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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락(permission) 하지 않는다

by 파묵칼레

양수리는 훌쩍 떠나고 싶을 때 생각나는 내 마음의 고향이다. 그런 정서를 준 Y를 만나러 간다.


인사동이나 대학로에선 가끔 보았지만 양수리 집을 찾기는 오랜만이다. 강산이 변해 두 번은 바뀌었을 시간, 경의 중앙선 지하철에 올랐다.


예전 같으면 마장동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갔을 길이다. 차에 오르니 만감이 교차한다. 차창밖에 스쳐 가는 풍경이 옛 기억을 마구 흔든다.


Y는 양수역으로 차를 몰고 마중을 나왔다. 차 안에서 손을 흔드는 모습이 반갑기도 하면서 가슴이 아렸다. 나는 서둘러 가 조수석에 앉았다.


눈물이 말라 아픔을 매만져주기엔 시간이 너무 멀리 가버렸다. 그냥 나를 부둥켜안고 한동안 아무 말도 못 하였다.


눈망울을 보면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아 일부러 시선을 피했다.


음식점 테이블에 앉아 침묵으로 대화하였다.


큰 소리로 얘기하는 행락객들 속에서 우리는 서로 묵묵히 식사하였다.


나는 안경 속에 내 시선을 감추고 있었다.


생선 가시를 발라서 내 쪽으로 밀어놓는다. 코끝이 찡 해온다. 내심 울음을 삼키며 태연하게 먹었다.


조용한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북한강이 내려다보이는 통유리 창가에 앉았다. 주문한 커피를 들고 오는 Y의 얼굴이 통유리창에 비치었다.


시간은 묘약이다. Y를 의연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우수에 찬 모습은 지워지지 않았다. 이렇게 사람들을 만나기까지 2년이 걸렸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시다가 눈물 그렁그렁한 눈망울과 마주한 순간 참았던 말이 얼결에 불쑥 나왔다.

“어떻게? 어떻게 되신거여?”

잠시 머뭇거리다가 입을 뗀다. 어린 시절 폐결핵을 앓았던 남편은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던 때 급성폐렴으로 쓰러졌단다.


남편의 폐 정기 검진일이라 덕소역까지 가서 주차하고 지하철을 타고 서울병원으로 갔다.


진료를 잘 마치고 다시 덕소로 왔는데 남편은 다시 병원에 가야 할 것 같다면서 고집을 피우더라는 것이다.


내 몸 상태는 내가 제일 잘 안다. 재 진료받은 결과 급성폐렴으로 합병증이 와서 몸 상태가 급격히 안 좋아 그 길로 입원하여 이틀 만에 소천하였다. 준비할 겨를도, 작별 인사도 나누지 못했다.


나는 Y가 결혼 후 집에 갔던 적이 있다. 한창 신혼생활에 깨 볶는 냄새가 나는 집에 가서 해주는 밥을 먹고 놀며 심지어 하루 묵었다. 지금도 양배추 된장찌개의 달착지근한 맛이 입안에 감돈다.


그것도 신혼부부와 한방에서 잤다. Y는 남편과 침대 위에서, 나는 침대 옆 공간 방바닥에 요를 깔고 잤다. 내가 잠시 정신이 나갔었나 보다. 그 신혼집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잤다는 건 맨 정신으로 할 수 없는 짓이다.


또 그러는 나를 아무렇지 않게 받아준 부부도 보기 드문 사람들이다. 맘씨 좋은 얼굴에 웃음이 가득 담긴 순박하고 맑은 눈빛을 가진 남편 모습이 내 기억에 선명하다.


죽는다는 건 누구에게나 두렵지만 남겨진 사람에겐 더 두렵다.


Y 집으로 갔다. 크리스마스와 어울릴만한 포인세티아 화분을 샀다. 양수리 아늑한 동네에 있다.


옹기종기 모여 사는 마을의 모습이 Y의 소박한 삶 하고 닮았다. 앞마당에 사프란꽃이 활짝 피어 오가는 이를 맞이한다.

집안에 들어서니 장화 두 켤레가 현관에 놓여 있다. 가슴이 아르르 저며 왔다. Y와 남편이 함께 했던 흔적이 집안 오롯이 전해진다.


남편을 보내고 7개월을 바깥출입도 못 하고 앉아 있었다는 소파, 나는 손으로 소파를 쓰다듬으며 얼른 거기에 앉아버렸다.


Y의 그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남편을 잃은 처절함이 집안에 가득했다. 단짝을 잃는다는 것, 얼마나 아팠을까? 한참 눈을 감고 기도처럼 설움을 토해냈다.


주방에서 나는 달그락 소리조차 허전함이 감돌았다.


가지런히 깎아서 담아 내온 배를 한입 베어 무는 순간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안경 너머 눈물을 연신 훔쳐냈다. 아삭아삭 배를 깨무는 소리만 들렸다. 한동안 우리는 말없이 과일만 씹어 넘겼다.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애써 외면하려 해도 어여쁜 아내를 두고 간 남편의 체취가 진하게 남아있어 애잔하기만 하였다.


침대 옆 작은 장위에 남편이 해맑게 웃으며 Y를 바라보고 있다. 내 머릿속에 각인되어있는 선한 그 모습과 흡사하다. 가슴이 찡하더니 나도 모르게 터져버렸다. 사진을 보듬으며 비통함을 쓸어내렸다.


작은 테이블 위에는 책과 사진액자와 먼지가 수북했다. 남편의 손때가 묻은 것을 치우고 싶지 않았겠지. 아니 내 안에서 멀어질 두려움 때문에 둘이 엮어낸 세월의 먼지조차도 그 자리에 그냥 놔두고 싶었겠지.


미닫이문 너머로 보이는 책과 유품들, 남편의 손때가 묻은 물건들이 어지럽게 놓여 있다.


거실 한쪽 구석 책상 위에도 그림 그리던 화구들이 나뒹굴고, 케이스에 뽀얀 먼지를 뒤집어쓰고 구석에 세워져 있는 기타는 주인을 그리워하는 듯하다.


문학을 사랑한 부부답게 여기저기 책이 널브러져 있다. 구석구석 남편의 유적이 흥건하다. 함께 한 시간이 켜켜이 쌓여 그리움이 산더미가 되어있다.


Y는 2년이라는 긴 애도 기간을 갖고 몸을 추슬렀지만, 거짓말처럼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남편의 보호 아래 학교만 왔다 갔다 하여서 당장 필요한 각종 도구가 어디 있는지, 집안의 각종 세금, 자동차 점검, 텃밭과 마당 관리. 버섯재배, 심지어 솥에 밥 안치는 그것조차도 서툴러서 펑펑 울었다.


모든 일이 남편 손을 거쳐 이루어져서 무슨 일 하나를 하려 해도 생소하여 이방인 같았다.


부인을 얼마나 사랑하고 아끼고 살았는지 짐작이 간다. 곳곳에 묻어있는 남편의 손때가 夫情을 끓게 한다.


그래,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는 건 보이지 않을 뿐이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떠난 자리도 비워두지 않는다. 내 안에서 영원히 살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부재중을 영원히 permission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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