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 사이에 친구가 될 수 있을까?

by 참새

나는 15년째 친구로 지내고 있는 여자아이가 있다. 오래전, 이 친구와 같이 놀다가 집에 데려다 주는 길이었습니다. 그때 나눈 대화 中


친구 : 우리 친구로 지낸 지 꽤 되지 않았나? 우리들 보면 남녀 사이에도 친구가 가능한 것 같지 않아?


참새 : 그러게. 근데 내가 너를 좋아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없었다면 내 시간, 에너지 들여가며 너랑 밥 먹고, 놀고 이렇게 너네 집까지 데려다 주고 있을까? 그럼 내가 널 좋아하는 건가? 그건 또 아닌 것 같은데.. 내가 예전에 사귄 애처럼 너를 만날 때마다 막 설렌다거나 오래 못 보면 가슴 아프고 이런 건 또 없거든.. 이런 게 독립된 감정이라면 남녀 사이의 '우정'이라고도 볼 수도 있겠네.


심리학자 프로이트는 엄마와 아들 사이라도 이성 간의 감정이 존재한다고 했는데 (물론 의식 위로 그 감정이 솟아오르지는 않지만) 하물며 남녀 친구 사이에 이성적인 감정이 없을까? 당연히 있을 것이다.


그런 이성적 끌림과 앞으로의 비전이 약간이라도 있기에 같이 만나서 이런 저런 얘기도 하고 밥도 먹고 영화도 볼 수 있는 것 아닐까? 어쩌면 시쳇말로 이 친구를 '보험'이라고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좀 막연하긴 하지만 이것저것 다 안 되었을 때 마지막 대안 같은 것? 그런 면에서 보면 '남녀 사이에 친구라는 건 그 아이와 내가 잘 될 가능성이 1%라도 존재한다면 최소한 필요조건은 되는 것 같다.


상대가 단순히 예쁘고 매력적이라고 해서 모두 가까워지려고 하지는 않는다. 가령, 내 친척들도 참 예쁜 애들 많은데 내가 친척들을 그 친구 대하듯, 심심할 때 전화를 한다거나 같이 저녁을 먹자고 불러내지는 않는다. 생각해보면 걔들도 여자인데 프로이트 말대로라면 분명히 이성적인 감정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친척들끼리는 어차피 결혼을 할 수 없기에, 사회적으로 어떤 비전도 없기에 애초에 그런 끌리는 마음을 무의식에서 차단시켜 버리는 것이다. (프로이트의 superego개념)


나는 친구 사이의 우정이란 것이 난(蘭)에 꽃이 피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적당한 수분, 온도, 일조량, 영양분 이런 조건이 딱 들어 맞아야 생길 수 있는 특이한 관계이다. ‘관심’과 ‘사랑’ 사이에 존재하는 어떤 것 말이다.


물이 아예 없거나 너무 많이 있으면 난에 꽃이 피지 않듯이 잘 될 가능성이 너무 없거나 또는 갑자기 모든 사랑의 방해 요소가 다 걷힌다면 우정이 지속되지도 않을 것이다. 남녀 간의 ‘우정’은 그 적당한 잡음과 수분이 유지되기에 피어나는 새로운 꽃과 같은 인연인 것이다. 나는 20대 후반에 심리학자 ‘레온 페스팅거’의 영향으로 인간의 모든 생각, 태도, 감정까지도 환경의 지배를 받는다고 확신했다. 아마 지금의 마인드로 그 친구의 질문에 다시 대답을 했더라면 솔직히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너랑 이렇게 친구로 계속 지낼 수 있는 건 너랑 사귈 상황이 아니라서 그런 것 같다. 넌 충분히 매력적이지만 너도 남자가 있고 나도 문대라서 주변에 여자가 많잖아? 게다가 우리는 서로 학교도 멀고 별로 접근성도 좋은 편이 아니잖아. 이런 적당한 방해 요소가 우리를 계속 친구로 만드는 것 같다. 물론 널 이성으로써 좋아하는 마음은 내 마음속 깊숙이 있겠지만 그게 심각한 사랑이 될 정도로 내 방어기제가 방관하지 않겠지. 그러니 안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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