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 당신이 됩니다

by 왕신 송화웅

4. 그 친구는 지금 어디에

나에게는 어려서부터 함께 하던 보고 싶은 친구가 있다. 바쁠 때는 생각이 안 나지만 어쩌다가 일손이 끊기고 한가해지면 이따금씩 생각이 난다. 나보다 나이는 한 살이 윈데 학교는 나보다 두해나 늦은, 씩씩하고 체구가 건장한 친구였다. 겨울이면 늘 두툼한 누비옷을 입었고, 항상 누런 코가 코 끝에 달라붙어있다. 팽하고 풀어도 금세 누런 코가 고드름처럼 달려있는 동혁이라는 친구, 그 친구가 보고 싶다.

닦지 치기를 하면 언제나 게가 다 따갔다. 달리기를 해도 게가 1등이고, 스케트를 만들어 타도 게가 하라는 대로 해야 스케트가 만들어지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만들면 문제가 생겨 제대로 타지지가 않는다. 연을 날려도 게 것은 팽팽히 떠 오르는데 내 연은 힘이 없고 금세 푹 떨어졌다. 안타깝던지 게가 와서 도와주면 내 연도, 금세 힘차게 오르는데.

연 싸움을 할 때는 더 볼만하다. 풀을 좀 되게 쒀서 유리가루와 버무려 연줄에 똑같이 바르는데, 싸움을 하면 게 연만 남고 내 연이랑 다른 애들의 연은 어디론가 날아가 버린다.

손재주가 좋고 머리도 좋아 무엇이든 손만 대면 척척 해내는 만능 해결사, 그 친구가 지금은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사는지 한번 만나 보고 싶다.

재주대로 산다면 게는 지금 잘 살고 있어야 한다. 물건을 만들고 꾀를 잘 부리는 것을 보면 게가 공고를 가야 했을 텐데 엉뚱하게도 게는 사범대학 병설 고를 갔고, 손재주도 꾀도 없는 나는 공고를 갔으니, 사람 팔자는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더욱 게가 어떻게 살고, 무엇을 하며 사는지 궁금하다.


공고를 나온 나는 제지회사에 합격하여 전국에서 뽑힌 공고 졸업생 열 명과 더불어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공고생으로 서울 수도공고, 대전공고, 전주공고, 광주공고, 청주공고, 이리공고 출신들이 새로운 꿈을 안고 40:1의 경쟁률을 뚫고 입사한 동기생 들이다. 이들은 지금도 이따금 모임을 하곤 하는데 그중, 네 사람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한 사람은 입사 첫날부터 나오지를 않았고, 한 사람은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없고, 두 사람은 아무 연락이 없다. 그중의 한 사람, 희상이는 나에게 우상 같은 존재였는데 소식이 끊겨 아쉽기만 하다.

입사 당시만 해도 나는 시골 촌뜨기로 숙맥 같은 청년였다. 술도, 담배도, 여자도, 아무것도 모르는 맹탕였는데, 친구 희상이는 다 아는 도사 청년였다.

희상이와 나는 같은 근무조로 3교대 근무를 했다. 새벽 한 시부터 근무하는 병조(丙組)가 되면 게는 가끔 지각을 하므로, 인계하는 앞조의 근무자는 불평을 자주 했고, 자주 그러다 보니 회사 측으로 보면, 게는 문제 아다. 시간을 칼날같이 지키는 바보 같은 나에 비해, 게는 적당히 꾀를 부릴 줄도 알고, 담배 피우며, 기분 좋으면 외상술도 마실 줄 아는, 요령 있으면서도 인생을 즐길 줄 아는, 내가 보면 부럽기만 한 친구였다. 같은 조여서 쉬는 시간이 같으므로 같이 있는 시간이 많아, 나는 점차 게를 닮아 갔다. 찬 물을 방에다가 떠놓고, 담배를 피웠다. 담배를 피우다가 어지러워지면 얼른 찬물을 마신다 그러면 금방 괜찮아진다. 이렇게 하여 나는 희상이로부터 담배 피우는 법을 배웠다.

어른스러워 저 간다고 희상이와 나는 담배를 피운 것이다, 그리고 기타를 들고 산으로 들로 쏘다니기도 하고, 소주병을 뒷 춤에 차고 마른오징어를 뜯으며, 철학이 어떻고, 종교가 어떻고 하면서 비평과 불만을 토로하곤 했다. 그러다가 게가 가졌던 모든 소지품을 내게 맡기고 군에 입대함으로써 게와의 관계가 끊겼다. 그 후 한 번인가 휴가를 나와 만났는데 뒷 소식은 감감하다.

