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st IR, 인터뷰
앨리님은 소액주주연대가 두터워 관련 분쟁이 잦은 바이오 회사의 담당자였다. 최근 공시된 목록과 몇 개의 기사만으로도 앨리님이 담당자로서 느낄 압박감과 초조함에 필자의 기분마저 아찔해졌다. 인터뷰 당일에도 제출해야 하는 공시를 내부통제 프로세스를 지켜내며 마감시한을 가까스로 맞춰 냈고, 다음날에도 공시와 관련한 이슈로 작성해야 할 문서가 있다고 했다. ‘일단 내일 고민하기로 하고요’ 라며 인터뷰를 이어가는 앨리님의 냉정한 듯 단호한 표정에서 묘한 열정이 느껴졌다. 인터뷰를 통해 그 냉정과 열정 사이의 적절한 온도는, 온전히 몰입하며 어떤 일을 꾸준히 해내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인터뷰를 읽는 IRer들도 그 미지근하지만 편안한 온도를 함께 느낄 수 있는 인터뷰였으면 좋겠다.
Interview Point
1. 이슈가 많은 기업의 공시를 담당할 때 감정 관리법
2. IR/공시 담당자로서 경영진의 마인드를 갖는다는 것
3. 소액 주주들과의 커뮤니케이션
*) 익명성을 보장하기로 한 인터뷰였기에, 회사명이나 담당자가 특정되지 않도록 인터뷰 내용을 편집, 수정하였습니다. 일부 명쾌하게 연결되지 못한 부분이 있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Q. 저는 회사명을 검색해 보고 이런 이슈가 존재하는 회사가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어요. 이런 곳에서 공시/IR 업무를 담당하시는 분을 제가 인터뷰하게 된 것도 신기하다고 해야 하나요? 많이 힘드실 것 같은데, 안 지치세요?
물론 막무가내로 스스로를 피해자, 회사를 ‘악’으로 취급하는 개인투자자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힘들죠. 서로 모순된 주장이 공존하는 채로 근거도 없는 루머를 앞세워 주장하기도 하고요. 특히 자본시장에 대해 조금만 관심을 갖고 있어도 알 법한 기본 지식도 없이 무조건 비방하는 개인주주분들을 보면, 그분들을 위해서라도 소정의 자격증 시험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그런데, 이건 그냥 제 일이에요. 공시업무의 중요도를 간과하는 것도 아니고 저의 실수나 무지를 가볍게 여기자는 것도 아니지만 어떤 일 그 자체가 내 일상을 침범하지 않게 하려고 노력해 온 편인 것 같아요.
Q. 말씀하신 것처럼 적절한 근거나 의견 없이 막무가내로 비방하시는 주주님들을 대하다 보면 감정적으로 소진되는 느낌이지 않나요?
평소 감정기복이 그리 크지 않기도 하고 환경이나 사람의 변화가 저에게 끼치는 영향이 많지 않은 성격을 가졌다고 생각해요. 물론 내적으로는 일하기 싫고, 쉬고 싶고, 늘어져 있고 싶기는 하지만 ‘지금 나에게 어떤 상황이 벌어졌어, 그럴 수 있지’라고 빠르게 수용하는 편이에요. 공시 사항에 대한 경영진의 판단이 늦어져 내일 새벽에 공시를 해야 될 것 같은 상황이 벌어지면, 감정적으로 매몰되어 있기보다는 ‘이걸 빨리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 그래야 내가 하고자 하는 다음의 것을 할 수 있어.’라고 생각하는 편이죠.
Q. 상황이나 변화에 대해 적극적으로 수용하고자 하시는 것 같아요.
그럴 수도 있겠네요. 주어진 일들이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거나 내가 왜 이걸 하나’라고 생각했으면 아마 지금까지 못 다녔을 거예요. 기본적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기업에 대해 친화적인 정서보다는 반대의 정서를 가진 경우가 더 많은 것 같은데, 저는 어쨌든 기업의 일원으로서 기업활동에 있어서 필요한 어느 정도의 선까지는 경영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게 되는 것 같아요.
Q. ‘경영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태도’, 굉장히 원론적이지만 꼭 필요한 말인 것 같기도 해요. 애사심 같은 걸까요?
애사심까지는 모르겠지만, 소액주주분들의 말도 안 되는 허위주장이 사실인 것처럼 언론 보도되거나 기정사실화 됐을 때는, ‘우리 회사 이번 임상시험이 정말 잘 돼서 저런 이야기들 싹 다 들어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긴 했어요.
그리고 공시문건을 작성하거나 IR을 해야 할 때, 저는 저보다 우리 회사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하면서 하거든요. 이건 회사에 로열티를 가지고 있어서 하는 생각이기보다는 내가 하고 있는 업무에서 차질이 생기면 상장사인 우리 회사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위험성을 염두에 두는 태도예요. 공시든 IR이든 회사가 원하는 의도대로 주주들에게 전달될 확률은 희박하지만 그 잡음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소통해야 하고, 내부적으로는 상법, 자본시장법 등 관련 법규나 상장규정, 공시규정 등에 대해서는 내가 책임지고 잘 케어한다고 생각하며 일하죠.
