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그리운 어린 시절
어린 시절이 그리운 것은 꿈이 있었기 때문이다.
중학교에 갈 수 있다는 꿈이 생겨 새로 전학 간 시골,
망성초등학교 6학년 시절.
비록 기간은 1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에겐 그립고 다시 가고픈 시절이다.
전라북도 군산 옆에 발산이라는 곳이 있다.
옥구군 개정면 발산초등학교, 졸업 무렵이 되어 나는 졸업을 유보하고 일 년 더 다녀야 했다. 왜냐하면, 그냥 졸업을 하면 내년에 중학교에 진학이 안 되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일 년을 꿇어야 한단다.
새 학기가 되어 일 년 후배들과 또다시 공부를 해야 하는데 뭔가 창피하고 마음에 안 드는 나날이었다. 어느 날 군대에 갔던 큰형이 제대하고, 학교에 와서 담임 선생님과 몇 마디 하더니, 나는 다른 학교로 전학이 되었다. 입양이 되어, 가는 것이다.
전북 익산군 망성면 망성초등학교가 새로 전학을 간 학교다.
망성초등학교로 전학하여 학교에 다니게 된 나는, 새로운 희망에 부풀게 되었다.
진학반과 사회반으로 나뉘어 공부를 하는데, 나는 진학반이 되어 과외 공부를 하게 된 것이다. 집에서 학교까지는 6km 정도 되는데 걸어서 다니려면 두 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였다.
낯선 시골에 와서 모르는 친구들과 같이하는, 등 하교는 좀 멀기는 해도 그래도 중학교에 갈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충분히 즐겁고 신이 났다.
아침에 동이 터서 훤 해지면 학교 갈 준비를 하고 부지런히 아침을 먹고는, 뒷집에 사는 각용이가 부르면 얼른 학교로 간다. 도시락 하나와 책 몇 권이 든 책보를 메고 학교에 가서, 하루 종일 공부하고 과외까지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깜깜한 밤이 된다.
그날은 월요일, 조회가 있었던 날이다.
전교생이 운동장에 모여 교장선생님의 훈시를 듣고 국민 보건체조를, 확성기 구령에 맞춰 두 번 하는 날이다. 체조를 마치면 쪼르르 자기 자리에 돌아가 수업 준비를 한다.
자리에 돌아온 나는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뭔가 냄새가 나는 것도 같고, 책가방이 흐트러져 있어, 이상하다 생각하고 살펴보니 도시락이 가볍다.
도시락을 열어보니 밥이 반이나 비워져 있다.
점심시간에 도시락을 먹어도 집에 갈 때는 배가 고픈데, 밥이 반이나 없어졌으니 이를 어쩌나! 벌써부터 배가 고파오는 것 같다.
곧바로 담임 선생님이 오셨는데 가슴이 뛰기 시작한다.
도시락 까먹은 이야기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즉시 판단이 안 된다.
그러나 오늘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앞으로도 같은 일이 일어나면 안 된다고 생각해서 선생님께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선생님! 하고 불렀다.
“아침 조회에서 돌아와 보니 도시락을 누가 까먹었어요.”
당번이 누구야?
선생님은 금방 도둑을 잡았다.
당번, 게가 범인이다. 나이가 나보다 다섯 살이나 더 먹은 차 식규라는 애였다.
도둑은 잡았지만 보상할 방법이 없다. 내가 이 학교로 전학 오기 전에도 이런 일이 가끔 있었던가 보다. 그러니까 그 애는 상습범이었던 것이다.
그날 저녁때 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하교 시간이었다.
학교와 집, 중간쯤 왔을 때였다. 몇 명은 앞에 가고 몇 명은 뒤따라 오는데, 뒤에 따라오던 나이 많은 애들 중에서, 차 식규가 소리를 지른다. 도시락을 까먹은 그 친구다.
야, 송화웅!
새로 전학 온 놈,
너 거기 좀 못 서!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섰다.
갑자기 주먹이 날아오고 발길 질이 시작된다.
