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주인 편 #1. "빌려주는 동안 그 집은 사는 사람의 것"
월급의 절반을 월세로 내고, 한 곳에 살거나 장사할 권리를 빼앗기는 세상에서 집주인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그들에게도 말 못 할 사정이 있지는 않을까? 며칠 전 우리는 한 분의 집주인을 만났다. 이런 세상에 살면서 '집주인'이라는 존재에 대해 조금도 적대적이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런데 뜻밖의 마음을 얻고 돌아왔다.
집주인의 입장을 물을 때마다 그는 세입자의 상황을 고려했다. 공공연하게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임대인의 잘못이라고 했다. 돈보다 함께 살아가기를 생각하는 마음이 당연하다고 대답했다. 그가 가진 '함께 산다'는 철학이 그를 만난 세입자들에게 조금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주지 않았을까.
어떤 시절에는 당연했던 이야기가 당연한 듯이 사라지는 세상이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사람들은 변화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혼자가 된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함께 산다'는 마음을 잊지 않은 사람이 있고, 나는 그것이 이 세상을 지탱하는 힘이라고 여긴다. 작은 마음을 지키는 것으로 만드는 변화를 꿈꾸며, 함께 나눈 이야기를 소개한다.
제가 살던 동네에는 중국인 교포들이 많았다. 대림동. 교포들과 한국 사람들. 1층 교포들, 2층 두 방은 교포였다. 교포들은 예전의 어글리 코리안처럼, 비슷하다. 한 번도 청소를 안 한 사람도 있었다. 세를 준 것이니 남의 집이라 나도 함부로 들어갈 수가 없다. 방을 비우고 나서 들어가 보니까 목욕탕 물때가 심하고 담배를 많이 폈다. 주인 입장에서는 그런 세입자가 싫을 수밖에 없다. 반면에 한국 세입자들은 깨끗하다. 주인 입장에서는 세를 살지만 내 집처럼 잘 관리하는 사람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 내가 집을 팔 때나 새로운 세입자를 들일 때 빨리 집을 팔 수도 있고, 값을 깎아줄 일도 없기 때문이다. 집이 관리가 안되어있으면 다음 사람을 위해 다시 청소를 해야 하고 그것이 다 돈이 드는 일이다. 그래도 18년 정도 그 집에 세를 주면서 큰 갈등을 일으킨 적은 없었다.
조금 안타까운 경우도 있었다. 전세금을 조금 돌려받고 그 금액에 대한 월세를 내겠다고 하는 세입자가 있었다. 사정이 어려운 사람이었다. 나랑 1살 차이가 났는데, 월세를 못 내서 나갈 때 전세금 없이 나갔다. 주인 입장에서는 사실 전세금을 월세를 돌려달라는 요구가 굉장히 어렵다. 경제적 사정이 어려운 거구나, 나중에는 보증금을 다 까일 수 있겠구나. 주인 입장에서는 안타깝고 결정하기 어렵다.
통상적으로 쓰는 계약서를 보면 별생각 없이 쓰는 경우가 많다. 주인 입장에서는 계약서를 꼼꼼히 보지 않아도 별 문제가 없다. 어렵지도 않고. 그런데 집을 사려고 계약서를 쓰다 보니 굉장히 큰 맹점이 있더라. 중개인과 4월 초에 계약하고 한참 뒤에 입주할 예정이었다. 통상적으로 부동산에서 계약을 하고 등기부등본 이상 없었다. 계약을 할 때는 별 생각이 없었는데, 입주 전까지의 기간이 기니까 걱정이 되더라. 기존 집주인이 이중계약을 해도 확인할 방법이 없다. 서류상으로 아무런 기록이 남지 않는다.
부동산업자한테 이런 의문이 생겨서 물어봤다. 이중계약을 하는 것을 확인할 방법이 없는데, 안전장치가 없냐고 했더니 그럴 방법이 없다고 했다. 그런 질문을 하는 사람이 처음이라고 하더라. 제 경우에는 거래한 분이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았고, 같은 은행에서 대출을 받은 분이니 안전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확인할 방법이 없다.
나의 경우는 매매권에 대한 것이었지만, 만약 내가 나쁜 주인이고, 집에 부채가 많다면, 어차피 털어봐야 얼마 안 남는다면. 집주인이 임대인을 대상으로 이중계약을 할 수도 있다. 부동산 세 군데에서 계약을 해도 각각의 계약의 경우에는 확인할 방법이 없다. 이런 부분이 드러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하다. 이 집이 계약된 집인지 아닌 집인지를 알 수 있어야 한다. 사실 이런 부분에 있어서 세입자는 늘 불안한 입장일 것이다. 이중계약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제 생각에 대안은, 부동산 중개사 분들의 의무사항으로 정하는 것이다. 어떤 중개인 분들은 수고에 비해 너무 많은 이득을 취득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방을 소개하는 역할만 하기도 한다. 계약을 하면 부동산중개사가 계약한 집을 어떤 사이트에 확인하는 것을 법적으로 의무화시키면 어떨까. 그러면 누구나 주소만 치면 계약사항을 확인할 수 있다.
