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해지는 것을 미루지말자

by 김혜영

회사를 그만두고 난 후 내 삶의 패턴은 아주 작은 부분까지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때에 따라 그 변화를 내 몸이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옷차림이었다.

직장생활을 할 때에는 주로 정장을 입었기에 나의 옷장에는 정장바지와 원피스, 자켓등이 대부분이었다. 상대적으로 집에서 편하게 입는 이지웨어(easy wear)는 많지 않았다. 그래도 집에서 입는 옷이야 유행이 지나던, 보플이 심하게 일어나던 입으면 그만이었다.


문제는 주변 사람들과 가볍게 만날 때 입을 만한 옷이 전혀 없다는 점이었다.

동네 아줌마들과 집 앞에서 커피한잔 하는데 정장에 하이힐을 신고 나갈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대놓고 멋을 부린 듯 잔뜩 꾸미고 나가는 것은 촌스러울 뿐 아니라, 서로에게 부담스럽다.

옷차림은 T.P.O에 잘 맞아야 한다. Time(시간), Place(장소) 그리고 Occasion(상황)에 맞게 입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아줌마들과의 수다타임에 정장은 어울리지 않았다. 편안하면서도 세련되고 우아한 평상복을 찾는다는 것은 똑 떨어진 정장을 찾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게 ‘어려운’ 일이다. 웬만한 정보와 눈썰미가 아니고서야 개성을 반영하면서도, 편안하고, 세련된 이미지의 룩(look)을 완성할 수 없다.


그리고 어렵사리 마련한 평상복은 그 다음이 더 문제였다. 도무지 입어도 태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치 남의 옷 빌려 입은 것처럼 불편하고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평상복이 주는 편안함보다는 정장이 주는 ‘단정한 불편함’이 훨씬 편했다.
다시 그 단정한 불편함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것이 나에게는 덜 어색하고,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다. 그것이 분명 ‘불편함’인데도 말이다.


오랜 시간의 직장생활의 습관은 어느 샌가 내 삶의 관성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관성에서 조금만 벗어난 행동이 ‘일탈’로 느껴지기 쉽다. 그런데 간혹 우리는 이런 일탈을 ‘신선’하다고 여기는 것이 아니라 ‘어색하다’ 그래서 ‘틀렸다’고 인식하기 쉽다.

내가 처음 정장을 벋어버리고 이지웨어를 입으며 어색함과 불편함을 느꼈듯이 말이다.


회사를 다니면서 나는 회사를 그만두면 지금의 삶에 균열이 생길 것 같았고, 그 윤택함을 영원히 박탈당할 것 같은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다.


지금 힘들게 맞춰가고 있는 삶이 행복이라고, 아니 행복이어야만 한다고 믿었다.
다른 형태의 행복은 행복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니 다른 형태의 행복이 존재하는지 조차 알지 못했다.


설득하고 협상하는 바쁜 환경이 세련된 커리어 우먼의 삶이라고 생각했다. 그 삶이 내가 꿈꾸는 가장 이상적인 삶이라고 한번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이제 평상복을 입으며 편안함을 느끼고, 아이들의 표정을 보며 안정감을 느끼며, 나보다 잘 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가벼운 질투를 느낀다. 그리고 커피한잔을 마시며 잠깐의 사색에 기쁘다.

달라진 이 일상이 믿을 수 없지만 ‘행복’의 순간이라고 확신한다.


그렇다고 바쁘게 살았던 커리어 우먼의 삶이 불행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그 당시 나는 행복을 정형화하여 인식했다.

그래서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행복한 척 했다.

누군가의 시선에서 행복을 찾았고, 만들어낸 결과물에서 행복의 질을 판단했다.

내 삶의 행복에 ‘나 자신’이 빠져있었다.


누군가에게 편안한 평상복이 당신에게도 편안할 필요는 없다.
누군가의 가슴을 뛰게 하는 이유가 당신에게도 같을 필요는 없다.
행복은 그 출발점도 도착점도 사람마다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남의 잣대로 당신의 행복을 재지 말길 바란다.



적어도 나는 예쁘다고 누군가에게 칭찬을 받아야만 행복하다고 느꼈고, 내가 이뤄놓은 성과가 멋지다고 인정받아야만 행복하다고 느꼈다.


누군가의 칭찬과 인정이 없으면 전혀 행복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행복해야만 한다는 강박 속에서 전혀 행복하지 못했다.

행복해 보이려고 애를 쓰는 사람이었다. ‘쇼윈도 행복녀’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다.

이제 피곤한 ‘보여지는 행복’은 집어치우고 ‘진심’의 행복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요즘 내가 찾은 ‘10분안에 즉각 행복해지는 방법’을 소개할까 한다.
일단 펜과 종이를 준비한다.
그리고 나를 기쁘게 하는 것들을 다음의 기준으로 최소 한가지씩 적어나간다.
시각/청각/후각/촉각/미각순으로

나는 꽃 보는 것을 좋아하고,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 듣는 것을 좋아한다.
즐겨 쓰는 핸드크림 향을 좋아하고, 바짝 마른 이불의 까슬한 감촉을 좋아하며, 커피마시는 것을 좋아한다. 우울한 기분이 들거나, 왠지 모를 열등감이 들 때, 그 감정이 잠식하기 전 좋아하는 목록 중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하나를 골라 실행한다.
가끔 힘든 감정을 증폭시키기도 하지만, 차라리 깊게 그 감정에 빠져보면 오히려 카타르시스를 통해 극복하기 쉬워지기도 한다. 그렇게 감정이 정화되면 ‘다들 이렇게 사는 거지 뭐~’라며 소리 내 내 감정을 인정한다. 그리고 나면 다시 일상을 조금 더 행복하게 이어갈 수 있다.


물론 이 방법 또한 모두에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자신이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쯤은 구별할 수 있다. 주변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은 잘 알면서, 스스로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는 건 뭔가 불합리하다.


당신이 좋아하는 것은 우선적으로 선택하고,
싫어하는 것은 피할 수 있으면 피해가길 바란다.
싫어하는 걸 억지로 하면서까지 전투적으로 ‘행복’을 사수해가지 않아도 된다.

의외로 싫어하는 것을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우린 행복할 수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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