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린후에 비로소 보이는 것들

by 김혜영

회사에서 가정으로

“인간에게는 고통과 병이 필요하다. 고통과 실패가 없다면 기쁨, 행복, 성공을 무엇과 비교하겠는가?” 러시아의 대 문호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Lev Nikolayevich, Graf Tolstoy)의 말이다.

앞서도 밝혔지만 나는 회사에서 소위 ‘잘렸다’. 잘리고 난 뒤의 감정은 마치 애인에게 갑작스레 차인 것 같은 상실감과 자존심의 붕괴를 동반했다.

회사를 그만뒀으면 좋겠다는 권고를 받고서는 ‘쿨’ 한 척 “그럼 이 번 주에 당장 그만두겠다”고 호기 좋게 얘기했지만 그 동안 겪어보지 못한 낯선 감정에 적잖이 당황했다. 그리고 직장에서의 남은 시간을 정리하는데 보내고선 서둘러 회사를 ‘빠져’나왔다. 그만 떠나달라고 이미 애정이 말라버린 ‘옛’애인의 얼굴을 보고 있는 것처럼 불편했다.

마지막 자존심을 챙기고 싶었다. 그래서 최대한 아무렇지도 않은 듯 웃으며, 마치 더 근사한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서둘러 짐을 챙겼다. 그러나 준비되지 않은 이별처럼 나를 기다리고 있는 더 근사한 일은 있을 리 없었고, 아무리 쿨 한 척 해도 상처받은 자존심은 쉽게 회복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이보다 더한 상처는 다신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나는 회사를 그만뒀고, 당분간은 잘 사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혔다. 맛 집을 찾아 다니며 인증샷을 찍어 SNS에 올리고, 행복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하지만 뭔가 가슴 한 켠에 휑하니 바람이 부는 느낌을 부인할 수는 없었다.

회사를 그만둔 후 가장 큰 변화는 나의 시선이 ‘회사’에서 ‘가정’으로 옮겨졌다는 점이다. 가정 중에서도 ‘아이들’에게 가장 많은 시선이 머물렀다. 주중에는 어린이 집에 다니는 아이들은 변함없이 종일 반을 유지했다. 나는 좀더 위로 받아야 하고, 쉬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나만을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여겼다.

주말은 습관처럼 친정 집에 가서 밥을 ‘얻어’먹고 쉬기를 반복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한 달 정도 된 어느 주말, 부모님께서는 여행을 가셨다. 그래서 하루 종일 아이들과 나만 남겨진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거실에 앉아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둘째 아이가 20개월쯤 된 무렵이다. 첫째 아이에 비해 유난히 말이 느렸다. 그래서인지 의사소통을 울음으로 하려는 경향이 강했다. 말이 늦어서인지 아이는 짜증을 쉽게 냈고, 이런 아이가 나는 부담스럽고 힘에 부치기만 했다. 내 아이지만 둘만 있는 시간이 두려웠다. 하지만 부모님께서 여행을 가셨으니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첫째 아이는 아직 말을 못하는 동생이랑 노는 것이 재미없었는지, 두 아이는 같은 공간에 있었지만 서로 다른 놀이를 하였다.

아무 생각 없이 아이들을 지켜보고 있는데 무언가 이상한 점이 눈에 뜨였다. 바로 둘째 아이의 놀이였다. 둘째 아이는 컵 쌓기 놀이를 하고 있었다. 1부터 10이 쓰인 둥근 모양의 컵을 순차적으로 쌓는다. 그리고 신경질적으로 쓰러뜨린다. 그리고 다시 주섬주섬 주워와서 다시 쌓기 시작한다. 이게 무엇이 이상한가 싶을 것이다. 그런데 둘째 아이는 꼼짝도 하지 않고 1시간을 넘게 이 놀이를 하고 있었다. 심지어 쌓을 때와 쓰러뜨릴 때 표정의 변화도 없다. 그냥 무덤덤한 표정으로 쌓기 놀이를 하고 있었다.

