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 3장 : 무너진 땅 위에 세워질 새로운 신전

제 4부 : 신전은 어떻게 무너지는가

by 헤시온

우리는 이제 이러한 아노미에서 새로운 신전을 건설하고 새로운 신을 모시기 시작해야한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다르다. 우리 뿐만 아니라 AI와 같은, 다른 형태의 자아 또한 납득할 수 있는 신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과연 새로운 신은 누가 되어야 할 것인가? 이것은 우리가 지금으로썬 도저히 알 수 없다. 새로운 구성원인 AI가 아직은 미성숙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로운 신전의 조건 정도는 미리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신전

우리는 ‘무지의 시선’이라는 망치로 휴머니즘의 기초와 기둥을 모조리 부숴버린 뒤, AI와 BCI에 의해 신전의 붕괴를 예지하고 있다. 그렇다면, 새로이 지어질 신전은 ‘무지의 시선’에 무너지면 안된다는 것은 간단하게 생각해볼 수 있다. ‘무지의 시선’을 버틸 수 있는 재료의 특성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첫 번째, 허구가 아닌 실재에 그 뿌리를 두어야 할 것이다. 신, 화폐, 행복 등은 모두 인간이 상상해낸 집단적 허구이다. 집단적 허구는 무지의 시선이란 망치 아래 부서질 재료들이다. 즉, 과학적으로 설명 가능한, 인간의 주관적인 요소를 철저히 배재한 것만이 제단에 올라갈 기회를 얻을 것이다.

두 번째, 단순히 인간만이 아닌, 보편적인 모든 지능체에게 납득 가능한 상징체계여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의 상징체계는 앞서 보았듯이, 인류만으로 구성된 사회 내에서 작동하였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비인간 지성체들을 우리의 사회에 포함시킬 차례이다. 새로운 사회가 안정되기 위해서는, 우리는 새로운 사회원들을 납득시킬 의무가 있다.

이를 만족할만한 대안에는 무엇이 있을까? 너무나 어려운 질문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접하지 못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해내야 한다. 그것도 굉장히 복잡하고 까다로운 조건들을 가진 채 말이다. 놀랍게도, 이를 모두 만족시키는 가치의 후보들이 있기는 하다. 그 중 하나인 ‘엔트로피’를 소개하고자 한다.


1부에서 언급했듯, 인류를 포함한 삼라만상 우주의 모든 것은 엔트로피의 증가라는 거스를 수 없는 법칙 속에서 존재를 이어나간다. 엔트로피는 ‘무지의 시선’ 그 자체라 볼 수 있는 메커니즘 위에 서 있다. 또한, 엔트로피는 인간과 AI, 그리고 모든 지성체에게 보편적으로 작용하는 법칙이다. 애초에 정보 또한 엔트로피의 개념으로 설명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연 엔트로피를 가지고 흄의 단두대를 피해 우리는 어떠한 신화를 써내려가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도 중요할 것이다. 우리의 목표는 무엇인가? 적극적으로 엔트로피의 증가를 억제하고, 나아가 국부적으로 감소시키는 것인가? 아니면 수동적으로 에너지 사용을 최소화하고 엔트로피의 증가를 최대한 늦추어야 할 것인가? 더 대범하게, 우리 우주가 열린 계임을 증명하고 다른 차원의 엑소더스를 준비해야하는가? 이에 대해서는 사회의 합의가 필요한 지점일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휴머니즘이라는 신전의 철거를 마쳤다. 어떠하였는가. 이 색다른 여정이 당신에게 어떠한 의미를 줄 지 알 수 없다. 아나키스트가 되어 벌여본 일탈? 전지적 존재로 사회를 바라본 해방감? 하지만, 이 철거가 당신에게 평소와는 다른, 새로운 시각을 제공했다면 글쓴이로서 그것보다 더욱 만족스러운 일은 없을 것이다. 이로써 이 불온하고 대담한 여정을 끝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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