아침에 있었던 도시락 사건이 떠오른다. 그러나,
괴수로 돌변한 차 식규를 어찌 감당할 도리가 없다. 실컷 얻어터지는 수 밖에는 아무런 대책이 없다. 같이 다니는 각용이는 나 보다 네 살이나 위여서 충분히 말려 줄만도 한데, 힘이 안 되는 모양이다. 모른 척 그냥 가 버린다.
길 양쪽에 파여있는 방공용 구덩이에 쳐 박혀서 한참이나 울었다.
길거리가 온통 자갈밭이라서 자갈 하나쯤 주워 들고 뒤쫓아가, 그놈의 뒤통수라도 한방 치고 싶었지만, 그 뒤의 일을 감당할 수가 없어 설음을 달래느라고 혼자 흑흑거리고 있다.
보름 인가보다. 둥근달이 중천에 떠서 엄마 떠나, 혼자 객지에서 우는 어린것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서러움이 너무 북 바쳐서, 그렇게 한참이나 울었다.
그 이후부터는 도시락 사건이 두 번 다시 발생하지 않았다. 나로서는 불행한 일이었지만 전체로 보아서는 다행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갓 부임한 담임 선생님은 운동도 잘했고, 진학하려는 학생들을 열성껏 가르치셨다. 시간이 좀 나면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며 체력을 다졌고, 공부시간에는 꼼짝 달싹도 못하게 우리를 휘어잡았다. 우수한 성적으로 중학에 진학하면, 너희들 인생이 달라진다면서 이왕에 공부 할거, 정신 바짝 차리고 하라면서 시간 날 때마다 당부, 또 당부하셨다.
나는 남들이 좋다고 하는, 강경 중학교에는 못 가지만 곁에 있는 여산 중학교는 보내 준다고 할머니가 약속해 주시어 그나마 즐거움이었다.
여산 중학교에 입학하였다.
120명. 두 학급인데 남자 90명, 여자 30명. 1반은 남자만 60명, 2반은 남녀 공 학반인데, 나는 전체 중 4등으로 입학하여 2반의 급장이 되었다.
남자만 5형제의 막내로 태어나 맨날 싸우고 징징 울기만 했는데, 갑자기 남녀 공학반의 급장
이 되니, 어떻게 여자 애들을 리드해야 할지 가슴이 설레었다.
중학교 3년 과정은 큰 어려움이 없이 잘 넘겼다.
남녀 공학이라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크게 다투거나 사이가 나빠 고생한 기억은 없다.
대신 1반에서는 툭하면 싸우고, 사고를 치는 바람에 선생님들이 골치를 싸맸다.
다 커서 직장을 갖고 사회생활을 하던 50대에, 초등학교 동창회에 갔다.
옛날 친구들이 그립고, 선생님이 보고 싶어서 단 걸음에 뛰어간 망성 초등학교.
교정을 한 바퀴 돌아보면서 옛날 생각에 잠겨본다.
넓고 커다란 운동장이었는데 이제는 좁고 작은, 놀이터 같다. 이쪽 골 대에서 저쪽 골 대까지가 그렇게도 멀었는데, 몇 번이나 넘어지고 자빠지면서 달려가 골 킥을 했는데, 어쩌면 이렇게 초라해졌단 말인가?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덩치를 자랑했고, 교장 선생님이 훈시하던 교단이 하늘같이 높았는데 지금 와서 보니 장난감 같구나.
희망이 있고 미래가 창창했던 지난날에는, 이 장소가 궁궐만 같았고, 선생님이 그렇게 훌륭했는데, 시간이 무엇이길래 이렇게 바꿔놓는단 말인가?
이윽고 도착한 담임선생님은 머리가 허옇다. 얼마 전에 교장으로 정년 퇴임하고 아들 며느리 손자들과 행복한 나날을 보내신단다.
동내에 같이 살던 각용이도, 도시락 까먹은 차 식규도 선생님처럼, 같이 늙어가고 있다.
차 식규 옆에, 내가 가서, 옛날 도시락 예기를 살짝 꺼내니 펄쩍 뛴다.
기억이 없다고.....
서울에서 가소린 스탠드를 경영하고 있다면서 자기 차를 몰고 왔다는데, 귀티는 나지 않고 검버섯과 주름이 얼굴에 가득하다.
어쩐지 많이 초라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