끈질긴 6년 시간을 끝냈다.


민지를 미워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녀를 미워하면 시험에 떨어진 모든 것이 그녀 탓이라는 걸 인정하는 것이고, 그 무게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만약 그녀를 원망한다면 그 시간은 내가 그녀를 만났던 시간보다 훨씬 더 길 것이다. 어쩌면 평생이 갈 수도 있다. 그 시간 동안 나 자신을 파괴함으로써 그녀에게 복수하려 들 것이다. 내가 어떤 짓을 할지 모를 것이다. 부처님께서 부정적 감정에서 벗어나라고 했던 이유는 그것이 자신의 발목을 잡기 때문이었다. 그녀를 미워한다면 앞으로 내가 어떤 일을 해도 그녀에 대한 미움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그녀가 아닌, 나 자신을 위해서라도 나는 그녀를 미워하면 안 되었다.


물론 민지를 잊기는 힘들었다. 그녀만큼 매력적인 팜므파탈은 어디에도 없었다. 다른 여자들은 다 시시했다. 그녀의 전화 번호, 카톡, 문자, 관계된 지인들까지 모두 차단했다. 다른 여자를 좋아해보려고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에게 전화가 왔다. 수신이 거부 돼 있었지만 부재중으로 뜬 번호를 볼 수 있었다. 반년만의 부재중 전화였다. 나는 그녀가 왜 전화했는지 몹시 궁금했다. 그래서 그 이유만이라도 듣고 싶어 문자를 보냈다. ‘왜 전화했는데?’ 바로 답장이 왔다. ‘그냥 전화하면 선배가 받을 거 같아서요’ 라고 했다. 나는 더는 연락하지 말라고 하였다.


그리고 또 한동안 심란해했다. 마약보다 진한 그녀의 향수와 초콜릿보다 달콤한 음성, 내 손에 꽉 지어진 작은 손의 촉감이 너무 선명하다. 사실 그녀는 날 떠나간 당시나 지금이나 한번도 날 떠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녀에 대한 감각들은 시간이 지나도 희석되지도 않는다. 젠장. 그녀를 밀어내는데 너무 많은 힘을 소진하였다.


민지는 다른 남자와 결혼한 후에도 내게 문자를 보냈다. 내가 아직도 이용가치가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내가 보고 싶기라도 했던 것일까? 상관없다. 계속해서 그녀를 차단했다. 그녀는 원래 제멋대로 행동했었다. 나라도 똑바로 서 있어야했다. 내 마음대로 해도 상관없었지만, 이 부조리한 세상에도 지켜야할 가치가 있음을 직감했다. 그녀와 내가 다른 점이 바로 이 부분이었다. 내가 윤리를 저버린다면 이 세상이 가벼워져서 아무 의미도 찾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바닥까지 찍어보니 내가 바닥이 아니었다. 그때 깨달았다. 내가 아직도 이 세상을 희망하고 있었단 사실을.


어쩌면 나는 처음부터 그릇이 큰 사람이었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민지에게 호구짓을 하고도 불만하지 않았던 것은, 피해의식 없이 자란 좋은 내 환경 덕분이었을 수도 있다. 그녀의 어떤 행동도 묵인할 수 있었고, 처음부터 민지를 미워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던 것일 수도 있다. 내가 만약 민지에게 복수를 한다면 허용되는 단 한 가지가 있다. 바로 내가 잘나가는 것. 너 없어도 내가 잘 살고 있다 보여주는 것. 오직 그거 하나만 보고 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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