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승혜 Dec 07. 2023

Day 9 (2/2) 11월의 크리스마스- 밤

오스트리아 국립 오페라극장과 밤의 크리스마스 마켓, 감기 몸살

장보고 돌아와 '선생님 댁' 호텔에 체크인을 했다.

이 호텔 건물은 좀 오래된 탓에 엘리베이터가 희한한데, 마치 벽장 속에서 엘리베이터를 꺼내듯이 들어가야 된다. 설명이 좀 우습지만 아래 영상을 보시면 이해가 되실 터. 엘리베이터를 탈 때마다 동화 속에 나오듯이 벽장 문을 열면 다른 세계가 펼쳐지는 상상을 하곤 했다.



싱글룸은 약간 작지만 그래도 필요한 건 다 있어서 아늑하다. 특히 샤워부스와 세면대가 방에 같이 있어서 오히려 편했다. 여기를 화장실 문으로 따로 막았다면 답답했을 것 같다. 싱글룸에서만 가능한 구조인 듯. 화장실은 복도에 있는 공용인데 깨끗하고 내 방 바로 앞이라 불편할 게 없었다. 침대 머리맡에 마음대로 구부릴 수 있는 독서등도 있고, 침대에서도 불을 껐다 켤 수 있는 스위치도 따로 붙어 있는데다가  책상과 의자에 수납 공간이 많은 것도 마음에 들었다.

약간 우주선 캡슐같은 샤워부스와 세면대/ 공간 활용을 잘 한 데스크


짐정리를 다 했으니 저녁을 먹어 볼까. 이번 여행 짐에 라면 3개와 볶음김치 10팩, 햇반 6개를 챙겨왔다. 라면은 한인마트에서 쉽게 살 수 있는데 김치와 햇반은 잘 없다고 들어서다. 지금까지 계속 공용 주방이 없어서 못 해먹다가 오늘 드디어 라면 개봉. 봉지 라면이라 뜨거운 물 부어서 뽀글이 형태로 해먹었는데... 와아 이게 이렇게 맛있는 거였다니! 내 평생 처음으로 해먹는 뽀글이 라면인데 너무 맛있어서 눈물이 핑 돌 뻔했다. 밖에서 추위에 떨다가 따뜻한 숙소에 들어와 먹는 라면 국물과 김치... 더 이상 형용할 말이 필요없다. 여긴 포크랑 스푼밖에 없어서 챙겨온 조립식 젓가락(다이소 표)을 썼더니 딱 좋다. 면발 한 가닥 한 가닥 소중하게 아껴 씹고 마지막 국물 한 방울까지 싹 긁어 먹었다.    

여행 오기 전 오스트리아에서 공연을 꼭 보려고 오페라 공연과 뮤지컬을 예매해뒀었다. 사실 내가 보고 싶었던 공연은 내일 열리는 <피가로의 결혼> 이었는데, 전석 매진이어서 오늘 밤 공연인 작곡가 리게티의 작품 <Le Grand Maccabre (대멸망 이라는 뜻--;)>을 보게 되었다. 국립 오페라 극장이 워낙 유명해서 그 공간을 보고 싶은 마음에 예매한 것도 있었고, 일단 가격이 합리적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오페라 한 편 볼 가격의 3분의 1도 안 되는 것 같다. 물론 자리마다 가격 차가 있지만. 단단히 껴입고 트램에 몸을 실어 국립 오페라 극장 앞에 도착. 국립 오페라극장이라는 이름처럼 웅장하고 화려하다. 안내해주는 직원 분들도 멋진 정장을 입으시고 특급 호텔 온 것처럼 정중하셨다.


이번에 예약한 좌석은 발코니석의 세번째 줄 좌석. 발코니석 마다 이렇게 문들이 있고, 옷 거는 곳과 거울도 있었다. 내 자리를 못 찾고 우왕좌왕하고 있으니 연미복을 입으신 신사 아저씨가 내 자리도 가르쳐주고 내 모니터도 가르쳐주셨다. 저게 니 모니터라고 해서 처음엔 농담하는 건가 싶었는데 개인 하나씩 가사를 수 있는 LCD 소형 모니터가 있었다! 하긴 독일어로 보고 싶은 사람도 있고 영어로 보고 싶은 사람도 있을테니까.

