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st IR, 인터뷰
가로등님은 비교적 짧은 시간 동안 공시/IR 업무를 담당하면서 경험할 수 있는 다양한 일들을 겪은 경력자였다. 대리임에도 불구하고 몇 개 기업에서 IPO부터 이전상장, 경영권분쟁, 상장폐지 위기에 이르기까지 기업활동의 우여곡절을 경험했다. 신동님이 경험한 시간 동안 쌓인 담대함을 인터뷰를 통해 함께 훑어보며 모두가 함께 단단해지는 시간이 되길 바라본다.
Interview Point
1. 재무/회계 업무를 하다가 공시업무를 담당하게 될 때의 마음가짐
2. IR/공시 업무를 담당할 때 가장 컨트롤하기 힘든 점
3. 업무의 전문성에 관하여
Q. 처음 다니셨던 회사에서 재무/회계를 하시다가 공시/IR을 하게 되셨어요. 버겁지 않으셨어요?
많이 힘들었죠. 하하. 하지만 정신적으로 힘든 건 논외로 하고, 일의 성격에만 생각했을 때 마주하는 버거움은 어느 정도 감당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재무든 공시든 기준점이 다 있잖아요. 공시는 증발공, 상법, 공시규정 등 정해진 법과 규정을 따라가면 되고, 재무도 IFRS 규정만 잘 따라가면 되죠. 다만, 법은 해석하기에 따라 다르게 이해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보니 정확한 정보를 찾고 제대로 이해하고 내가 이해한 것이 맞는지 근거를 잘 찾아내야 해요. 어찌 되었든 그렇게 명확한 기준이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조금 덜 힘들 수 있죠.
Q. 기준만 잘 맞추면 된다고 생각해도 정신적으로 진짜 힘들 때가 많기도 하잖아요.
맞아요. 특히,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일이 발생했을 때 정말 힘들죠. 일례로 최대주주 대표이사 지분이 담보가 걸려 있었는데, 이게 이면 계약이었어요. 바로 알았으면 뭐라도 해봤을 텐데, 반년이나 지나서 알게 된 거죠. 그 사실을 알게 된 시점에 공시를 하자니 말도 안 되는 상황인 거고 이제 컨트롤할 수 없는 게 된 거잖아요.
*) 최대주주의 주식 담보대출 상황 발생 시 (최대주주 변동을 수반하지 않을 경우
- 계약체결에 따른 [주식 등의 대량보유상황보고서] 공시
+) 최대주주의 특관자가 주식담보 대출 시에도 연명보고
Cf) [임원. 주요 주주…]는 단순계약체결 시에는 주식수가 변동되지 않으므로 공시의무 없음
실무자급이거나 팀장급만 돼도 어떤 문제가 생길 수 있는 내용에 대해 놓치지 않을 수 있게 미리 설명하거나 설득할 수 있는데, 최대주주는 그게 안되더라고요. 이건 야근을 하거나 내가 뭘 더 많이 안다고 해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잖아요. 공시업무를 하다 보면 최대주주의 지분이나 돈 관련 문제가 직접적으로 얽혀 있다 보니 가장 힘든 건 아무래도 오너리스크, 경영진 관련 이슈인 것 같아요.
Q. 그런 면에서 공시업무가 엄청난 책임감을 느끼게 되는 순간들이 있죠?
책임감이 있으면 좋죠. 저 역시도 제 일에 책임감을 느끼면서 일하고 있지만 그게 너무 깊어지면 그 책임에 매몰돼서 오래 못 버티더라고요. 시장에 직접 공표되는 내용들을 다루고 있고 숫자와 연관된 직접적인 법과 규정을 다루기 때문에, 뭔가 놓치면 다 내 탓인 것 같고 내가 부족해서 이런 일이 생긴 것 같고 하지만, 어느 정도는 그 책임감의 무게로부터 벗어나, 넘길 수 있는 건 넘기는 태도도 필요한 것 같아요. 나 혼자서 감당하겠다는 책임감으로부터 벗어나 윗사람에게도 그 권한을 나눠주고 의지할 수 있어야 하죠.
특히 내가 윗사람의 입장이라면 규정이나 회사에 대해 제대로 알고 책임질 수 있을 정도로 뭔가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 욕심이긴 하지만 저는 제 업무 범위 내에서 받는 질문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 없이 답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거든요. 막말로 아쉬운 소리는 안 듣고 싶어요. 이런 생각이 권력욕일 수도 명예욕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내 분야에 대해서는 제대로 잘 아는 사람이고 싶어요. 덧붙여 사람 소중한 줄 아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고요.
Q. 사람 소중한 줄 알면서 일해야 하는 건 너무 당연한 건데, 그 당연한 걸 지키지 않는 조직들이 꽤 있어요.
맞아요. 생각해 보면 이 경험도 제가 통제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난 일이어서 더 힘들었던 것 같은데, 제가 예전에 감사인에게 심한 대우를 당한 적이 있어요.