Q. 일에 대한 온전한 집중과 몰입이 있네요. IRer 로서 앞으로의 성장 계획이나 목표도 있으실까요?
사실 어쩌다 보니 IR을 하게 되고 공시도 하게 됐고 PR도 하게 됐어요. 따지고 보면 지금까지의 커리어패스를 스스로 설정하고 계획해 본 적은 없기 때문에 앞으로의 계획도 조금은 막연하게 느껴져요. 물론 공시만으로는 성장하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재무회계나 다른 방향으로의 전문성도 고민하고 있지만 우선은 주어진 업무를 처리하고 관련 지식을 습득하는 것에 더 집중하고 있어요. IR이나 공시 업무가 매력적인 부분은 분명 있다고 생각해요. 특히, 종종 일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공시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게 될 때 소소한 재미를 느끼기도 하죠. 얼마 전에 회사일로 ‘투자판단 관련 주요 경영사항’ 공시 건을 검토한 적이 있었는데, 몇 년 전에 카카오 데이터센터 화재 있었을 때, 해당내용이 공시된 것을 봤던 기억이 떠올랐어요. 주주가 아니라면 굳이 찾아보지 않고 기사보도 정도로 접했을 내용인데 공시업무를 하면서 타회사 사례를 공시 자체로 접하게 됐을 때에는 공시담당자로서 또 다른 기분을 느끼기도 하는 것 같아요.
*) 투자판단 관련 주요 경영사항 (포괄공시사항)
공시의무사항 항목 외에 ‘영업. 생산활동. 재무구조 또는 기업경영활동 등에 관한 사항으로서 주가 또는 투자자의 투자판단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거나 미칠 수 있는 사실 또는 결정이 있은 때” 당일공시
- 연관성 : 기업경영활동과의 직접적인 관련성
- 중요성 : 주가 또는 투자판단에 중대한 영향
1) 공시비율 적용 가능시 : 매출액, 자기 자본, 자산총액의 10% (대규모 5%)
2) 공시비율 적용 불가능 경우 : 구체적 기업특성 및 경영, 재산상태에 상당한 영향이 있는 경우
- 구체성 : 해당 정보가 구체적인 사실 또는 결정 일 경우
+) 제약바이오 업종의 경우 임상시험계획 승인, 임상시험 결과 등 별도의 포괄공시 가이드라인이 있음
Q. 주어진 업무 말고 그 외적으로 하고자 하는 것도 있으신가요?
저는 취미생활이 저에게 너무 중요하거든요. 회사 일 외에 무언가 생산성 있는 일, 문화, 예술활동들에 관심이 많아요. 객관적으로 보면 버거워 보일 수 있는 지금 회사의 어떤 일들도 지치지 않고 꾸준히 해낼 수 있었던 원동력은 어쩌면 그 일들을 끝내고 몰두할 수 있는 다른 취미생활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좋아하는 취미 활동 중 하나가 글쓰기인데, 공시든 회사 보도자료든 문자로 하는 커뮤니케이션이잖아요. 내가 관심 있어하는 분야와 전혀 관련이 없는 업무 영역이지만 글이라는 매개체로 찾아낼 수 있는 시너지 효과는 없는지 가끔은 고민해 보는 것 같아요.
Q. 글쓰기를 좋아하셔서 인지 그동안 작성 해오신 공시의 내용을 보면 굉장히 친절하다는 느낌이 들어요. 개인 주주분들을 배려한 작성일까요?
친절하기보다는 오해가 생기지 않게 하고 싶었다는 말이 더 솔직한 표현일 것 같아요. 사실 공시를 작성할 때, 전임자가 썼던 내용을 복사 붙여 넣기 할 수도 있고, 다른 회사들이 이미 공시한 포맷에서 몇 글자만 바꿔서 작성할 수도 있고, 회계부서에서 넘겨준 주석을 있는 그대로 제출할 수도 있잖아요. 항상 노력하는 것은 아니지만 가끔은 ‘이게 정말 최선일까?’라는 생각을 해보곤 해요.
이렇게 말하면 굉장히 업무에 열정이 넘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지난 몇 년간 회사가 올리는 보도자료나 공시, IR 자료 등을 가지고 행간의 숨은 의미까지도 과도하게 해석, 추측하며 다투는 주주들을 보며 자연스럽게 터득한 것 같아요. 개인주주들은 막연히 회사가 뭔가를 숨기고 있거나 부정하게(지분공시 등) 외부에 소통을 안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거든요. 그래서 규정상 언급할 수 없거나, 내부 혹은 금감원에서 컨펌하는 과정에서 수정되지 않는 이상, 오해할만한 내용이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 설명해 줘요. 제 공시가 논란거리가 되지 않을 수 있도록 하는 거죠.
Q. 마지막으로 인터뷰 소감이나 하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경력이 그리 길지 않아서 제가 감히 인터뷰를 해도 될만한 사람인지에 대한 의구심은 계속 있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대부분의 상장사에서는 경험해보지 못하는 다양한 이슈들을 경험했고 최근에는 K-OTC 시장도 알아봤었죠. 이렇게 짧은 시간 내에 다양한 경험들을 해보았으니, 당장에 이직 생각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앞으로 어디를 가도 잘 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인터뷰 내내 공시나 IR과 관련한 저의 생각과 경험, 커리어들을 마음껏 이야기한 시간이어서 재미있는 시간이었습니다.
*) K-OTC(Korea Over-The-Counter) 시장
코스피, 코스닥, 코넥스 시장에 이은 제4의 시장에 해당하며 비상장주식의 매매를 위해 금융투자협회가 개설, 운영하는 장외시장
-공시 서식은 KIND나 DART에 비해 간소화되어 있으며 코스피, 코스닥 공시규정을 준용하는 경우가 많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