옷 걸쳐 놓은 의자가 내 자리. 앞의 의자보다 좀더 높다.
앞 자리는 비싸고, 잘 보인다.
각도도 조절할 수 있고 어떤 언어로 가사를 볼 것인지 선택할 수 있다. / 보석 같은 샹들리에들
입석 자리는 보기만 해도 다리가 아프다 (대신 매우 저렴)
내 자리에서 보이던 시야


오페라가 시작되고 관람하는 데 미리 줄거리를 알고 왔음에도 내용이 너무 난해해서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대중적인 극이 아니라 약간 아방가르드 하다고 했지만, 집중이 안 되고 자꾸 졸음만 몰려왔다. 그와 동시에 몸살 기운이 휘몰아쳤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아, 난 지금 억지로 스케쥴을 소화하기 보다 충분한 휴식이 필요하구나. 게다가 내가 앉은 의자는 셋째 줄이라 일부러 높게 만들어서 이렇게 계속 졸다간 굴러 떨어질 참사가 일어날 수도. 결국 나는 중간 휴식 시간에 짐을 챙겨 나왔다. 그래도 아쉬우니까 나가기 전에 오페라 극장을 골고루 한 바퀴 돌아봤다. 천장부터 벽까지 화려한 장식들로 가득한 홀들이 여러 개가 있어서 관객들이 간식과 술을 즐길 수 있는 사교 공간이 되었다. 너무 아름다웠지만 컨디션이 좋지 않아 즐길 수가 없어서 아쉬웠다.  

궁정 무도회장 같은 극장 내부와 아픈 애
모차르트와 베토벤
샹들리에 너무 예뻐


오페라극장 안녕...

나와서 바깥 공기를 쐬었더니 약간 정신이 들었다. 숙소로 돌아가는 트램을 타고 크리스마스 마켓의 밤 풍경만 살짝 보고 들어가기로 했다. (크리스마스 마켓이 숙소에서 도보 10분 거리)

우와...그런데 내가 낮에 봤던 크리스마스마켓은 그냥 애피타이저 같은 거였다. 밤의 크리스마스 마켓이 메인 요리였다. 사람들도 엄청 많아서 원하는 곳으로 움직이기가 어려울 정도.

하트를 전파하는 빅하트
사랑이 열리는 나무
온 동네 축제 분위기
예수님 저 감기 몸살 났어요..감기 뚝 떨어지게 해주세요
오븐에 구운 사과에 캐러맬 소스를 끼얹어서 판다.
스케이트장 개장~


너무나 아름다운데...슬슬 내일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왜냐면, 다양한 비상약을 챙겨왔는데 감기약은 하나도 안 챙겼기 때문이다. ;; 평소에 감기가 잘 안 걸려서 일부러 감기약 사는게 좀 귀찮다보니 배 아프거나 소화가 안될 때 먹는 약만 많이 챙겨왔다. 그러다 문득 데운 와인에 감기약 효능이 있다는 게 기억이 났다. 크리스마스마켓에는 따뜻하게 데운 와인을 팔잖아! (프랑스에서는 뱅쇼, 독일권에서는 글루바인, 미국은 뮬드와인이라 부른다고한다)그래서 해시포테이토랑 와인을 사서 약처럼 꿀떡 삼켰다. 알콜이 약간은 남아 있는지 몸은 따뜻해지는데 또 졸음이 몰려온다.


군밤도 팔지요
두꺼운 해시포테이토에 꿀인지 뭔지 모를 소스를 발라 준다.
오늘의 건강보조식품들


가물가물해지는 정신줄을 부여잡고 숙소로 돌아와서 거의 기절했다. 내일은 일요일이니까 교회 가기 전까지 따뜻한 방에서 실컷 자고 나면 괜찮아질거야.

작가의 이전글 Day 9 (1/2) 11월의 크리스마스-낮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