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힐링캠프에 ‘이지선’이라는 분이 나왔다. 그녀는 13년 전 교통사고로 얼굴을 비롯해 상반신 전체에 화상을 입고 수십 차례 피부 이식 수술을 거쳐 지금까지도 재활치료를 받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하였다. 정말 그녀가 얼마나 심한 물리적 고통과 정신적 충격을 받았을지 잠깐 상상해보는 것조차 버거웠다. 그녀는 아직도 몸 곳곳에 화상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었지만 스튜디오에서 시종 밝은 모습을 보였다.
나는 그녀가 어떻게 그 생지옥 같은 시간을 견뎌냈는지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힘든 치료가 이어지고 있을 때, 설상가상으로 손가락까지 절단해야 하는 수술이 있음을 알았다고 한다.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 그녀가 그녀의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그래도 손가락을 더 많이 자르지 않아서 참 다행이지?” 그때 자신이 그런 말을 하고도 ‘어 이건 누가 한 말이지?’하고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고 한다.
그 날 이후로 그녀는 ‘짧아진 손가락으로도 단추를 잠글 수 있고, 문을 열고 닫을 수 있어서 감사하다. 멀쩡한 다리로 계단을 오를 수 있고 소중한 가족들과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어 감사하다.’ 이런 자세로 자기 자신에게 세뇌를 하면서 삶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녀가 내린 결론은 ‘우리는 항상 남들과 비교하면서 스스로를 힘들게 하지만, 화상과 같은 절망 속에서도 삶에 감사할 수 있는 습관만 가진다면 이 세상이 아름답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라는 메시지였다.
나는 그 방송을 보면서 정신이 번뜩 들었다. 그동안 나는 삶에 감사해야 한다고 수없이 생각했고 글로써 그것을 역설하기도 했지만 실제로 내 이웃님들처럼 ‘감사일기’를 쓰는 실천에는 인색했던 것이다. 내겐 아직 추상적인 이념이라 방관했던 것이 어떤 이에겐 가장 절실했던 실존이며 삶의 구체적 방침이었는데도 말이다.
나는 온갖 부정적인 상념들이 지금 이 시간에도 나를 거칠게 휘저으며 초라하게 뭉개는 상황을 더는 좌시해선 안 된다고 판단했다. 계속 건더기 없는 생각만 하면서 실천을 뒤로 미루는 것이 싫었다. 물론 ‘삶에 감사하기’가 쉽지만은 않은 것도 잘 안다. 힐링캠프 사회자들도 이지선 양에게 ‘감사하는 습관이 좋은 건 충분히 알겠는데 그것이 워낙 몸에 배어 있지 않아서 실천이 잘 될지는 모르겠다’고 하였으니깐.
감사일기를 정기적으로 쓰는 것이 가능하려면 내가 여러 사람들과 ‘독서토론’을 하듯이 최소 2명 이상이 만든 어떤 ‘제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래서 최초에 생각한 것이 창원 어디에서 5명 정도가 만나 감사일기를 발표하는 모임을 가져보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사람들과 일주일에 한 번씩 직접 만나는 것은 시간적, 공간적 제약이 상당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마침내 내린 나의 결정은 지역이나 인원수 상관없이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는 ‘감사일기를 쓰는 인터넷 카페를 만들어 보면 어떨까?’ 로 귀결되었다. 그러면 서로 감사일기를 공유하기도 쉽고 많은 제약 없이 누구나 자유롭게 일기를 써서 올리고 싶을 때 올리는 것이 가능하다. 물론 ‘일주일에 한 개 이상은 올려야 한다’ 같은 약간의 규칙은 있을 것이다.
그런 간섭에도 감사일기가 주는 행복감을 회원들이 몸으로 느낄 수만 있다면 다들 귀찮아하면서도 적극적으로 그 카페에 참여할 것으로 예상한다. 만약 인터넷 상의 ‘감사일기 모임’이 안정적으로 정착되고 발전할 수만 있다면 행복감을 증진시키는 더 많은 옵션을 장착시킬 계획도 있다. 예를 들어 내가 회원들에게 재미있는 미션도 주고 회원들이 ‘클리어 인증샷’을 올리게 하는 등의 다채로운 문화를 만들면 어떨까 싶다. 그리고 이 모든 게 다 야매가 아니다. 내가 만든 하나의 작은 이벤트에도 그 심리학적 근거를 명시할 것이다. 그래서 모두가 신뢰하고 자신의 행복을 맡길 수 있는 재미있는 공간을 이끌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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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새의 상상은 현실이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