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호단 Jul 04. 2023

유쾌한 영화 전시 관람기

전시 <맥스 달튼, 영화의 순간들 63 에피소드 2>

영화를 좋아하게 된 계기가 뭐였던가. 생각해 보면 정확히 한 지점을 짚기 어렵다. 어떤 영화에 꽂힌 것도, 엄청나게 많은 작품을 본 것도, 특정 장르나 배우에 푹 빠진 것도 아니다. 그저 자연스레 받아들이게 되었다. 영화가 좋다고. 오랫동안 좋아하게 될 것들은 항상 이런 식이다. 의식하지 못하는 새에 일상에 들어와 기호를 전혀 파악할 수 없다가 한 순간에 자각하는 거다. 아, 내가 참 좋아하는가 보다.


그래서인가. 3살 때부터 그림 그리기를 시작했다는 맥스 달튼의 소개글이 인상적이었다. 오랫동안 꾸준히, 스며들듯 자연스레 하게 되는 원동력이 무엇인지를 아니까. 미술만큼이나 음악 공부도 성실히 해온 사람의 전시인 만큼 어떤 구성으로 이루어질지 궁금증을 안으며 63 아트에 들어섰다.



1막 영화의 순간들

본격적인 전시 시작 전에 가장 먼저 보인 건 오디오가이드 QR코드였다. 사실 가이드보다는 OST가 더 어울릴 표현이겠다. 정보를 시각으로 받아들이는 방식이 워낙 익숙해진 터라 이미지가 영화에서도 연출을 비롯한 이미지가 훨씬 주목을 크게 받는데, 음악이 만드는 분위기의 힘도 굉장하다. 히어로인 듯 아닌 듯 오묘한 경계에 서있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의 정체성을 구축한 게 다름 아닌 올드팝이란 걸 일례로 들 수 있겠다.


이윽고 처음 만난 섹션엔 전시명 그대로, 영화 포스터라고 해도 크게 위화감 없을 일러스트레이션이 이어졌다. 고전 영화의 대들보 중 하나인 <티파니에서 아침을>이 시작이었고. 짜임새가 좋다고 느꼈다. 이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은 있어도 아예 처음 들어본 사람은 거의 없을 것 같아서.



영화 스크린의 16:9 비율과 얼추 비슷해 보였다. 영화의 한 장면에 대사 한 줄이 적힌 식으로 비슷한 흐름이 이어질까 싶었는데 그렇지 않았다.



영화 <이터널 선샤인>에서 나오는 집, 그리고 주요 장면의 모음집이다.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더욱 재미를 느낄 수밖에. 방마다 그려진 장면들을 보며 조엘과 클레멘타인의 여정을 다시금 떠올릴 수 있었다. 겨울을 배경에 둔 영화이니 만큼 조금 더 추워질 무렵에 보면 더 재밌겠거니, 싶으면서. 클레멘타인의 머리 색이 시기를 표현하는 축이기도 해서, 사소한 디테일을 그대로 담은 게 반가웠다.


<레옹>을 비롯한 몇 일러스트도 비슷한 구성이었다. 이때 느낀 것 같다. 맥스 달튼은 디테일한 것을 캐치하여 표현해 내길 좋아한다고. 봉준호 감독의 작품 대다수를 그려낸 것도 비슷한 맥락 아니었을까 싶었다. 사소한 것일수록 꼼꼼하게 챙기는 점이 그의 영화 속에서 느껴졌을 테니, 마음껏 표현해 내기 좋았을지도. 특히나 <기생충>은 '집'이라는 하나의 공간을 안팎으로 대조한 점에서 위와 같은 구성에 딱 적합했을 것 같다.


오랜 시간 머물렀던 일러스트가 있는데,

바로 인물 둘 혹은 그 이상의 관계를 그려낸 것이었다. 아는 얼굴과 이름을 찾느라 어찌나 바빴던지. 좋아하는 영화가 있어서 반가웠다. <델마와 루이스>. 영화에서 나왔던 장면을 그대로 그려내서 잠시간 영화를 감상했던 때를 떠올리기도 했고.