감사인 쪽에서 어떤 자료를 요구했는데, 그게 저 혼자 해줄 수 있는 자료가 아니었어요. 여러 명에게 저 나름 요청하고 애쓰며 9시 넘어 야근하는 중이었는데, 자료를 너무 늦게 준다고 화가 나셨던 거죠. 그분도 답답하셔서 그랬을 테고, 나중에는 실수였다고 사과하시긴 했지만 묵묵히 지켜오던 제 안의 무언가가 무너지는 기분이었어요. 내가 이런 대우를 당하고 있다는 걸 회사가 알아주고 위로해 주는 것도 아니고 돈을 더 주는 것도 아니고, 한낮 대리가 굳이 선두에 서서 이걸 어떻게든 막아보고자 필살의 힘을 다하는 와중에 이런 일이 생기니 굉장히 괴로웠던 기억이 있어요.
저도 그랬지만 특히 공시나 재무회계 담당자들은 어떤 리스크가 생기면 잠도 못 자고 스트레스받기도 하잖아요. 그 결과가 벌점이든 사유서든 내가 담당자로서 귀책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니까요. 그런데 엄밀히 따지면 그 귀책이 나한테 있는 건 아니에요. 누군가 잘못해서 어떤 문제를 만든 건데 이걸 해결하고자 하는 사람이 나일뿐인 거죠.
더러운 걸 치울 수 있으면 좋지만 그 더러운 걸 만든 주체는 내가 아니라는 생각, 그 더러움을 치우려고 내가 지나치게 스트레스를 받지는 말자 정도로 생각해 두면 좋아요.
Q. 가로등님이 일의 성격을 구분 짓고 통제할 수 없는 일에 대한 책임감으로부터 거리를 둘 수 있는 자세는 어쩌면 필요 이상으로 깊게 몰입해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혹시 잊을 수 없는 가장 좋았던 경험도 있을까요?
가장 뜻깊고 기억에 남는 경험은 역시 상장할 때죠. 야근에 주말 출근에, 엄청 고생하고 상장식을 딱 하는데, ‘아 이제 다 끝났다. 그리고 우리가 해냈다’라는 생각에 정말 진심으로 기뻤어요. 그날의 기분과 감정이 아직도 잊히지가 않는데, 아침에 버스 대절해서 거래소로 가는 길에 비가 내렸거든요. 평소 같았으면 썩 유쾌한 기분이 아니었을 것 같은데 ‘와 하늘이 우리의 상장을 축복해 주는구나’라고 생각했었어요. 그리고 상장하고 나면 어디서 우리 회사명을 검색해도 회사가 나오잖아요. 그러면 막 뿌듯해지고 그래요. 제가 했던 상장이 기술특례 상장이어서 공정에 대한 공부도 많이 하고 회사 상장준비 과정에서 회사에 대한 이해도도 높아지다 보니 애사심도 더 커졌던 것 같아요.
*) 기술특례상장 제도
혁신기업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수익성이 높지는 않지만 [보유기술의 혁신성], [기업의 성장성] 두 가지 중 하나의 요건을 인정받으면 최소한의 재무조건(자기 자본 10억 원 이상 또는 시가총액 90억 원 이상)만으로 상장예비심사 신청을 허용하는 제도
1. 혁신기술트랙 : 전문평가기관이 기술력 평가
2. 사업모델 트랙 : 증권사가 사업성. 성장성 평가
+) 최근 3년 이내 상장한 기술특례 상장 기업이 조기 부실화(상장일부터 2년 이내 투자주의 환기종목 또는 관리종목으로 지정되거나 형식적 상장폐지 사유 또는 상장 적격성 실질심사에 따른 상장폐지 사유가 발생) 될 경우, 주관회사가 일반청약자에게 상장일부터 6개월까지 행상가능한 환매청구권(풋백옵션)을 부여하여야 함.
Q. 마지막으로 이 업무를 이제 막 맡게 되는 가로등님의 옛날과도 같은 위치에 있는 후배들에게 도움이 되는 말씀 해주시겠어요?
저는 이 공시업무가 어느 정도 알고 나면 생각했던 것보다 어렵지 않으면서 생각이상으로 도움이 많이 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이 공시 경력과 관련 지식기반의 문제해결 능력을 갖고 있으면 어디로든 경력개발을 할 수 있거든요. 상장사라면 무조건 필요한 일이니까요. 이 일을 맡게 된다는 건 어찌 보면 좋은 기회를 잡은 거라고 할 수 있어요. 처음 시작하면 법도 규정도 낯설게 느껴지고 말도 어렵게 되어있어서 버겁겠지만 1년만, 딱 한 사이클만 버텨보면 간단해지고 쉬워질 수 있어요. 그렇게 경력이 쌓이면 어디에 내어놓아도 괜찮은 자산과 무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재무도 그렇거든요. 한 사이클만 돌아보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틀이 생겨요. 재무도 어느 회사나 다 필요하니까 도움이 되죠. 재무를 알게 되면 경영기획은 물론 하다못해 연구소여도 재무적 지식이 있으면 도움이 돼요. 공시업무 할 때도 재무지식이 많으면 용어에 대한 이해나 적용이 좀 더 쉽죠. 기본적인 회계지식을 쌓아 두면 정말 도움이 된다. 이게 또 얘기하다 보니 말짱 도루묵으로 ‘회계가 중요하다!’가 된 것 같긴 한데, 이 업무가 전문성을 가질 수 있는 좋은 직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