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까지 감사일기 단체 카톡방을 운영하고 있다. 작년 10월부터니깐 1년이 다 돼 간다. 이렇게 오랫동안 채팅방을 유지한 것도 정말 대단한 것 같다. 주변에서는 내 시간 많이 뺏긴다고 단톡방 하지 말라고 조언해주는 친구도 있다. 나도 솔직히 신경 쓰일 때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포기하지 못하는 주된 이유는 이 채팅방이 나에게 감사일기를 꾸준히 쓰게 하기 때문이다. (물론 채팅방 자체가 재미가 있고 그 사람들과 정이 들어버린 것도 그만두지 못하는 큰 이유이다.) 감사일기를 쓰고 나서 확실히 행복감이 전보다 높다. 무엇보다 내가 더 이상 신경정신과 치료를 받지 않고 약도 먹지 않게 되었다. 이건 정말 큰 변화이다.
어제 tv를 보고 있는데 전쟁 관련 다큐가 하고 있었다. 군인들이 크게 다치고 처참이 죽어나가는 모습이 그대로 나왔다. 예전의 나는 이런 끔찍한 장면들을 소화하지 못했다. 그런 장면을 보면 계속 두려운 생각이 들고 심하면 공황으로 발전하기도 하였다. 나는 파괴적인 생각을 계속하는 것을 ‘타나토스에 빠진다’고 표현한다.
지금은 내가 달라졌다. 현재 내 마음이 파괴로 이르고 있는 중이라는 걸 분명히 인지한다. 내가 얼마나 오랫동안 더 타나토스에 빠지면 공황이 올 것이라는 것도 대충 예측한다. 내 감정에 약간 거리를 두게 된 것이다. 이젠 동요 속에서도 적당한 타이밍에 부정적인 생각을 멈출 줄 안다. 불교에서 스님들은 화(anger)가 일어났을 때 거기에 빠지지 말고 자신의 감정을 가만히 바라보라고 한다. 지금 내가 그렇게 한다. 감사일기를 쓰고 나서 내 감정을 멀리서 지켜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감사일기를 쓴다는 것은 내가 나 자신에게 천천히 말을 거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그런 과정에서 감정을 관조하는 여유가 생긴 것이다. 불교에서 하는 명상이나 기도도 감사일기를 쓰는 것과 비슷한 효과가 있다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나쁜 생각, 감정들이 내 머리 속에서 활개를 쳐도 어찌할 수가 없었다. 그런 부정적 생각이 이는 것은 원래 어찌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내 생각의 오버스러움과 거짓을 안다고 해도, 이성은 내 가슴을 컨트롤할 수가 없었다. 나쁜 것을 알면서도 내 머리는 그 미친 메커니즘을 방관하였다.
그런데 이제는 내가 달라졌다. 내 생각을 내 가슴에 의지적으로 전달하기 시작했다. 천천히 글로써 또박 또박 긍정의 말을 종이에 적으며 내 마음을 두드렸다. 깊은 숨을 쉬며 감사일기를 쓰는 그 순간을 음미하기도 하고, 그 공간과 의식을 내 뇌에 각인시켜 이성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내 마음을 그저 종이에 적는다는 것이 이렇게 (좋은 의미로) 중독적이며 혁명적일 줄 미처 몰랐다.
난 이제 수동적으로 아무 데나 치솟는 생각, 감정에 휩쓸리지 않는다. 내가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주저 없이 글로써 이야기한다. 그래서 내 마음을 더 잘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언제라도 내 마음을 기분 좋게 바꿀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