쉘위토크
내 딸아이처럼 고1 입학을 앞두고 있었던 어느 추운 겨울날 아침, 나는 투박한 더플코트를 입고 털이 수북한 앙고라장갑을 끼운 채로 만원 버스를 올라탔다. 방학인데 아침부터 어딜 갔느냐고? 당시에는 인근 지역마다 종합/단과 학원들이 있었다. 중학교를 갓 졸업한 17세의 나에게 고등학교 입학을 앞둔 겨울방학은 그리 맘 편한 시간일 수만은 없었다.
매일 아침 8시 학원으로 향하는 버스 안은 학생들뿐만 아니라 많은 시민들로 가득 찼는데, 마치 콩나물시루의 콩나물처럼 빼곡하게 서서 버스 손잡이를 붙들고 흔들리는 버스에 몸을 맡길 수밖에 없었다. 버스 내부의 난방 열기와 승객들의 열기로 창문에는 김이 잔뜩 서려 맑은 아침인데도 창밖의 풍경이 내다 보이지 않기 일쑤였다. 운전기사 아저씨들은 내부 난방을 더 세게 틀거나, 걸레를 운전석 옆에 두고 창문 귀퉁이와 사이드 미러를 닦아가며 운전하기도 하셨다. 어떤 기사님들은 아예 버스 천정의 창문을 열고 달리기도 했다. 바깥의 찬 공기가 천정으로 들어와 승객들의 땀도 식혀주고 외부와의 온도 차를 줄여 주기도 했다. 요즘은 전후방 창문 하부에 성에 방지용 히팅시스템이나 열선등을 처리하는 등 시스템적인 기술 개선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 같다.
요즘 나는 이런 만원 버스를 탈 일이 별로 없다. 시간을 정해 출근하는 일이 없어졌으니 말이다.
그런데, 가끔 내 마음의 창문에 김이 서리는 것 같을 때가 종종 있다.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하면 좋을지 고민해 보곤 한다. 30여 년 전 운전기사님들처럼 손걸레를 쥐고 성에 찬 창문 귀퉁이를 쓱쓱 닦아줄까? 만약에 내 마음속에 온도가 너무 높아 견디기 힘들다면 아예 천정으로 창문을 내서 활짝 열고 환기를 시킬까? 아니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내 마음의 창에 시스템적인 혁신이 필요한 걸까?
내 마음의 상태가 어느 정도 이냐에 따라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적절히 선택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다. 그냥 어쩌다가 마주한 사람과 일시적으로 김 이 서린 거라면 그저 손걸레로 쓱쓱 닦아내 버리면 그만일 거다. 다소 귀찮을 수는 있다. 자꾸 손이 갈 테니까. 그래도 일시적으로 가장 빠르게 해결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자꾸 보게 되는 친구이거나 동료이거나 심지어 가족이라면 귀찮은 손걸레질로는 감당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귀찮은 손걸레질이 잦아지면, 어느 시점에서 폭발해 버릴 수도 있으니까. 이토록 관계의 특성상 소통이 자주 있는 사이라면, 아예 천정에 창문을 하나 내어 문을 열고 환기를 시켜 주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 외부의 찬공기를 좀 받아들여 내부의 더운 공기를 식혀 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찬 공기가 더운 공기 쪽으로 이동하고 더운 공기를 식히는 것이 소통이다. 그렇다. 진솔한 대화를 통해 창문 안과 바깥의 공기를 소통시켜주어야 한다. 그래야 나라는 버스는 더 이상 들끓이지 않고 열이 식을 것이다. 김이 서려 앞이 안 보이던 창문도 깨끗하고 맑아질 것이다.
"네가 너무 차가워서 내가 과하게 보온을 했더니, 나 너무 더워졌고 네가 보이지도 않았어."
"내 차가운 손 좀 꼭 잡아줘. 그럼 너도 시원해질 거고 내 차가운 몸도 녹을 거야."
서로 진솔하게 대화를 해야 한다. 그래야, 내 마음의 더운 공기를 내 보낼 수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내부에 결로나 곰팡이가 생겨 점점 내 마음은 썩어갈지도 모른다...
혹여, 그 외부가 또 다른 나 자아라면... '마음근력훈련' 같은 체질 개선을 통해 감주환 교수님이 언급하신 "내면소통"을 시도해야 할 것이다. 나의 기억 속의 이야기를 변화시키는 시스템적인 혁신을 한다면 이런 고민도 하지 않을 테니까. (독서 클럽에서 한 달간 책 좀 읽은 티가 난다. ㅎㅎㅎ)
그러니, 내가 너무 뜨겁거나 차가워져서 마음의 창문에 김 이 서리고 있다면... 창문 굳게 닫고 있기보다는 활짝 열어 환기도 시키고 진심 어린 대화를 통해 온도 조절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Shall we talk?
장기적으로는 나 스스로와의 소통을 통해 나의 온도를 변화시켜 보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을 듯하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