말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무엇인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아이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서하야~” 그러나 아이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는다. 옆에서 놀고 있는 첫째 아이를 불러보았다. “유하야~” 그러자 첫째 아이는 눈을 들어 나를 보면서 “네?”한다.

다시 둘째 아이를 불러보았다. “서하야~” 여전히 미동도 없이 쌓기 놀이를 하고 있다. 아이 앞으로 다가가서 다시 불러보았다. “서하야, 서하야!!” 아이의 얼굴 앞으로 내 얼굴을 들이밀며 억지로 눈을 맞추며 불러보았다. 여전히 아이는 내 눈을 피하며 대답을 하지 않는다. 그런데 갑자기 아이는 나를 밀치더니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키며 느닷없이 울기 시작한다.

“서하야, 왜 울어? 뭐 때문에 그래?” 그래도 아이는 울음을 그치지 않고, 마치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처럼 더 세차게 울었다. 답답했다. “왜 그래? 뭐 때문에 그래?” 그러면서 아이의 눈을 맞춰보려 했지만 아이는 눈을 맞추기는커녕 울기만 한다. 그제서야 아이가 손으로 가리키는 곳을 쳐다보았다. TV였다. TV가 보고 싶었나 보다. 그래서 “TV 보고 싶어?” 라고 물어보았지만, 여전히 대꾸는 없다. 계속 울기만 한다. 그래서 TV를 틀었다. 그랬더니 아이는 울던 그 모습 그대로 멈춘 채 TV에 시선을 고정한다. 눈에는 눈물이 방울방울 맺혀있다. 고개는 약간 갸우뚱 기울어졌다. TV를 꺼봤다. 그랬더니 아이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다시 울기 시작했다. 나는 아이 앞으로 가서 말을 붙였다. “서하야, TV틀어줘?” 물어봐도 내 눈을 보지도 않고 울기만 한다. 울음소리가 점점 커져간다. 난 TV를 다시 틀었다. 아이는 다시 그 자세 그대로 울음을 그치고 표정도 없이 TV를 보기 시작한다.


우리 아이가 자폐일까요?

갑자기 이유 모를 두려움이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내 머릿속에 낯선 단어가 섬광처럼 스쳤다.

“자폐”

한번도 자폐가 무엇인지 알아보려 하지 않았다. 아니 알 필요가 없었다. 떨리는 손으로 스마트폰에 ‘자폐’를 검색했다. 30개월 이전에는 자폐확정을 내리지는 못하지만 몇 가지 신호들을 통해 아이가 자폐성향이 있는지 여부는 알 수 있다고 한다. 재빠르게 읽어내려 갔다.

그 증상들은 부모를 보더라도 잘 웃지 않는다. 눈을 잘 맞추지 않는다. 이름을 불러도 응답이 없다. 하나의 놀이에 몰두한다. TV에 집착한다. 울음으로 의사 소통하려 한다. 감정 반응의 표정이 없다. 고통에 반응이 없다. 말이 늦다 등이었다.

절망스럽게도 거의 대부분 둘째 아이의 평소 행동패턴과 일치했다. 첫째 아이와 달리 유난스럽게 까다롭다고만 여겼는데, 까칠한 아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둘째 아이는 아팠던 거다. 남편에게 문자를 보냈다. “남편, 서하가 아무래도.. 자폐 같아” 떨리는 손가락으로 자판을 꾹꾹 눌렀다. 마치 내 이마에 주홍글씨를 새기는 것처럼 쓰라리고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하지만 그 큰 충격을 혼자서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눈물이 앞을 가렸다. 눈물 사이로 아이를 쳐다봤다. 그 순간에도 둘째 아이는 얼굴에 어떠한 표정도 없이 TV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 가슴 아팠다.

그리고 문득 스친 기억하나. 아이가 왜 그렇게 컵 쌓기에 몰두했는지 알 것 같았다. 몇 주 전 처음으로 아이에게 가르쳐 준 놀이가 바로 컵 쌓기였다. 아이는 잠깐이지만 엄마가 놀아준 놀이를 혼자서 하고 있었던 거다. 놀이 속에서 엄마의 향기를 다시 느끼려는 듯……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둘째 아이가 너무나 불쌍했다. 측은했다. 엄마 없는 아이도 아닌데 아이는 매일 엄마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그리움이 당연한 일상이 되어 버렸던 것이다.

