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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이 반복되는 순간 속에서의 고독, 중경삼림

by 라내하
chung_hing_sam_lam_chungking_express-693799727-large.jpg 출처 Filmaffinity

“우리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스쳐지나갈까. 그리고 그중 몇 명을 기억하게 될까.”


중경삼림은 이러한 질문을 던지며 시작된다. 왕가위 감독이 그려낸 홍콩의 복잡한 거리, 그 안에서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과 마주치지만, 그들이 우리 삶에 남기는 흔적은 참으로 미미하다. 고독은 어쩌면 필연적인 감정일지도 모른다. 그 속에서 우리는 의미를 찾고자 애쓴다.


왕가위 감독의 영화 중경삼림은 도시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독과 우연한 만남, 그리고 그 사이의 감정을 감각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영화는 두 개의 이야기를 평행적으로 그리며, 홍콩의 분주한 거리를 배경으로 등장인물들이 자신만의 외로움과 희망을 찾아가는 여정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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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이야기는 경찰 223호(타케시 카네시로)가 사랑에 빠진 여자에게 받은 상처를 극복하려 애쓰는 과정에서 시작된다. 그는 매일밤 같은 편의점에서 파인애플 통조림을 사먹으며, 떠난 연인과의 유대감을 놓지 않으려 한다. 그러던 중 미스터리한 금발의 여인(임청하)과 우연히 얽히게 되고, 그녀와의 짧은 만남을 통해 상처를 치유해 나간다. 이 부분에서 도시 속 고독한 인간관계와 순간적인 감정의 연결이 극적으로 그려진다.


두 번째 이야기는 또 다른 경찰 663호(양조위)와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하는 소녀 페이(왕페이)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663호 역시 연인에게 이별을 통보받은 후 그의 감정을 숨기며 살아가지만, 페이가 그의 집에 들어와 비밀스럽게 그의 삶을 바꾸려 시도하면서 둘 사이에 감정이 싹튼다. 이 이야기는 도시의 차가운 일상 속에서 피어나는 따뜻한 감정과 변화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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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경삼림은 그 화려한 시각적 스타일과 감각적인 연출로도 유명하다. 왕가위 감독은 느린 슬로 모션과 독특한 카메라 앵글, 그리고 강렬한 색채를 사용해 등장인물의 감정을 표현한다. 특히 영화 전반에 흐르는 음악, 특히 The Mamas & the Papas의 "California Dreamin'"은 페이의 자유로운 영혼을 상징하며 영화의 리듬을 더한다.


중경삼림은 단순한 러브 스토리를 넘어, 현대 도시 생활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감정을 억누르고 순간의 만남 속에서 위로를 찾는지를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이 영화는 마치 꿈결 같은 순간 속에서 피어나는 인간의 감정을 포착해 내며, 관객들에게 새로운 시각적, 감정적 경험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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