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들여다보는 기가 막힌 기술

by 김혜영

나를 들여다보는 기가 막힌 기술

일기는 특별한 일이 있을 때만 적는 것이 아니다.

어제의 하늘은 얼마나 맑았는지, 그리고 내가 얼마나 행복했었는지를 적으면 된다. 그러므로 마치 To do list를 적는 것처럼 그날 있었던 모든 일을 순차적으로 적을 필요는 없다.


그래서 일기를 쓰는 첫 번째 기술은 ‘시간’순이 아닌 ‘가치’순으로 적는 것이다.

오늘 나에게 영감을 준 가치 위주로 적는다. 법륜스님의 인생수업에 이런 글이 있다.


"바다를 보면 기분이 좋습니다. 그럼 바다가 기분 좋은 걸까요, 내가 기분이 좋은 걸까요? 내가 기분이 좋은 겁니다. 내가 기분이 좋은 것은 바다가 나를 좋아하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바다를 좋아하기 때문이에요. 산은 그냥 산이고 바다는 바다고 하늘은 하늘일 뿐입니다.”


살면서 나에게 영감을 주고, 자극을 주는 것은 그 사물 자체가 아니라 나의 마음상태인 경우가 더 많다.

어떤 사건 자체라기 보다 그 사건을 인식하는 나의 마음상태에 따라 행복을 느낄 수도 불행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러니 일기를 쓸 때 나에게 자극을 주고 영향을 준 ‘가치’를 중심으로 한다면 나의 마음상태를 들여다 볼 수 있다. 그리고 어떠한 것에 긍정적인 자극을 받고, 어떠한 것에 부정적인 자극을 받는지 통계적으로도 알 수 있다.

두 번째 기술은 스토리텔링의 형식으로 쓰는 것이다.

일기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 자신의 이야기다. 그리고 고리타분한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생생한 지금의 이야기다.

영화는 장르가 다양하다. 따라서 소재도 다양하다. 멋진 공주가 주인공일 수도 있지만, 비루한 실패자가 주인공일 수도 있다. 그러나 주인공은 철저히 그 영화를 끌어간다. 그리고 관객으로 하여금 공감하고 지지하고 몰입하게 만든다. 이유는 주인공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끌고 가기 때문이다.

일기 또한 이렇게 자신을 주인공으로 써나가야 한다.

나 자신이 주인공이 되면 아무리 하찮은 이야기라 하더라도 스스로를 재 조명할 수 있다. 가끔 내가 알지 못했던 나의 장점을 발견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좋은 점은 나의 이야기를 하면서 자존감이 높아진다는 데 있다.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를 해피엔딩으로 만들고 싶은 욕구를 촉발하기도 한다.


스토리텔링은 다음의 4대 요소로 이루어진다.

영웅, 즉 주인공이 있다. 일기에서의 주인공은 당연히 일기를 쓰는 자기자신이다.

다음으로는 악당이 있다. 그러나 악당이 항상 영웅을 괴롭히는 존재가 아니다. 영웅이 맞서야 하는 존재이긴 하나 그는 나의 이야기를 완성하기 위해 조력하는 협력자이다. 여기서 악당은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 사물이 될 수도 있고, 현상이 될 수도 있고, 관념이 될 수도 있다. 나에게 팽팽한 긴장감을 주고, 고민하게 만드는 모든 것을 의미한다.

다음은 깨달음의 순간이다. 서두에 말한 영감을 받은 순간, 혹은 가치를 느낀 순간의 감정을 적는 것이다. 오늘 일기를 쓰게 만든 계기가 여기에 속한다.

마지막으로는 교훈이다. 오늘의 깨달음을 통해 나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적는 것이다.

단순히 사건을 시간 순으로 나열하는 것보다 기억하고 싶은 가치 순으로 일기를 적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미 앞에서 밝혔다. 이유는 깨달은 가치들이 모여 바로 나의 가치관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또한 글로 적음으로 현재의 상태를 객관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다. 물론 일기를 쓰면서 시시각각으로 현재의 상태를 점검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일정 시간이 지나고 일기를 다시 들여다보면 나의 감정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깨달을 수 있다. 그리고 내가 가고 싶어하는 곳이 어디인지도 알게 된다.


조금 어색하더라도 일기를 쓰는 것은 지금의 나를 들여다보는 기가 막힌 방법이다.

이때 가급적이면 가치 순으로 적어나가고, 스토리텔링의 형식을 갖춰 적어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내가 가고 싶은 곳을 알아낼 수 있다.

그리고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 단지 일기를 적기 시작했을 뿐인데, 주변의 사물과 사람들에게서 다른 면이 보이기 시작한다. 단지 마트에 두부를 사러 나섰을 뿐인데, 따뜻하게 불어오는 바람에 문득 행복해짐을 느낀다. 그리고 이 행복이 어디서 기인한 것일까 생각에 잠겨보기도 한다.

마트를 다녀오는 짧은 10분동안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평온함을 느낄 수도 있다.


법륜스님의 말씀처럼 바람이 기분 좋은 것이 아니라 내 마음상태가 조금은 말랑해졌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그리고 의도하지 않았지만 슬그머니 내 옆에 다가온 여유로움에 어색한 미소가 나올 지도 모른다.

기왕 넘어졌다면 맥 놓고 하늘을 보지 말고, 하늘의 가치를 한번쯤 찾아보면 좋겠다.

그리고 마침 불어오는 바람이 나에게 주는 가치도 한번쯤 찾아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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