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밟는 일을 걱정하다

by 김향남


나는 걸음을 재촉했다. 비는 개어 있고 공기는 상쾌했다. 꽃들은 안녕하시겠지? 공원에는 벚나무가 많았다. 나무는 삽시간에 피어난 꽃들로 구름처럼 부풀어 있었다. 어디서 날아왔는지 벌들도 잉잉거렸다. 봄기운 창만한 그 아래를 나는 다시금 서성거려보고 싶었다.


공원길엔 벌써 꽃잎이 깔렸다. 어찌 하필 바람은 그사이를 불고 갔을까. 이틀이나 연속 비 오고 바람 불더니만 그 흔적이 눈앞에 역력했다. 꽃잎은 낱낱이 혹은 겹겹이 혹은 수북이 쌓여서 카펫을 깔아놓은 듯 화사했다. 이른 아침 이어선지 사람들은 뜸하고 꽃들은 아직 반나마 나무에 있었지만, 그마저도 화르르 나부끼는 중이었다.


나는 순간 기우뚱 흔들렸다. 너무 이른 낙화가 황망하기도 했지만, 그보다 발 디딜 틈을 찾지 못해서였다.

나는 들어 올린 한 발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랐다. 아무리 봐도 마땅한 곳이 없었다. 여기도 꽃잎 저기도 꽃잎, 꽃잎 천지였다. 희고 둥근 꽃잎들이, 여리고 부드러운 잎들이 또록또록 분명했다. 웬일인지 내 하얀 운동화는 시커먼 군홧발처럼 우악스러워 보였다. 뭔가를 제기기 직전의 섬뜩한 형상. 나는 지레 놀라 비틀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꽃들도 움찔 몸을 떨었다.


다행히 서너 발 떨어진 곳에 벤치가 있었다. 겨우 발을 뗀 나는 거기에라도 걸터앉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곳에도 작고 여린 꽃잎들이 점점이 떨어져 있었다. 이번에는 내 엉덩이가 문제였다. 내 엉덩이로 말하면, 그야말로 나와는 한몸이어서 평소에는 아무 의식도 없이 지내고 있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어디에 둬야 할지를 모르겠는 애먼 것이 되고 말았다. 내 엉덩이 역시도 엉거주춤 자리를 잃었다.


어느새 사람들이 더 오고 발걸음도 잦아졌다. 그러나 누구도 꽃 밟는 일을 걱정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성큼성큼 내딛는 소리가 가볍고 경쾌했다. 안절부절못하는 것은 나뿐인 듯했다. 더러 데리고 나온 강아지들이 킁킁 꽃냄새를 맡거나 영역표시를 했다. 새들은 더욱 야단스레 나뭇가지를 오가고 하늘은 점점 밝아지고 있었다. 바람은 삽상하고 하롱하롱 꽃잎은 날고, 나는 벤치를 옆에 두고도 앉지를 못하였다. 아직 물기가 남아 있기도 했지만 차마 깔고 앉을 수가 없었다.


불과 이틀 전만 해도 이런 일은 생각지도 않았다. 공원길은 터져 나온 꽃송이로 하늘을 덮었고 나는 거의 홀려 있었다. 내 얼굴은 웃는 듯 우는 듯 사뭇 달떠 있었고 마음은 헤벌어져 있었다. 공원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 역시 꽃구경을 나왔을 것이다. 꽃이 피는 것과 인간의 흥취 혹은 유흥 사이에 무엇이 있는지는 몰라도 어떤 격정의 순간임은 확실해 보였다. 나는 그 수상한 열기에 휩싸여 열심히 셔터를 눌렀다. 멀리도 찍고 가까이도 찍고, 화면을 온통 꽃으로 채워보기도 하고, 하늘을 여백 삼아 몇 가지만 담아보기도 했다. 꽃가지에 앉은 까치 한 마리와 눈이 마주치기도 했다. 새는 이 가지에서 저 가지로, 땅으로 하늘로 부산스레 왕래하는 중이었다. 오오, 꽃이여! 새여! 부풀어 오른 나무 둥치 밑에서 나는 실없이 헤실거렸다.


나는 벤치 옆에 우두커니 있었다. 세상에 꽃 밟는 일을 다 걱정하고 있다니, 누가 봐도 우스운 일이었다. 하지만 알고 보면 나만 그런 것도 아니었다. 일찍이 소월이라는 시인도 그런 걱정을 했더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라고 했지만, ‘사뿐히 즈려밟기’가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그 말은 외려 밟지 말라는 청원이었고 가지 말라는 애원이었다. 님이 진정 나(진달래꽃)를 사랑하신다면 어찌 사뿐히라도 밟을 수 있겠습니까. 꽃잎이여, 꽃잎처럼 서러운 이여. 오오, 가지 마시라.


나는 내 발을 내려다보았다. 발가락을 움직거려도 보았다. 발가락은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엉덩이도 쑤욱 밀어 올려 보았다. 최대한 무게를 줄여야 해. 나는 힘껏 날아볼 참이었다. 꽃길만 걸으세요? 오, 노! 꽃길 같은 건 사양하겠어요. 그건 정말이지 위험천만한 일이죠. 그 비명을 듣느니 차라리 나는 법을 배우겠어요. 나비처럼 벌처럼 훨훨 날아서 사뿐히 그대에게로 가겠어요. 꽃나무 가지마다 간 데 족족 앉았다가 향 묻은 날개로 그대에게 가겠어요.


살랑 바람이 일고 어깨 위로 가만히 꽃잎이 내렸다. 참새떼가 한 무리 푸르렁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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