나는 18년 동안을 집주인으로 있었지만 다들 계약서를 잘 안 본다. 특별한 이야기도 없고 뻔한 이야기다. 세입자가 내용을 봐야 하는데 한국사람들은 잘 안 본다. 오히려 교포들은 익숙하지 않아서 꼼꼼하게 본다. 계약기간이나 특약사항. 그들에게는 특약사항이 매우 중요하다. 특약사항에 들어갈 부분을 실질적으로 조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만약 집에 인테리어를 했는데, 윗집에서 물이 샌다면? 각 집의 주인이 다를 때 주인들끼리 해결하면 되는지, 관리사무소에서 해주는지 알기가 어렵다.
부동산 업자가 하자 있는 물건을 소개해줬을 수도 있는데, 중개사가 조정의 역할을 해주지 않더라. 세입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 부분들이 특약사항이던 문구던, 구체적인 내용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말 나쁜 집주인들은 보일러가 고장 나도 안 고쳐준다.
이론적으로는 그렇다. 세입자가 들어오기 전에는 주인 입장에서는 고쳐주겠다고 편하게 이야기한다. 그런데 양도시점 이후에는 양도인의 책임이 덜어지는 경우가 있듯이, 임차의 경우에도 사용상의 경우에는 임차인들이 알아서 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 세입자가 물이 샌다고 하면 집주인들은 "임차 전에는 안 샜는데?"라고 한다. "그거 수도꼭지 조금 고쳐서 써."라고 하면 소송 걸 수 없다. 쉽게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다.
집이 노후하면 자연스럽게 하수구가 막힌다. 교포들에게 세를 주다 보면 기름을 많이 쓰는 음식문화 때문에 하수가가 자주 막힌다. 나도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 전세라면, 부동산에서도 사용자가 고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월세의 경우, 집을 주인이 고쳐주는 조건으로 매달 돈을 받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용자에게 수리 책임을 주는 집주인도 많을 것이다. 아마 법제화되어 있어도 쉽지 않을 것이다.
세입자의 입장에서는 월세집에서 나온 다음에 구상권을 청구하는 방법이 있으면 좋겠다. 집주인과의 이해관계가 끝난 다음이라면 좀 더 편하게 청구할 수 있지 않을까? 계량기 터진 것, 하수구 막힌 것 등 비용이 발생한 항목에 대한 영수증을 청구하는 방식이 좋겠다. 세 사는 집에 주인이 함께 사는 경우에는 수리 문제가 좀 낫다. 하지만 재계발될 때까지 그냥 월세 주고 방치하는 경우에는 안 좋은 경우가 많다. 그럴 경우에도 구상권을 청구하는 것이 효과적인 방법일 수 있다.
돈에 대한 부분이 많다. 교포분들도 요즘에는 온라인 뱅킹을 한다. 계약을 한 집주인과 돈을 받는 집주인이 맞는지 확인하길 바란다. 주인은 항상 갑이라 주로 신분증을 안 갖고 다닌다. 중개인에게 “나 알잖아.”하고 끝내는 경우가 많은데, 교포분들은 못 믿는다. 통상적으로 그렇게 안 하지만, 세입자 입장에서 집주인을 확인시켜주면 안전할 것 같다. 나는 계약할 때 신분증을 들고 간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런 사항을 의무적으로 넣는 게 필요한다고 생각한다.
세를 준 뒤에 그곳이 내 집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살 때는 거기 사는 사람의 집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갈 때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면, 예를 들어 변기를 깨뜨렸다던지 하면 원래의 모습으로 돌려놓는 게 맞다. 지금까지 그런 적은 없었지만. 빌려주는 동안 그 집은 그 사람의 것이라고 생각해서 담배를 피우던, 아이가 울던, 웬만해서는 세입자가 우선시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집주인이지만 담배 피거나 아이 울면 안 된다고 특약사항으로 넣으면 안 된다. 불편한 부분은 집주인이 참아야 하는 부분이다. 당연한 것이다.
똑같은 컵을 놓고 보는 방향에 따라 다르게 생각할 수 있듯이, 법적으로 합의되어 있는 부분도 조금 더 구체화시킬 필요가 있다.
집주인이 갑이니까. "그럴 거면 다른 집으로 가세요."라고 말하기 쉽다. 나는 직접 중개인과 함께 계약서를 쓰고 했다. 다른 사람들은 위임받은 중개사에게 계약을 모두 맡기는 경우가 많다. 법무사나 부동산 중개사를 통해서 관리까지 해달라고 하는 집주인들도 많다. 그런 경우에는 직접 집주인을 만나는 것이 아니니 세입자가 특약사항을 작성하기가 더 어려울 것이다.