나는 다시 찬찬히 아이의 지난 시간들을 반추해봤다. 둘째 아이는 아침 일찍 일어나는 나 때문이었을까, 6시도 전에 일어나 나에게 매달렸다. 출근준비를 해야 했던 나는 아이를 떼어놓는 유일하고 쉬운 방법을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선택했다. TV를 틀어주며 아이가 시선을 빼앗기면 재빨리 씻고 출근준비를 했다. 그리고 문을 나설 때 행여 울기라도 할까 싶어 TV를 보는 아이가 눈치채지 못하게 슬그머니 나오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남편이 일어나는 시간까지 아이는 그렇게 TV에 ‘방치’되었다. 아침에 일어나 엄마의 따뜻한 포옹과 사랑의 말을 듣기도 전에 TV소리에 길들여졌다. 아이는 눈을 뜨면 사라지고 마는 엄마가 그리워 그 새벽에 일어난 건데, 이 못난 엄마는 유별스런 아이라고 단정짓고 천덕꾸러기마냥 옆으로 밀쳐버린 것이다.

퇴근하고 와서도 상황은 비슷했다. 야근이 잦은 나는 11시가 넘어 집에 들어오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러면 첫째 아이는 방에서 이미 잠이 든 후다. 그러나 둘째 아이는 할머니의 등에 업혀서도 잠이 들지 못하고 칭얼대고 있었다. 친정엄마께서는 그런 아이 때문에 이미 지칠 대로 지친 모습으로 아이를 업고 계셨다. 허리가 아파서 재대로 서 있지도 못하고 바닥에 웅크린 채로 아이를 등에 업고 계셨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서 보이는 그 모습에 미안함을 넘어 화가 치밀었다. 아이의 등을 손으로 내리치며 엄마 등에서 들어올린다.

“넌 왜 이렇게 사람을 힘들게 하니? 지금이 몇 시인데 잠도 안자?” 화와 눈물이 함께 뚝뚝 흘렀다. 씻지도 못하고 아이를 안고선 엄마의 등을 떠밀며 이제 집으로 가서 쉬시라고 말을 한다. 엄마가 가시고 나면 그제서야 아이를 돌아본다. 그러면 어느새 아이는 내 품에서 잠이 들어있다. 그땐 “이렇게 잠 들 거면서 왜 그렇게 버티고 있었던 거야?” 빽 소리를 지르며 야속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깨닫는다. 그건 아이가 엄마의 품이 그리워 잠을 참고, 참고 또 참았다는 것을...... 아이가 유별나서가 아니라 엄마의 품이 몹시도 그리워서 온몸으로 말하고 있던 다는 것을…… 못난 엄마는 그 소리를 듣지 못했다. 아니 애써 외면해 버렸다. 그렇게 엄마의 무관심과 짜증으로 둘째 아이는 병들어가고 있었다.

지난 시간 동안 아파서 울던 둘째 아이의 울음소리가 매아리쳐 오는 듯했다. 솟구치는 눈물과 후회로 내 몸은 파르르 떨렸다. 그때 징~하는 진동과 함께 남편의 문자가 한 통 도착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서하는 평범하게 아주 잘 자라고 있으니 쓸데없는 걱정 하지마” 그런데 그 글을 읽으면서 나는 더 이상 타협해서는 안되겠다는 막연한 비장함이 일었다.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엄마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더라도 엄마인 나는 더 이상 보지 못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아무 일도 아닐 거야’라는 안일한 위안 뒤에 비겁하게 숨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하야, 이제 엄마가 너를 대신해서 싸워줄게. 너의 외로움과 슬픔과 분노에 엄마가 대신해서 맞서줄게.’ 눈을 맞추지 못하는 아이를 향해 나는 다짐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