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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새 Jun 19. 2018

반짝이는 별에 기대어 _ 에티오피아 봉사활동기를 읽고

4월 벚꽃이 활짝 핀 진해를 친구와 걷고 있었다. 오래 걸어 지칠 때쯤 발견한 분위기 좋은 카페가 있었다. 쉬어갈 겸 그곳에서 친구와 나는 책을 보았다. 사장님께서 한 권의 책을 추천해주셨다. 잠깐 읽어보니 여행 에세이 같았다. 책에는 아프리카 배경의 사진이 풍부했다. ‘소록소록 추억이 내리는 밤’이라든지, ‘나른한 햇살이 비처럼 뿌려진다’와 같은 예쁜 표현들도 많았다. 나도 이렇게 예쁜 글을 쓰고 싶었다. 그 이유 하나로 나는 이 책을 구입했다.     


책을 자세히 보니 한 미대생이 에티오피아에 교육 봉사활동을 간 후기를 적은 책이었다. 갑자기 사장님이 잠시 뒤에 이 책을 쓴 작가가 여기로 올 것이라고 했다. 얼마 뒤 정말 작가는 카페로 왔다. 20대로 보이는 여성이었다. 알고 보니 사장님이 아프리카로 봉사활동을 가서 작가를 우연히 만나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고 했다. 그녀는 내 책에 ‘당신은 언제나 누군가의 별입니다’란 문구의 사인을 해주었다. 짧았지만 신선한 만남이었다.    

 

그녀는 큰 꿈을 가지고 미대에 진학했지만 좁은 작업실에서 시험 준비만 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답답함을 느꼈다고 한다. 경쟁이 매일 반복되었으며 미래도 불확실했다. 남들을 따라가기에만 바빴다. 그녀는 인터넷에서 우연히 해외봉사단원모집 글을 보게 되고 홀린 듯 그 여정에 이끌리게 된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대륙에서 낯선 사람들을 만나는 것에 설렘이 컸다고 한다. 그녀의 용기가 놀라웠다. 어쩌면 우리는 이 좁은 사회 안에서 불평만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이 책을 읽으면서 에티오피아에 대해서 잘 알게 되었다. 나는 아프리카 난민의 이미지만 생각했다. 그런데 그곳은 시끌벅적한 시장도 있고, 카페도 있는, 그냥 사람 사는 곳이었다. 사진에 비친 에티오피아의 모습은 나의 어린 시절 작은 마을을 보는 것 같았다. 에티오피아는 195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보다 더 잘 살았던 나라라고 했다. 한국전쟁이 일어났을 때 우리나라를 도와주었던 참전국이었단 사실도 알게 되었다.      


에티오피아의 첫 느낌은 선명함이었다. 햇살도, 공기도, 별까지도 깨끗했다. 미세먼지가 많은 환경에 살다보니 아프리카의 그 청량함이 부러웠다. 또 그곳엔 건강한 음식이 많았다. 한국에서는 비싼 애플망고, 아보카도, 파파야, 구아바 같은 과일을 원 없이 먹을 수 있다. 작가는 엄청난 식욕으로 이곳 음식을 먹어도 살이 10킬로 빠지고 몸은 더 건강해졌다고 한다. 시력은 더 좋아졌으며 피는 점점 맑아졌다. 아토피도 사라졌다고 한다. 


     

물론 에티오피아에 살면 불편한 점도 많다. 전기가 정기적으로 들어오지 않아서 밤마다 촛불이 필요했다. 단전이 될 때는 밤에 잠자는 것 말고는 할 것이 없었다고 했다. 단수가 되면 길게는 2주일까지 물이 나오지 않았다. 뙤약볕에 땀이 많이 흘러도 제대로 씻지 못한다. 비상 물을 다 쓰면 물이 나오는 이웃집에 가서 신세를 져야한다고 했다. 벼룩, 모기, 바퀴벌레도 많았다.      


작가는 어두운 거리에서 두 번 강도를 만났다. 첫 번째 강도를 만났을 때 얼굴을 가격 당했다. 큰 부상은 없었지만 에티오피아에 오만정이 다 떨어졌다고 한다. 트라우마가 생겨서 집밖으로 잘 나오지 못했으며, 누구의 연락도 받지 않고 집에서 혼자 지냈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고 작가는 두 번째 강도를 만났다. 그는 칼로 그녀를 위협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 무서운 상황에 냉정하고 침착하게 대응해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그 다음날도 아무렇지도 않게 외출을 하였다. 에티오피아에서 2년 넘게 살았다는 자긍심도 있었다.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그녀는 여러 면에서 성장하고 있었다. 그녀가 부러웠다. 나는 많은 시련에도 더 단단해졌을까? 그녀처럼 자신 있게 자신이 더 강해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 작가는 2년 6개월을 버틸 수 있었을까? 그것은 에티오피아 사람들의 따뜻함과 학생들에 대한 책임감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곳엔 나쁜 사람들도 있었지만 좋은 사람들도 있었다. 작가가 강도를 만난 뒤에도 그녀를 꼭 안아주며 쉴 새 없이 미안하다고 말해주는 사람도 있었다. 작가가 혼자서 집에 있을 때에도 계속 전화를 해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고 말해준 사람도 있었다. 사람으로 얻은 상처는 사람으로 치유될 수 있었다.      

나와 만났을 당시 그녀는 아프리카의 얻은 경험으로 사람들에게 강연도 하고, 에티오피아 사진전도 한다고 말했다. 일본 여행을 준비 중이라고 말했던 그녀는 지금도 세계 어딘가를 걷고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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