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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라는 거울 - 나의 서양음악 순례 (서경식)

도서

by 설렘책방


오랜만에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아이들 아침 먹은 설거지를 하는 도중에 화려한 기교를 뽐내는 피아노곡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옵니다. 설거지하는 손도 같이 춤을 춰요.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이렇게 호사스러운 설거지라니!”

귀찮은 집안일을 하는 시간마저도 기쁘게 만들어주는 클래식의 힘이지요. 진행자가 곡의 제목을 알려주지만 금세 잊어버려요. 작곡가도 지휘자도 오케스트라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 순간 설레게 만들어주면 그만입니다.


나는 아침마다 설레요. KBS 라디오 어플을 다운받아 클래식 FM 메뉴를 터치하면 깨끗한 음질의 곡들이 흘러나옵니다. ‘클래식 FM에 주파수를 맞추고...’는 옛말이 되었고, 지지직거리는 낭만적인 소음은 간편함에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그 정도 서운함쯤이야 클래식 음악이 가져다주는 풍성함에 금세 사라집니다. 눈곱도 안 뗀 잠옷 차림이더라도 선율을 타고 유럽의 어느 대저택에도 갔다가 오페라 하우스에도 갔다가 시골의 들판도 거닐곤 하지요. 시공간을 자유롭게 오가게 됩니다. 나에게 자유를 느끼게 해준 클래식 FM을 알려준 이는 《나의 서양음악 순례》의 저자 서경식입니다. 1년간 문화 웹진에 음악에 관한 에세이를 실었고 그걸 엮어 책이 나올 만큼 음악에 대해 할 말이 많은 그이지만 처음부터 음악을 마냥 즐긴 것은 아니라고 해요.



“어떤 연주를 듣고 감흥이 일지 않으면 “재미없었어”라는 한마디로 족하다. 한데 나는 먼저 나 자신한테서 원인을 찾는다. 지식이 부족하다든가, 음감이 좋지 않다든가, 나는 음악을 모르고 있다든가, 그런 식으로 생각해 버린다.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재일조선인 2세로 1951년 일본 교토에서 태어난 작가는 어린 시절 일본인과 자신의 보이지 않는 벽을 클래식 음악에서 느꼈어요. 클래식 음악을 즐기는 사람은 중산계급이고 그것은 곧 일본인을 나타냈습니다. 가난한 재일조선인에게 클래식 음악이란 가질 수 없는 사치스러운 장난감 같은 것이었다고 하죠. 그 자격지심이 저변에 깔려서일까, 한동안 클래식에 대해 동경과 반발이라는 양면적인 감정을 품고 있었습니다.


나는 어떤가 생각해 봤습니다. 자유롭지 못한 것은 음악뿐 아니라 연극, 미술 등 예술을 대하는 태도였습니다. 음치 몸치라서, 예술적 소질이 없어서, 예술 교육을 받지 못해서, 연주회나 공연을 보러 갈 돈이 넉넉지 못해서 늘 쭈그러들었어요. 예술을 좋아한다고 말하기가 부끄러웠죠. 그렇지만 우리가 예술을 즐기는 데에 실력을 뽐내야 할까요? 지식 자랑을 해야 할까요? 분석하고 비평을 해야 할까요? 꼭 외국에 가서 비싼 공연을 봐야 할까요?


“내가 이 글에서 써온 것은 음악 비평이 아니다. 한 사람의 아마추어인 내가 음악이라는 거울에 비친 나 자신에 관해 이야기한 것이다.”


40대의 나를 음악이라는 거울에 비춰보았습니다. 매일 아침 클래식 FM을 들으며 평범한 순간을 기쁨으로 채우는 내가 보였습니다. 오늘 아침 쇼팽의 ‘환상교향곡’을 들으며 환상적인 설거지를 한 것처럼 매 순간이 마법이 됩니다. 오페라 <라크메>에 나오는 ‘꽃의 이중창’을 통해서는 장롱 면허 8년 만에 혼자 고속 도로에서도 운전하기 시작한 용기 있는 내가 보였어요. 길가에 흐드러지게 핀 꽃들이 화사하게 응원해 주었습니다. 운전을 하면 이렇게 편한걸, 이렇게 자유로운 걸 왜 그렇게 겁냈는지 후회하는 나를 가벼운 흔들림으로 다독여 주었어요. 드뷔시의 ‘달빛’을 들으면 피아노 치는 할머니가 되고 싶은 내 꿈도 보였습니다. 초등학교 때 그만둬야 했던 피아노 레슨의 아쉬움을 딸의 피아노로 달래고 있어요. 쉬운 악보를 프린트해 한 손씩 더듬더듬 연습하는 중년의 내 모습이 언뜻 사춘기 소녀로 보이는 착시현상이 일어났습니다. 피아노 울림이 달빛에 은은하게 섞이는 경험을 해보고 싶습니다. 10년이 걸려도 좋아요. 10년 후에는 ‘말러 교향곡 5번의 아다지에토’를 피아노 버전으로 도전할 거에요. 영화의 OST로 많이 사용되는 이 곡의 아스라한 느낌을 중년에는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재즈곡 연습을 할지도 모르겠네요. 편견이 없고 실수가 허용되는 자유로운 재즈처럼 살고 있다면 자연스러운 일이지요. 마음속 그루브에 못 따라오는 손가락의 속도에 깔깔거리며 웃고 있겠죠.


여전히 어려운 곡의 제목을 외우지도 못하고 연주자의 스타일을 구분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음악 거울에 비춘 나의 이야기는 밤새도록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입이 근질근질하여 누구든 붙잡고 얘기하고 싶어집니다. 굳게 닫혔던 마음이 활짝 열리는 것, 음악이 주는 기쁜 변화가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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