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을 생각하는 나에게

by 김혜영

수다에서 대화로

아줌마들과의 수다에서 내가 배운 것은 공감과 이해를 바탕으로 경청하는 법, 보이지 않는 강점을 찾는 자세, 겸손을 바탕으로 말하는 법이다.

내가 그녀들과 특별한 고민상담을 하지 않았어도 치유 받은 것 같고, 다시 생각할 힘을 얻은 것은 다름아닌 그녀들의 수다 법에서 였다. 그리고 그 대화법을 나는 실천해보기로 했다.

회사생활의 막바지에서 나는 회사와 가정의 밸런스를 맞추는 데 완전히 실패했었다.

허둥지둥 회사에 출근해서는 어그러진 관계 속에서 꾸역꾸역 일을 했다. 그러면서 회사에서는 가정 일을 걱정했고, 가정에서는 직장 일을 걱정했다. 지치고 치인 몸과 마음으로 집으로 달려오면 허리 굽은 친정엄마와 울다 지친 아이들을 보면서, ‘왜 나만 이렇게 힘들게 사는 걸까?’ 수도 없이 물어봤다.

서둘러 친정 엄마를 돌려보내고 아이들을 재우고, 밀린 청소와 빨래를 하며 내 인생은 무엇인가? 허공에 묻기를 반복하다 보면 늦은 밤을 훌쩍 넘겨서야 남편이 들어왔다.

결혼 초에는 늦지 않던 남편이었는데, 언제부턴가 늦게 귀가했다. 자기라도 일찍 와서 아이들을 돌봐준다면 친정엄마가 저렇게 고생하지 않아도 될 텐데…… 야속한 마음이 치밀어 오른다.

“지금이 몇 시야?”

“………..”

“나만 이 집에 살아? 당신은 이 집에 안 살아? 왜 나만 애들보고, 집안일하고, 이렇게 종종거리고 살아야 하는 건데?”

남편은 보자마자 쏘아붙이는 나를 보고는 한숨을 한 번 쉬더니 화장실로 들어가버린다. 억눌렸던 억울하고 답답한 심정이 남편을 보자 터져 나왔다.

예전에는 집안일도 많이 도와주고, 일찍 들어오던 남편이었는데 언제부턴가 늦게 귀가하고 집에서 밥을 먹는 경우도 줄어들었다. 그저 잠만 자고 나가는 듯했다.

휴일에도 무슨 미팅과 업체방문이 그리 많은지 집에 있질 않았다. 아니 집에 있기 싫어 겉도는 느낌이었다.

결국 나만 이렇게 꾸역꾸역 부여잡고 있는 셈이었다.

억울했다.

‘왜 나만 그래야 하냐고? 나 혼자 결혼하고, 나 혼자 아이들을 낳았어? 나 혼자 회사 다니고, 나 혼자 살아?’

섭섭한 마음을 넘어 억울하고 분했다.

‘나도 결혼만 안 했어도 회사에 더 몰입하고 인정받을 수 있었어. 결혼해서 내가 손해본게 얼만데? 잃은 게 얼만데?!’ 이럴 거면 혼자 사는 게 더 나을 것 같았다.

남편은 더 이상 나의 편이 아닌 정말 ‘남의 편’이 되어 버린 것 같았다. 한숨을 내쉬고 들어간 화장실 문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으니 내가 더 초라하게 느껴졌다.

아마 그 순간이었을 꺼다. 내가 남편과 이혼해야겠다고 결심한 순간이.

그리고 다음날부터 나는 출근길 지하철에서 남편 없이 혼자 살아가는 것을 상상하고, 계획해보고, 시뮬레이션(simulation)해봤다.

하루, 이틀, 삼일.

생각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일까?

약 일주일간 나는 남편과의 이혼을 상상 했다. 그리고 남편의 부재가 나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했다. 지금처럼 아침에 얼굴 보지도 않고 출퇴근을 하고 대화가 없는 상태라면 그의 부재가 나에게 큰 영향을 주지 않을 듯 했다.

그리고 아이들의 양육방법 등을 구체적으로 계획했다. 아침에 아이들을 챙기는 것이 조금 마음에 걸렸지만 이는 부모님께 부탁을 드리면 될 것 같았다. 어차피 퇴근 후 남편이 아이들을 돌보는 일은 거의 없었으니 이 또한 문제되지 않을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매일 이혼 후 출근하고 퇴근하는 나의 모습을 시뮬레이션 했다.

정확히 일주일을 이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니 나는 이미 이혼한 여자 같았다. 이혼이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졌다. 아직 이혼에 대해 남편과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 시기가 문제일 뿐 나는 이미 준비가 되었다.


남편과 이혼을 해야겠다고 결심한 이후로는 의도적으로 대화를 하지 않았다. 아니 마주치는 순간을 만들지 않았다. 그러니 오해와 추측만으로 서로를 판단하게 되었다. 어느 날 어쩌다 일찍 들어온 남편은 나 혼자 빨래하고 설거지하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지 거실 소파에 대자로 누워 TV를 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너무 보기 싫어서 나는 말했다.

“소리 좀 줄여” 그러나 남편은 들리지 않는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소리 좀 줄이라고!”

화가 난 나는 소리를 질러버렸다. 그러자 남편은 내 쪽은 쳐다 보지도 않고 소리쳤다.

“듣기 싫으면 방으로 들어가던가!”

더 이상은 안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다음 날 나는 출근을 하면서 남편에게 이혼을 얘기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정이 아직 남았었는지 그 결심을 하자, 속상하고 서러운 감정이 들었다.

그리고 우연히 손에 집어 든 <흔들리지 않고 피어나는 마흔은 없다>는 책을 펴는 순간 나의 눈을 사로잡는 한 구절이 보였다. 남편에게 일방적인 통보를 하기 전에 적어도 한번의 노력은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후회도, 책임도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그 구절을 사진으로 찍어 문자를 보냈다.

끝까지 믿어주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 구절을 보는데, 나는 과연 그를 끝까지 믿어주었었나? 싶었다. 그리고 그도 나를 끝까지 믿어주었나?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용기를 내어 보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남편에게서 장문의 문자가 왔다. 그리고 마지막 한 줄이 나를 울렸다.

“나는 다시 태어나도 당신과 결혼할 거야.”

그 글을 읽으면서 무엇이 우리를 흔들었나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도 흔들리는 나의 감정은 잘 정리되지 않았다.

남편과의 문자대화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다. 그리고 이혼은 실직과 아이의 아픔에 묻혀 잊혀지고 말았다.

그리고 남편과 나는 그 일에 대해 단 한번도 이야기를 해 본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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