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소주 한잔 할까?”
아이들을 재우고 나는 남편에게 물었다.
“그럴까?” 남편은 대답을 하며 안주거리를 주섬주섬 준비했다.
그리고 우리 부부는 처음으로 이혼까지 생각했던 그 사건을 이야기했다. 놀랍게도 나 뿐 아니라 남편도 나와의 이혼을 어렴풋하게 준비했다고 고백했다. 서로가 느꼈던 소원함과 서운함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같았다.
나는 외면하는 남편이 미웠는데, 남편은 아무것도 터놓지 못하고 소리만 지르는 내가 싫었다고 했다.
서로의 상처와 힘듦이 더 크다는 사고에서 출발한 소통의 단절은 우리를 더욱 더 멀어지고 어색하게 만들었음을 깨달았다.
차라리 힘들고 아픈 것을 소리내서 얘기라도 했다면, 우린 그렇게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미워하고 야속했던 마음만큼 서로를 필요로 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남편과 대화를 하면서 나는 그 동안 남편에게 일방적인 공감과 이해를 구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상황에서 남편도 많이 힘들어했다는 것도 알았다.
아줌마들과의 수다에서 배운 공감과 이해, 강점을 보려는 노력 그리고 겸손을 바탕으로 남편과 대화를 하려고 노력하다 보니, 남편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언제든 기댈 수 있고, 무엇이든 다 참아야 하는 큰 산이 아니라, 나와 다름없이 상처받기 쉽고 이해 받고 싶어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 동안 가깝다는 이유로, 그가 남자라는 이유로, 가장이라는 이유로 이해와 강함을 요구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서로 외면했던 상처를 마주하려는 용기는 처음으로 서로를 온전히 바라보게 만들어 주었다.
자존심과 열등감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의 우리를 바라보게 만들어 주었다. 서로의 가감없는 감정을 대하고 나자 약간은 곪아서 방치된 상처가 보였다. 그리고 이제는 그만 이 상처를 아물도록 치유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상처가 아물고 나면 좀 더 다채로운 색깔로 ‘우리’안을 채울수 있겠다 싶었다.
서로가 두 손에 꼭 쥐고있던 자존심과 열등감을 내려놓고보니 그 손이 좀더 자유로워짐을 느꼈다. 그리고 그 손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의 손을 더 잡아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가슴 아픈 나의 사람들을 위해 그 두손을 모아 기도할 수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두손으로 새로운 기회와 도전을 잡을 수 있겠다는 용기도 생겨남을 느꼈다.
우리 속담에 “넘어진 김에 꽃 구경한다”는 말이 있다. 나는 실직으로 넘어졌다. 그러나 넘어지고 보니, 대화의 단절이 우리 부부의 불화를 낳았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내 아이의 아픔이 눈에 보였다. 그때 넘어지지 않았다면 나는 과연 어떻게 이 두 산을 넘겼을까? 앞만 보고 뛰다 보니 내 곁에 있는 고마운 사람들을 돌아보지 못했다. 빨리 달리는 가속도가 빨리 달려야 하는 이유를 앞지르고 말았다. 어쩌면 넘어진 것은 내 삶의 적절한 타이밍에 필연적으로 구성된 장치 같았다.
“인간은 상황 자체가 아니라, 그 상황을 바라보는 관점 때문에 고통을 당한다.”
그리스 스토아학파 철학자인 에픽테토스의 말이다.
우리가 맞닥들이는 상황은 사실 어떻게 받아들이냐의 문제로 정리된다.
남편과의 불화를 나의 탓으로 돌릴 것인지, 남편의 탓으로 돌릴 것인지 아니면 ‘나와 남편의 다름’의 차이로 받아들일 것인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있다.
착한 여자 콤플렉스에 걸린 여성들은 주로 모든 문제를 자신의 탓으로 돌린다. 그리고 자신으로 인해 누군가에게 피해 준 것을 괴로워한다. 그러나 가장 큰 피해를 받는 사람은 다름아닌 바로 자기자신이다. ‘나 때문에’라는 자괴감은 우울함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을 건강하게 바라보는 노력은 자기자신보다 주변 사람들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친다. 착한 여자 콤플렉스에서 반드시 벗어나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상대방만을 탓하는 것도 좋지 않다. 상대를 탓하면 아무도 우리가 원하는 결과를 도와주지 않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잘못을 따지는 것은 건강한 소통을 방해한다.
그러나 굳이 잘잘못을 따져야 한다면 나의 잘못과 상대방의 잘못을 명확하게 구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싸잡아서 다 니탓, 내 탓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가급적이면 ‘나와 당신의 다름’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 좋다. ‘저 사람은 왜 저럴까?’를 생각하기 앞서 ‘그럴 수도 있겠다’를 전제로 접근한다면, 만들지 않아도 될 오해는 피할 수 있다.
아줌마 수다의 두 번째 법칙에 입각해서 상대의 강점을 일부러 찾아본다면 ‘아~ 이런 방법도 있구나’라고 유레카를 외칠 수도 있다. 대화가 어색하고 힘들어진 관계라면 한번 정도는 아줌마 수다의 3가지 법칙을 실행해볼 필요가 있다.
생각해보면 우린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관대하면서 가까운 사람에게는 엄격한 경우가 있다. 그저 그런 사람들이 저지른 실수는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치면서 소중한 사람들이 저지른 사소한 실수에는 큰 의미를 부여하며 곱씹는 경향이 있다. 그냥 흘려버려야 하는 감정이라면 흘려버릴 용기도 필요하다. 그냥 끊어버리기에는 시간이 너무나 소중하고, 그 사람의 빈자리가 벅차게 느껴질 것이라면, 잃어버리고 아픈 것보다는 지금 불편한 감정을 툭 털어내 버리는 의지를 가져보자.
불편함을 마주하는 용기가 소중한 사람을 잃고 아픈 것보다 더 낫지 않겠는가?
너무 늦기 전에 탓을 돌리지 말고, 다름을 기반으로 다가가보길 바란다.
내가 남편에게 보낸 마지막 문자가 그의 발걸음을 돌리게 한 것처럼, 한번 정도는 용기를 내보자. 그 누구도 손가락질 하지 않는다. 오히려 용기를 낸 당신에게 박수를 칠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 용기가 얼마나 큰지를 알기 에 당신에게 아낌없는 큰 박수를 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