2막 웨스 앤더슨 컬렉션

두 번째 구성엔 맥스 달튼이 참 좋아하는 감독, 웨스 앤더스의 작품들을 모아두었다. 완벽한 대칭과 비비드한 색감, 1:1 화면비 등 입체감보다는 평면감을 살린 영화들이 많아서인가. 똑같은 장면을 일러스트로 그려도 전혀 위화감 없었다. 특히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로비를 연상케 하는 붉은 빛깔의 컨시어지 섹션을 조성했단 점에서 그의 작품을 향한 애정이 크게 느껴졌다.



지난 전시와 지금 전시의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프렌치 디스패치>의 개봉 여부가 아닐까. 역시가 그가 좋아하는 감독의 영화를 그려낸 것들이 추가되었다. 웨스 앤더슨의 차기작 <애스터로이드 시티>가 올 6월 말에 개봉했으니, 다음에 또 전시가 열린다면 새 작품들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3막 맥스의 순간들

마지막 구성에서 제일 재밌던 건 화가들의 작업실이었다. 각 화가의 화풍이나 성격, 느낌, 분위기 등을 잘 파악해 각자의 특성을 살리는 게 관건인데 이를 잘 표현했다고 느꼈다.


누가 봐도 모네일 수밖에 없는, 사방이 초록의 자연으로 둘러싸인 풍경. 정물화나 인물화를 주로 그리지 않았다 보니 작업 공간 또한 실내가 아닌 실외인 게 자연스럽다. 물에 비친 모습까지 빼놓지 않고 그려낸 점 또한.


이와 상당히 대조된 작가는 피트 몬드리안. 똑 떨어지는 직선과 빨강, 파랑, 그리고 무채색이 주를 이루는 공간은 마치 그의 작품세계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다. 작품의 분위기를 공간으로 확장하여 표현한 점이 대단히 좋았다. 대중영화와 미술은 조금 동떨어진 이야기 같아 보여도, 특정 장소 안에 하나의 작품(혹은 사람)을 축약한다는 점은 동일하다.


피트 몬드리안이 직선의 추상을 그려냈다면, 잭슨 폴록은 곡선도 직선도 아닌 흔적을 그려냈다. 바닥에 종이를 두고 물감을 뿌리는 작업방식에 입에 문 담배 하나, 그리고 흰 티에 청바지. 다부지게 치켜올린 눈썹은 당시 추상표현주의의 기틀을 뒤바꾼, 공격적인 변화를 보여주는 것도 같다.


끝자락에 만난 건 맥스 달튼이 삽화를 그리고 피터 애커먼이 글을 쓴 동화책이다.




시도 때도 없이 소리를 지르던 아이가 유일하게 조용해지던 식사 시간. 아이의 소란스러움을 잠재울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던 아이의 보호자들은 레스토랑을 차려 아이를 요리사로 일하게 한다. 진지하게 받아들이면 다소 섬뜩할 상황인데, 아무 때나 소리를 와앙 지른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그림들이 무척 유쾌해서 마냥 웃겼다. 전시벽에 QR 코드도 있어 한국어 해석도 볼 수 있다.


이밖에도 스타워즈 시리즈나 반지의 제왕, 오징어 게임 등 다양한 영화 및 드라마를 소재로 그려내서 전시장을 돌다 보면 어느 하나쯤은 반갑게 구경할 수 있을 것이다. 맥스 달튼은 자신이 애정하는 것들을 주제로 삼았기 때문에 관람객 또한 그와 영화 취향이 비슷할수록 재미를 느끼기 쉬울 것 같다.




*아트인사이트(https://www.artinsight.co.kr/)에서 초대권을 받아 관람 후 작성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주저 없이 넘어지고, 일어서고, 다시 넘어지는 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