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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새 Jul 12. 2017

무기력한 공시생 생활

요즘 대학생들은 스펙도 쌓고 이리 저리 취업 준비도 열심히 하지만, 그 당시 나는 그런 노력을 하지 않았다. 그냥 놀았다. 누구도 졸업을 하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구체적으로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었다. 취업을 할 수 있었으면 취업을 했을 것이다. 그 당시 약삭빠른 몇몇 동기들은 선배나 교수님의 친분으로 미리 취업을 하기도 했다. 굼뜬 나는 그러질 못했다.


취업을 하는 것은 많은 노력과 복잡한 절차가 필요해 보였다. 취업하기 위해서 대학생 때 학점을 관리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많은 아이들이 있었다. 하지만 내 졸업 학점은 2점이 겨우 넘었다. 공무원 시험은 참 편했다. 시험만 합격하면 끝이었다. 합격만하면 내 학점 같은 건 상관없었다. 나는 대학교 때 공부 안 한 것도 공무원이 되면 다 감춰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친구들이 내게 왜 공무원 시험을 보냐고 물어보면, 나는 “딴 거 할 게 없어서”라고 대답했다. 대학생 때 겉으로는 마냥 재미있게 놀았지만 내 무의식속에는 늘 죄의식이 쌓여갔었다. 나 빼고 다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세상을 억지로 모른척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이 죄의식이 나를 우울증을 만들었다.


슬기와 나는 공무원 학원에 등록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2시까지 수업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수업을 마치고 도서관에서 공부를 했다. 처음엔 재미있었다. 같이 공부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학원에서 슬기 친구와도 친해졌다. 나도 예전 친구들을 많이 만났다. 같이 밥도 먹고 공부를 할 땐 즐거웠다. 하지만 그 기쁨도 오래가지는 못하였다.


중간에 공무원을 포기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그리고 동기들의 합격 소식도 들려왔다. 당시엔 드라마의 주인공들도 공무원이 많았다. 그들이 미친 듯이 부러웠다. 예능 tv프로그램을 봐도 하나도 즐겁지 않았다. 모두가 웃고 있는데 나만 즐겁지 않았다.


내가 아직도 공부를 하는 것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슬기와 함께 비싼 밥을 먹을 때에도 세상이 회색으로 보였다. 이 우울상태가 도저히 회복이 될 것 같지 않았다. 아무런 희망이 보이질 않았다. 합격이라는 것이 과연 존재하기는 하는 것인가? 의심이 들었다. 하루라도 마음 편히 놀지 못했다. 놀아도 노는 것이 아니었다. 돈도 없었다. 아빠는 때마침 정년퇴직을 하여 앞으로 뭐하고 살아야하나? 걱정이 많았다. 친구의 결혼 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하는데 내가 가진 정장은 이미 유행이 지났었다. 정장 살 돈도 없었다.


시간이 갈수록 공부 자체도 버거웠다. 국어는 범위가 너무 넓어서 어디서부터 공부를 해야 할 지도 몰랐다. 한자가 뒤섞인 고전문학에서 문제가 나오면 찍는 수밖에 없었다. 한자 문제는 많아야 2개 나오는데, 그것 때문에 방대한 양을 공부해야 하나 고민을 했었다.


법 과목은 무수히 많은 판례를 외워야만 했다. 뭔가를 ‘외워야한다’라는 것은 큰 스트레스이다. 우리가 밥을 먹거나, 머리를 감거나, 노트에 필기는 쉽게 할 수 있지만 암기는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암기는 ‘하는 것’이 아니라 ‘되는 것’이다. 많은 양의 암기를 해야 한다는 압박은 내겐 엄청난 부담이었다.


국사는 그나마 스토리가 있어서 재미가 있었다. 선생님이 가르쳐주는 내용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험을 치면 점수가 잘 나오지 않았다. 내가 그 강의에서 놓친 부분이 있을 것이다. 그 부분 때문에 공부는 해야겠는데, 그 대략적인 내용은 이미 다 내가 다 알고 있는 것이다. 재미있는 동영상 강의도 다시 보면 스트레스이다. 그 과정에서 무슨 재미를 느낄 수가 있겠는가?


게임이 재미있는 이유는 그 속에서 플레이어가 ‘의미’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행동 하나 하나에 점수가 올라가고 보상이 주어진다. 게임의 세계는 얼마나 심플하고, 정직한가? 반면 내 생활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내가 공부한 것과 시험 결과 사이에 어떤 인과성도 찾을 수 없었다(이건 공무원 시험의 특징이다). 나는 방향을 상실했고 허공에 칼질을 하고 있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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