얼마 전 서울에서, 친구 편에 소식을 들으니 교통사고로 저 세상 사람이 되었다고 한다.

아침 일찍 산책을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차에 치인 사고라면서 모두들 아쉬워했다. 많이 보고 싶은 나에게는 아쉬운 친구다. 돌아오는 길에 희상이를 마음속으로만 그리면서 넋을 위로하는 것이 고작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시골 촌뜨기가 그래도 너를 만나 눈을 뜨기 시작했는데, 뒷 이야기는 듣지도 않고 이렇게 훌쩍 가버리면 어쩌냐 이 친구야? 네 덕택에 서울과 군산의 벽을 허물고 나를 도회지로 나가게 하는 단초를 제공해준 넌데, 결과는 보지도 않고 원인만 제공했으니 아쉽기만 하구나. 친구야!

너와 함께 시작한 담배는 그 후 25년 동안 피웠다. 물을 떠놓고 억지로 피우던 담배가 마지막에는 하루 50개비를 피우는 줄담배가 되었다. 세 차례나 담배를 끊어, 길게는 3년 짧게는 6개월을 끊었는데, 끊었다가 다시 피우게 되니, 그때마다 담배가 늘어, 나중에는 줄 담배가 되어 담배가 없으면 일이 손에 잡히지가 않더구나. 지금은 담배를 끊은 지. 30년이나 됐어. 그래, 너는 얼마나 피웠니? 한 번이라도 끊으려고 시도나 해 봤니? 술도 그랬어. 처음에는 너와 내가 소주 한 병만 마셔도 취한다고 안 그랬나? 그러던 술이 자꾸만 늘더니 한 때는 마셔도 마셔도 안 취하는 술꾼이었단다. 지금은 약해졌나 반 병만 마셔도 취해! 이제는 많이는 못 마셔도 매일 조금씩 하는 애주가가 되었지.

희상아! 나는 너를 만나서 행복했어.

고려제지 모든 사람들이 너와 같이 노는 나를 만류했지만, 나는 너의 신선함이 좋았어. 남과 같지 않으면서도, 언제나 당당할 수 있는 너의 모습. 머리 모양이 C. 영의 만화에 나오는 ‘불론디’ 같아 너의 닉-네임이 ‘불론디’ 였어.

네가 아니었으면, 나는 영영 군산 촌놈였을 거야. 대학교에 간다고, 당당히 사표를 쓸 수 있었던 용기는 네가 나에게 준 가장 큰 선물였어. 군산을 떠난 후 나는 한 번도 후회를 해본 적이 없어.

너는 그랬지. 두루 경험해봐야 폭넓은 사람이 된다고. 그러면서 대학에 진학을 해야 한다고 나를 꼬드겼어. 너는 그만큼 내겐 우상였고 새로움였어!

그래서 우리는 친구가 된 거야.

고맙다. 친구야!

너는 영원히 내 가슴에 살아 숨 쉬는 친구야.

너와 같이 군옥 도로를 자전거로 드라이브하던 아내가, 너와 나는 둘도 없는 친구래.

너의 짝지였던 금옥이도 너도 눈앞에 없으니 씁쓸하지만, 우리 부부는 너희들을 화제로 가끔씩 이야기하며 너희들을 회상한단다.

언제나 너는 나를 리드했으니까, 나는 너의 뒤를 따를 거야.

저승에서도 앞잡이가 되어 준다면, 나는 즐거이 네 뒤를 따라주마.

편히 쉬게나, 친구야.


동혁이 너, 너는 어데서 무얼 하고 있냐?

강원도에서 직업 군인으로 오래 근무하다가 결혼하고, 처가에 들어가 부모님을 모시고 산다는 얘기를 풍문에 들었는데, 사실이든 사실이 아니든, 그것이 뭐 그리 중요하냐?

네 주특기였던 만능 해결사로서 이웃에게 행복을 주고, 네 존재감을 인정받는 그런 사람이면 만족한 거 아니겠냐!

호남평야 끝 자락에서

똘 물 마시고, 메뚜기 잡아먹던 어린 시절의 친구가 죽지 않고 살아있다면, 너는 올해 일흔아홉이 되겠구나. 아들 딸 몇이나 두었고 어떻게 늙어 가는지 한 번 보고 싶구나.

너도 최선을 다해 살았겠지.

너는 무엇이든 만졌다 하면 걸작을 만드는 재주꾼였잖아.

너는 훌륭하고, 멋진 늙은이가 되었을 거야!

보고 싶다. 친구야!

살아있다면 얼굴이나 한번 보여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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