위임을 받았으면 정확하게 위임장을 보여줘야 한다. 중개인이 확인을 시켜주고, 그에 대한 책임도 계약하는 당사자가 하는 것이 맞다.
입주해 있을 때 주인과 이야기하기는 어렵지만 나오고 나서 이야기하면 좋을 것 같다.
공대 출신, 엔지니어 출신이라 공구만 있으면 웬만한 건 내가 다 한다. 그런데 내 일이 있어서 시간이 없다. 배관, 바닥 수리 등은 저희 집을 맡아서 해주시는 분이 계셨다. 철물점 같은 곳에서 수리해주시는 분. 물이 새는 경우에도 탐지기 부르는데 얼마라고 믿고 맡기고, 돈만 부쳤다. 고치기 어렵지 않지만 그게 다 돈이다. 그래서 어떤 집주인들의 경우에는 집을 수리하고 고치는 것을 세입자 책임으로 돌리는 경우가 많다.
일반주택이라 외부 계단 같은 것들은 관리할 만한 것이 없다. 관리비를 따로 받는 사람들도 있는데 진짜 치사한 것이다.
18년 동안 전월세 다 해서 10가구 정도 거쳐갔다.
네이버에서 검색을 하다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봤다. 월세를 기존 시세에 맞춰서 올리지 않으면 나쁜 주인이라고 하더라. 월세를 안 올리면 세를 살던 사람이 너무 싸게 살아서 다른 집으로 이사 갈 수 없다고 나쁜 주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더라.
반지하인데, 곰팡이 전혀 없는 좋은 반지하다. 거기에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한국인 분들이 오셨다. 18평 정도 되고 거실도 좀 컸다. 통째로 월세를 주려니까 부담스러워하는 분들이 있었다. 돈 벌려고 세상사는 것도 아니고 나도 어렵게 살았던 경험이 있어서 전세로 달라하면 그렇게 했다. 2층에는 방 2칸이고 월세가 부담스럽지 않은 수준이었다.
처음에는 명절에 세입자분들이 선물을 주시더라. 1만 원짜리 갖고 오시면 나는 명색에 집주인인데 더 큰 선물을 드려야 했다. 나는 세입자들을 자주 만나지 않는 것이 좋은 것 같다. 나는 집주인이니까 상관없지만, 그들은 나를 만나면 불편할 것이다. 집을 지저분하게 쓰거나 하면 나도 잔소리를 하고 싶은데 열심히 참았다. 세입자들과의 교류는 일부러 하지 않은 편이다. 교포분들은 가끔 술 한잔 하시러 내려오시라고 하기도 한다. 성향이 맞는 사람들과는 잘 어울리지만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세입자들에게 나가라고 한 적은 없다. 한 분은 돌아가셔서 나가신 분이 있었고, 한 분은 결혼한 분인데 아이를 낳으면서 집을 넓히기 위해 나가신 분, 한 분은 교포였는데 중국에서 자식이 와서 나간 경우.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나간 경우들이었다. 저는 굳이 돈을 올려 받거나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집주인이 이렇게 생각하면 세입자들도 문제가 생기면 내가 고치지 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특별히 나가라고 할 필요가 없었다.
내가 정상인 것 아닌가. 다만 세상이 이럴 뿐이다. 나는 죽는 순간에 인간적으로 너무 부끄럽지 않았으면 좋겠다. 앞으로 25년이나 더 살려나 모르겠지만. 뜻이 다른 곳에 있는 집주인들이 있다. 생각을 바꿔보면 안 될까 하지만, 주변만 봐도 기본적으로 갖고 있는 생각이 잘 바뀌지 않는 것 같다. 아마 우리 세대들이 생각을 바꾸기에는 정말 쉽지 않을 것이다. 내가 바꾸는 것보다 토대를 잘 만들어서 후배들이 결실을 맺도록 하는 것이 더 쉬울 것 같다.
나는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 없었다. 무역회사를 10년간 다니다 장사를 시작했는데 돈도, 경험도, 주변에서 도와주는 사람도 없었다. 10년 동안 늘 적자였는데 그때, 내 평생에 집을 지을 생각을 하지 말고 바닥만 파야겠다고 생각했다. 모레 위에 성을 쌓아봐야 금방 무너지니까, 땅을 잘 다져야 좋은 집을 지을 수 있다. 내 아이들에게도 그렇게 이야기한다. 너희 자식들에게 기대할 수 있게, 건물은 너희 자식들이 잘 지을 수 있게. 3대에 걸쳐 명문가정을 만들어보자고 우스갯소리로 그런 이야기를 한다. 여러분이 하시는 일들도 후대가 꽃을 잘 피울 수 있는 토대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