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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새 Jul 25. 2015

생각에 중독되다

최근 일주일 동안 오후 3~4시쯤에 일을 마치고 곧바로 집에 온 적이 거의 없다. 30대 이후 내 인기가 대폭 하락세임에도 불구하고 요즘엔 이상하게 저녁이 가까워지면 어느 누군가가 내게 꼭 연락을 하여 저녁을 사준단다. 내 주가가 소폭 상승한건가? 아니면 내가 온. 오프라인 할 것 없이 빈곤한 티를 너무 내고 다닌 것이 이제야 효과를 발휘하는 것인가? 에잇, 모르겠다. 일단 공짜 밥은 얻어먹고 보는 것이 내 오랜 백수생활의 불문율이다.


은인들과 같이 저녁을 먹고 수다를 좀 떨다 보면 어느덧 시간이 밤 9~10시를 가리키고 있다. 이쯤 되면 내 몸은 천근만근, 오로지 침대만을 갈구한다. 설령 스태미너가 조금 남아있더라도 그 다음 날 아침 6시에 기상을 하려면 고독을 음미할 여유 없이 대충 씻고 바로 자야만 한다. 요즘 블로그 포스팅 안 올라오는 것도 다 이런 이유이다.


헌데 그렇게 침대에 누우면 내 마음 속 어딘가에서 뭔가가 새어나가는 듯 휑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난 오늘 뭘 한 거지? 항상 남들과 섞여 있으면서 일하고, 떠들고, 마시면서 정신 없이 하루가 스쳤지만 그 속에서 남은 것은 무엇인가? 도대체 하루 1시간이라도 생각이라는 것을 하고 사는 걸까? 내겐 그저 99%의 무의식이 지배하는 조건 반사적인 작용만이 있었던 건 아닐까?'


대학 졸업 후, 사회복지사를 하면서 그 일을 그만둬야겠다고 느꼈던 분명한 순간이 있었다. 일을 시작하고 반년 정도가 지나니 거칠고 복잡했던 모든 업무가 내 몸에 딱 들어맞기 시작해갔지만, 새로움이나 도전 같은 감흥은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매일 똑같은 양식의 업무일지, 상담일지, 회계장부 등을 보는 것에 염증을 느낀 것일까? 잦은 회식과 늦은 근무 시간에 피로해진 탓일까? 상사로부터 일 좀 한다는 칭찬을 듣긴 했지만 창의성 없는 반복된 일상의 헛헛함을 달래기엔 역부족이었다.


최근에 처음 나와 같이 사회복지사를 시작했던 동료들이 지금은 연봉도 높아지고 어느 정도 삶에 기반을 잡아 벌써 결혼까지도 한다는 소식이 종종 들려온다. 쳇, 얘네들도 얼마 안 있어 카스에 아기 사진 올리고 그러겠지. 카스 삭제할 날도 얼마 안 남은 듯. 사실 그런 거 보고 있으면 ‘나도 한 군데서 오래 있었으면 지금쯤 내 나이에 맞는 보통의 일상을 보낼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씁쓸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게 다 내 고질병인 ‘생각중독’ 때문인 것 같다. 양파를 좋아하는 내가 오늘 점심에도 짬뽕이 당겼듯이, 알게 모르게 내 인생의 중요한 선택의 순간에는 ‘생각’ 이라는 조미료가 항상 들어갔던 것 같다. 하루 몇 시간이라도 골똘히 생각을 해야지만 내 인생이 의미 있는 것 같고 퇴적물이 축적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나만 그런가? 지금도 일이 식상해지거나 몸이 피곤할 때면 생활에서 ‘생각’이 사라질까 늘 노심초사이다.


우리가 홀로 여행을 가거나 낯선 환경에서 움직일 때 ‘생각'을 할 수 밖에 없듯이, 나는 모든 새로운 장소, 책, 영화, 문화에 그저 매료되어 왔던 것 같다. 그렇게 나를 자극시키지 않으면 주위 공기가 너무 무미건조하여 숨 쉬기가 힘들었다. 물론 어느 정도 외부에 익숙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겠지만 그 숙련됨이, 떠들썩한 오랜 동료들이, 혹은 일의 피로와 노동이 내게 하루 중의 1~2 시간의 사색도 허락하지 못한다면 나는 다시 그 모든 익숙함을 운명처럼 잘라낼 것이다. 이건 역마살보다 더 고약한 불치병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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