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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현의 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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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혜 Jul 14. 2024

괘종

240503-0504

봄밤은 어둠도 느리게 내린다.


남쪽 볕 달게 받던 나무는 찬기 가시기도 전에 망울을 맺었다. 산책 마친 옥의 발걸음은 회귀할수록 눅진하다. 떠올릴 때마다 한숨이 샌다. 거실에 눌어붙은 흉물. 이십 년 전 유행하던 옻빛 괘종이다.


좁달막한 집구석이었다. 구하려 안달했다. 과외를 늘였다. 떡하니 자리했다. 여백이 사라졌다. 소파에 앉으니 마땅히 눈 둘 곳 없었다. 들인 당시는 금이야 옥이야 아껴 주었건만. 추가 운다. 공명이 버겁다. 침대에 눕는다. 머리끝까지 이불을 덮어쓴다. 타종으로부터 도망친다. 괘종을 사랑하던 한때. 재기 발랄한 시절이 아득하다.


자질구레한 수식 따위 차치하던 날이었다. 계산기 두드리지 않던 청춘. 안목은 옥의 자부였다. 세월은 옥의 탓이 아니었다. 중년은 옥의 몫이 되었다.


불현듯 찾아와 서서히 젖어들던 봄비는 언제 그랬냐는 듯 스콜로 변모해 흠씬 쏟아지고 그치기를 반복한다. 목련이 만개한들 하늘은 하늘색이 아니다. 답답함이 날로 불어난다. 무작정 떠나고픈 심정. 연분홍 로고 조그맣게 박힌 운동화를 할인에 할인 얹어 장만했지만. 새신 신고 닿을 곳이란 슈퍼마켓 아니면 현관뿐이다.


옥은 미적거리며 신발을 벗는다. 텁텁한 소리가 들린다. 시계가 육중한 몸뚱이를 돌린다.


다녀왔어,

여보.


231028
1. 자유롭고 재기 발랄한
2. 아득해진 내 청춘
3. 어딘가에 얽매이고 싶지 않은 중년
231029
1. 자질구레한 수식
2. ‘진짜’를 가려내는 안목
3. 청춘, 사랑은 불현듯 찾아오고 서서히 젖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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